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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Oct 12. 2019

운명의 플롯

환멸

운명의 플롯


각자의 인생에는 이미 주어진 플롯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운명론(運命論)일 것입니다. 노인(老人)이 되면 누구나 운명론자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보니 그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겠습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것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개인에게는 항상 과학은 과학대로 놀고 미신(迷信)은 미신대로 놀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주 깨닫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의심스럽던 조짐들이 결국은 늘 예측되던 대로 실현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미리 정해진 것들이 없으면 어떻게 그런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우주에서 시간이 존재하는 방식이 나선형(螺旋形)일 것이라 누군가의 말도 자주 생각이 납니다. 결국은 인생만사 희로애락이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게 노년의 당연한 ‘인생론’입니다(의지도 운명?). 그게 맞지 싶습니다. 인생에 대한 탐구인 소설에는 여러 가지 플롯이 있습니다. 그것을 일별(一瞥)하면 우리의 운명론의 세목을 알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개중에는, 이미 정해진, 우리의 일생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소설의 플롯>을 통해 내 ‘운명’을 한 번 찾아보는 공부를 해 보실까요?  

프리드만(N. Friedman)은 플롯을 크게 운명의 플롯(plot of fortune), 인물의 플롯(plot of character), 사상의 플롯(plot of thought)으로 나누고, 다시 그것들을 세분한다.
(1) 운명의 플롯에는 행동의 플롯, 연민의 플롯, 비극적 플롯, 징벌의 플롯, 감상적 플롯, 감탄의 플롯 등이 속한다. 이러한 구성의 공통점은 주인공의 명예나 지위, 이익, 사랑, 건강, 번영 등 운명이라 할 만한 사항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만든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감상의 플롯은 주인공이 불행으로부터 벗어나 끝에 가서는 행복하게 되는 내용을 지니고, 감탄의 플롯은 주인공의 성격과 행동이 바람직하게 변화하여 찬탄과 존경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지닌다는 식이다.
(2) 인물의 플롯에는 성장의 플롯, 개선의 플롯, 시험의 플롯, 타락의 플롯 등이 속한다. 이를테면, 시험의 플롯은 목적의식이 강한 주인공이 어려움에 부딪쳐서 그것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되는 플롯(『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고, 타락의 플롯은 주인공이 자신의 삶이 잘못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닫고 다시 새 삶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의 갈림길에 서는 플롯이라는 식이다.
(3) 사상의 플롯에는 교육의 플롯, 폭로의 플롯, 정감의 플롯, 환멸의 플롯 등이 속한다. 이를테면 정감의 플롯은 어떤 인물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플롯(『오만과 편견』)이고, 환멸의 플롯은 주인공이 자기 이상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지닌 상태에서 출발했다가 어떤 위협이나 시험, 한계 상황 등에 부딪혀 그것을 상실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플롯(『위대한 개츠비』)이라는 식이다. [유태영, 『현대소설론』, 국학자료원, 225-227 쪽 참조]


프리드만의 플롯 이야기를 통해서 본 저의 운명은 <감탄 – 성장 - 환멸>의 플롯에 의해 지배를 받아온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성장>입니다. 물론, 자기도취식 판별법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가까이서 본 어떤 이의 플롯은 <비극- 타락- 환멸>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은 <비극>이었고요. 굳이 그런 걸 따져서 뭘 하느냐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분은 실존주의자의 운명의 플롯을 가진 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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