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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Oct 13. 2019

조근놈, 아직 교실 못 찾았니?

전에 관하여

전(傳)에 관하여⑤ - 조근놈, 아직 교실 못 찾았니?


아버지의 냉대 속에서 특별히 각별했던 어머니의 아들, 형이 어머니의 아들 연인(son lover)이었다는 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 되고 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버리고 형의 몰락이 가속화 될 때 이미 나는 그들의 관계를 눈치챘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었다. 그저 약간의 회의만 가졌을 뿐이었다. 내가 과연 어머니의 사랑을 독점하던 팥쥐가 맞기는 한 것인가? 혹시 주인공은 따로 있었고 나는 그저 막간을 지루하지 않게 할 뿐인 어릿광대에 불과했던 것은 아닌가? 형의 몰락을 계기로 과거사를 찬찬히 되짚어 보면서 그런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아들은 형이었다는 증거는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애국가 지휘 사건’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형이 4학년 때의 일이다(형은 자기 또래보다 2,3년 늦게 학교를 다녔다. 나와는 네 살 반 차이였는데 학년은 두 학년 위였다). 하루는 선생님이 나를 불러 애국가 지휘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불행히도 그 때는 내가 애국가가 4분의 4박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때였다. 엉거주춤 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반장이 그것도 못하느냐는 거였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어떻게 자기 형 반도 못 따라 가냐?”
조근놈 시절이었던 탓에 그 말씀이 그리 큰 자극은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랑만 있으면 나는 다 괜찮았다. 선생님이 공연하게 역정을 낸다는 생각뿐이었다. 집에 와서도 어머니에게 그 말을 전하지 않았다. 그냥 ‘사건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부반장으로 강등되고 그 해 내내 기가 죽어지내야 했다. 그러나, 더 섭섭했던 것은 어머니의 태도였다. 부반장으로 강등되고 나서야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너무나 태연했다.
“어이구, 우리 조근놈...”
그게 전부였다. 지금 와서 보니 어머니에게는 아들 하나면 충분했었다. 공부 잘 하고, 운동 잘 하고, 매사에 능숙한 자랑스런 아들 한 명만 있으면 부족할 것이 없었다. 교내 방송 아나운서를 맡아 하던 형은 나중에 전교 어린이회장까지 하면서 그 명성을 드날렸다.

또 있다. 역시 같은 해 일어났던 일이다. 형과 내가 학교 대표로 백일장 대회에 출전했던 때의 일이다(교내 백일장에서 나는 최연소 산문 가작 입선자였다). 인근의 국립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이었다. 공교롭게도 예의 그 담임선생님이 글짓기부 지도교사였다. 출전 전날 마지막 연습시간에 선생님이 나를 지목했다.
“넌 자꾸 글이 짧아지니 운문부로 출전해라.”
글이 짧아진 것은 매일 같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다 보니 소재 부족으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 운문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나를 운문부에 출전시키는 걸 그 당시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내게는 ‘사건 그 자체’였다. 형과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은 워낙 출중해서 글짓기부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연습 없이도 학교 대표로 출전시켰다. 운문부 교실로 들어간 나는 칠판에 적어놓은 시제들을 보고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고구마, 달밤, 전깃줄. 그런 제목들을 칠판에 내리 적어놓고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해서 시를 지으라고 했다. 저건 내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들을 다 집어넣어서 시 한 편을 적어내고 나와 버렸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마당의 모과나무 아래서 대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멋쩍게 웃으며 나오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놀란 듯 물었다.
“조근놈, 아직 교실 못 찾았니?”
아니라고, 다 쓰고 나왔다고 대답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빨리 쓰면 입상 못한다, 상 받으려면 한 시간 다 쓰고 나와야 한다, 아마 그렇게 어머니가 주의를 줬던 것 같다.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과연 시간을 다 채우고 나온 형은 3등을 해서 부상과 함께 학교 마크가 새겨진 메달을 전체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에게서 전달받았다. 4학년이 다른 학교 6학년들을 다 젖히고 동메달을 받았다고 크게 칭찬을 받았다(그 메달은 형과 내가 고등학교 때 같이 자취를 할 때도 형의 중요한 소지품이었다. 지금은 어디에 두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그 정도만 가지고 내가 팥쥐가 아니었다는 것, 사실 상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자식이었다는 의구심을 지니고 있었다면, 당시든 훗날이든, 신경증 유전자를 지닌 한 나약한 영혼의 지나친 자학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 말고도 결정적으로 어머니에게 형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케 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도저히 ‘사건 그 자체’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난감 도시에서 남쪽의 항구도시 M시로 우리 가족이 내려간 그 해 여름이었다. 형은 장난감 도시에 남아서 학업을 계속했고(형은, 지금은 없어진, 도내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다니던 명문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부모를 따라서 M시로 내려와서 학업을 중단한 채 시장에서 과일 노점을 지키고 있었다. 노점을 연 위치가 대자(大慈) 유치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절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담장 아래였다. 대자사(大慈寺)를 소유하고 있는 돈 많은 할아버지가 원장이었는데 하얀 모시 저고리를 입고 나와서 한 번씩 주변을 둘러보곤 했다. 모두 그 할아버지에게는 고개를 숙였다. 그때부터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 있던 어머니도 한번 씩은 노점으로 바람을 쐬러 나왔다. 그런 어머니에게 하루는 그 원장 할아버지가 청을 넣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아버지 일을 돕고 있던 나를 그 유치원의 하우스보이로 달라는 것이었다. 잔심부름이나 하면서 절이나 유치원에서 하는 일을 거들면 숙식은 물론 야간학교도 보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들어온 아이가 지금은 어엿한 선생님이 되어 있다고 좋은 선례도 들어 꼬드겼다. 하루하루 연명하는 일도 버거운 데 입 하나 더는 일이 어딘가? 더군다나 학교까지 보내준다고 했다. 어머니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난데없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아버지의 큰 목소리였다.
“굶어 뒈져도 남의 집 종살이로는 보낼 수 없는 일 아니갔어?”

사실 상 그날 내 조근놈 시절이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그 후 1년여가 지난 뒤였다). 다만 아직은 방조남이라는 무협지 주인공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언젠가 반드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현실화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내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형처럼 좌절하지 않고 혼자서 버틸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버려질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는 있다. 형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었다. 형은 자신이 언젠가 버려질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큰형이나 나처럼 언젠가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것을 형도 알았어야 했다. 인간은 누구나 버림받는다는 것을 좀더 일찍 배웠어야 했다. 그러나 형은 끝내 어머니를 버리지 못했다. 세상 끝날까지 어머니의 아들 연인으로 남고자 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머니는 여전히 형에게 ‘위대한 어머니(great mother)’였다. 그는 결국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세계를 호령하던 한낱 어린 왕자, 총명한 마마보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머니가 죽고 세계가 무너지자 그는 어떤 삶의 준거도 가지지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만약 그런 플롯이 가능하다면 형은 운명의 희생자일 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랬듯이 형은 전쟁이 만든 희생양이었다. 그 플롯 안에서는 개인의 무능이나 나태, 실수나 부주의 같은 것은 아예 설 자리가 없다. 형은 무죄다. 오직 원인은 운명이고 전쟁이고 어머니다....

* 아들 연인(son lover) --모든 양극적 자질이 아직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인 우로보로스(uroboros)를 인간적 형상으로 계승한 그레이트 마더(great mother, 위대한 어머니)는 신화적으로는 양성구유의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묘사된다. 수염이 난 여신, 남근을 가진 여신인 그레이트 마더는 최초의 인간으로 최초의 남성을 ‘낳아서’ 자기 짝으로 삼는다. 이 때 ‘낳아진 최초의 남성’이 바로 아들 연인(son-lover)이다).
● 조근놈 — 작은놈. 아래아 발음이 살아있는 제주도에서 막내를 그렇게 부른다. 제주도에서 막내로 태어난 나를 김녕할머니(집주인)가 그렇게 불러서 내 아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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