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의 심리학
하나와 넷 - 상징으로서의 숫자
융에 따르면 꿈속에서의 4의 출현은 일반적으로 꿈꾸는 이에게 매우 중요한 어떤 것을 표상한다. 일종의 종교적인 경험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시간 공간의 제약이 없는 꿈의 세계에서는 사방이나 네 귀퉁이에서 등장하는 존재나 힘과 같은 이미지들은 모종의 통일성과 관련되어 있다. 땅의 네 귀퉁이를 붙들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네 천사, 다니엘의 환상에서 보이는 ‘거대한 바다와 싸우는’ 사방의 바람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중국의 심볼리즘에서는 정방형이 땅과 동일시된다. 인도의 심볼리즘에서는 사각형이 파드마(망우수)나 만다라와 동일시된다. 그것들은 모두 요니(Yoni, 여성적이고, ‘그릇’인 존재)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므로 우리의 꿈에서 ‘푸른 안개’ 이후에 심리적 공간이 어떤 통일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처음 ‘나쁜 동물’이 나타나고, 그 다음 ‘푸른 안개’가 나타나서 그들의 먹는 행위를 중지시키고, 이제 세 번째로 ‘사방의 신’이 나타난다. 1차원, 2차원, 3차원으로 꿈은 전개된다. 최상의 충만으로, 영적이고 신성한 것의 차원이 나타난다. 융은 말하기를, “사분법은 때때로 그의 창조물 가운데 현현하는 신의 직접적인 표상이 된다.”라고 했다. 그것은 ‘신 안의 것’을 드러내는 원형적 이미지이다. 그것 안에 든 것은 신의 것, 신성한 속성을 부여받은 것이라는 의미다. 거룩한 장소로서 정신의 용기가 된다. 부처는 (네모진) 망우수 숲의 한 가운데서 해탈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네모짐은 중심점을 향하려 노력한다. 왜냐하면 4는 그것의 궁극적인 성취를 1의 현현 속에서 이루기 때문이다. 네 동강난 것의 합으로서의 ‘하나’는 널리 분포된 원형적 모티프이다. 고대의 작가 푸르타르크는 “모든 수의 시초는 1이며 최초의 정방형은 4이기 때문에, 이들로부터, 마치 완성된 형태의 자질의 합으로서 5가 온다.”라고 말했다. 연금술에서는 ‘1’이, 창조적인 것이든, 4에서 추출된 것이든, 그 모든 목적을 만족시키는 ‘정수(진수: 가장 순수한 형체)’이다. 많은 철학적 정신들을 수 세기 동안 바쁘게 만든 ‘원의 직각성’이라는 수학적 수수께끼는 그 4요소의 신비적 결합을 표상한다. 5는, 이를테면 진수와 결합된 4는, 파생물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부분들이 합쳐진 것 이상의 독립적인 전체성을 의미한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 네 개의 얼굴을 가진 네 명의 게루빔(천사)에 의해 보좌받는 신의 보좌, 에반겔리스트(4대 복음 저자)들의 네 개의 상징적 형상(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에워싸인 의기양양한 구세주, 전능하고 언제나 만다라의 중심에 앉아있는-부성, 모성의 연합체인- 티베트의 신 바이로차나(비로자나불)들은 이것의 뚜렷한 보기이다.
요가수도자들은 모든 것을 종합하는 가장 높은 정신적 경지인 ‘하나’에 스며들고 그렇게 해서 ‘부처의 의식’, ‘밝게 비추는 다이아몬드의 요체’의 상태를 획득하기 위해 ‘네 양상 속의 의식’을 얻으려고 애쓴다. 이것은 “그리고 그때 신이 내려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실제로 구석에 4명의 신이 있었다”라는 우리 꿈의 ‘어린 진술’과 많이 닮아 있다. 낯선 것이지만, 또 단순한 것이지만, 그 뒤에 있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고, 팽팽하고, 장엄한가!
‘푸른 안개’의 사분법은 동시적으로 출현해서 비가시적인 상태로부터 완전히 가시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사각형’을 형성하는, 그 <하나>의 ‘신’의 전조였다. 꿈은 우리에게 그 하나의 ‘신’이 ‘4명의 신’이 나타났을 때 사라지는지, 아니면 그들 속에 진수로서 남아 같이 있는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나가 넷으로 분리되는 것은 하나의 힘을 앙양하고, 그것이 모든 네 개의 지평선으로 확장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화의 과정이다. 심리 발달의 영역에서는 생각하고(thinking), 느끼고(feeling), 직관하고(intuition), 감지하는(sensation) 의식의 4가지 분화와 발달이 그것에 해당된다. 그 분화와 발달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때 자아는 훨씬 안정되고 확장되고 성숙된다. <중략> 하나, 넷, 다섯은 우리의 꿈속에 포함된 여러 의미를 더욱 풍족하게 만드는 심볼리즘의 한 요소가 된다. <하략>
.>>(Jolande Jacobi, Complex Archetype Symbol in the Psychology of C.G.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