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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Oct 13. 2019

반드시 이름을 먼저

정명

반드시 이름을 먼저


이름(名)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개명(改名)을 하는 사람들을 간혹 봅니다. 개명 절차가 까다로웠던 옛날에는 궁여지책으로 스스로 이름을 고쳐서 주변 사람들에게 새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어릴 때부터 제 이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착할 선(善), 별 규(奎)라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제 이름자 해설이 철들고부터는 아주 싫었습니다. 반어(反語)도 없고 포부도 없고 철학도 없고 완력(?)도 없는 그 이름이 싫었습니다. 특히 남자 이름에 착할 선(善)이 들어가는 것이 싫었습니다. 영영 아명(兒名)으로 그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호(子虎)’라는 이름을 <영웅본색>에서 빌려왔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송자호’였거든요(‘소마’로 유명한 주윤발의 극중 정식 이름은 마전충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주는 단순성과 완력성(?)이 좋았습니다. 이후로 가까운 이들에게 문자나 메일을 보낼 때는 때때로 그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때가 오면(?) 그 이름으로 필명을 삼을까도 싶습니다. 실제로 몇 년 전 모 회보(會報)에 그 이름으로 지금의 ‘싸움의 기술’과 같은 글을 연재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주최 측에서 거절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필명이나 가명을 쓰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아마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희롱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나이브(?)하게 ‘소설가 양아무개의 **이야기’라고 제목을 달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인터넷에 그 나이브한 제목의 글들이 간혹 떠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는 완력(?)에서 엄청 밀리던 때여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권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지금이라면 그렇지 않지 싶습니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모든 것의 출발점이 바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바로잡는다’라는 것은 일찍이 공자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른바 ‘정명(正名)’이 그것입니다.

자로가 묻기를 <위(衛)나라 임금이 선생님이 오셔서 정치를 맡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무엇부터 먼저 하시렵니까?>라고 하니, 선생님께서 <반드시 이름을 먼저 바로잡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자로가 다시 묻기를 <정말로 선생님은 비현실적입니다. 어떻게 이름을 바로잡으시겠다는 것입니까?>라고 말했다. 선생님께서 다시 <정말로 거칠구나, 유(由 -자로의 이름)는.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논단하지 않고 모르는 대로 비워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의 논리가 바르지 못하고 말의 논리가 바르지 못하면 일이 성사되지 않는다. 일이 성사되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날 수 없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정당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형벌이 정당하게 적용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수족을 어떻게 두어야 좋을지 모르게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사물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반드시 말이 될 수 있게 하고,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이를 실천할 수 있게 한다. 군자는 어떠한 말에 있어서도 구차하게 억지로 갖다 붙이지 않도록만 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子路曰 :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 必也正名乎. 子路曰 :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 野哉由也! 君子于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 事不成則禮樂不興, 禮樂不興則刑罰不中, 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必可言也, 言之必可行也. 君子于其言, 無所苟而已矣.) [『論語』 「子路」편 중에서. 김근, 『한자는 중국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90~91쪽]

‘일반적으로 선진의 문헌에서 <명(名)>이라는 말은 대략 두 가지 의미로 쓰였으니, 하나는 <이름> 또는 <개념>의 의미였고, 다른 하나는 <명분(名分)>의 의미’였습니다.(김근, 앞의 책 91쪽) 공자님의 ‘정명(正名)’ 사상은, 우선 개념을 바로잡고 바로잡힌 ‘개념’에 근거하여 ‘명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치자(治者) 혹은 위정자의 도리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명분에 따르는 삶’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백성들이 수족을 어떻게 두어야 좋을지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거친 자로’가 공자님의 그런 정치철학을 제대로 이해했을지 궁금합니다.

예나제나, 이름을 중시한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던 것 같습니다. 옛날 선비들에게는 자(字)나 호(號) 같은 것이 있어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자기 인식 혹은 자기 동일성(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습니다(자(字)는 실제 이름을 공경하여 부르기를 꺼려하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호(號)·휘(諱)·시(諡)와 함께 2가지 이상의 이름을 갖는 복명속(複名俗)과 실제 이름을 피하는 실명경피속(實名敬避俗)에서 비롯되었다 합나다). 인용문에 나오는 자로는 유의 자였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에게는 수백개(343개?)나 되는 호가 있었다 하니 그 분의 이름에 대한 특별한 취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전통이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모두 한 개의 이름으로 평생을 지냅니다.

젊었을 때 개를 한 마리 얻었는데 그 개를 우리에게 준 이의 설명인즉슨 그 개의 혈통이 일본 쪽으로 닿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다께(武)’라고 지었습니다. 몇 년 뒤, ‘다께’는 마당 넓은 집으로 재입양이 되었습니다만, 그 이름은 여전히 저희 집에 남아서 시시때때로 자기 이름값을 다 하고 있습니다. “다께! 일어나 밥 먹자”, “양다께! 좀 일찍 들어오지” 그러면 스무댓살 난 집아이는 그 호칭이 응당 자기의 ‘개념(강아지?)’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머리를 끌쩍이며 이른 아침밥을 먹으러 나오거나, “옛, 다음부터 일찍 들어오겠슴다”라는 임기응변의 응답을 보냅니다. 그 이름이 과히 싫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아들을 강아지 이름으로 부르는 무식한 애비’를 나무라실 분이 행여나 계실까봐 한 말씀 보충해 올리겠습니다. 집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이름자를 지을 일이 큰 걱정이었습니다. 돌림자를 빼면 한 자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여러 명이던 사촌들의 이름을 감안해서 가까스로 하나 고른 것이 ‘나라 국(國)’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식한 제가 생각해도 아무래도 이름이 너무 큰 것 같았습니다. 불안한 나머지, 꽤나 용하다고 소문이 나있던 ‘최도사님(모대학 철학과교수님)’께 여쭈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름이 너무 크면 아이가 이름에 치인다’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다께’라는 이름이 차출된 것이었습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귀한 손(孫)에게 ‘개똥이’, ‘소똥이’ 같은 막된 이름을 붙이시던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다행히, ‘다께’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다께(武)’라는 이름에 걸맞게 금년도 3.1절 기념 검도대회에서는 청년부(대학부 포함) 우승도 차지했습니다.

사족 한 마디. 공자님이 자로에게 하신 말씀을 읽다 보니 왠지 요즈음의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이름이 바로잡히지 않아서, 논리도 없고, 일도 성사되지 않고, 예악도 없고, 형정만 문란하고, 백성들이 수족을 어디다 둘지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게 영락없는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누군가 앞장서서 ‘정명(正名)’을 크게 외치고 그 실천을 힘써 독려해야 되지 싶습니다.
<201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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