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말, 어머니의 몸
주홍글자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때 홀로 깨달음을 구해서는(그런 공부를 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는 것은) 안 된다고 하더군요.”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나이 오십이 되면 생업과 가정을 등지고 숲속으로 들어간다는 인도의 종교 풍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어쨌든 마지막 단계에서는 구루(자아를 터득한 신성한 교육자)를 만나야 한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낸 이가 그렇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이제 육십도 훌쩍 넘긴 나이인지라 인생에 대한 더 이상의 바람은 없습니다. 구루를 만나 최후의 깨달음을 얻을 욕심은 추호도 없습니다. 있다면 그저 조용한 퇴장을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저녁 검도교실에는 새내기 학생 회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기초 운동을 많이 하고 오래된 성인 회원들과는 한 판씩 돌아가며 격하고 짧게 대련을 하고 마쳤습니다. 마지막 반성 시간에 한 마디 했습니다. 나이 오십까지 기초만 닦았다는, 나이 들어 다리에 힘이 빠지자 상대의 움직임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고, 눈이 침침해 지면서부터 비로소 상대의 칼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유명한 한 검도가(劍道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세상만사 무엇이든 그저 밥 먹듯이 하는 게 진짜 공부다, 어디에서든 기초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런 취지의 이야기였습니다.
밤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개꿈에 잠결이 뒤숭숭했습니다. 무언가 결핍이 아직도 제 안에서 웅웅거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퇴직한 선배가 제 앞에 놓인 지폐를 자기 것이라고 우기며 가져갔습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아무도 제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줄창 그들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었습니다. 시종일관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그야말로 개꿈이었습니다. 이 나이에도 그런 불민한 불편함이 버젓이 꿈에 나타나는 것이 정말 불편합니다. 지금쯤은 조금은 관조적인 자세로, 지나간 삶에서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나, 영원한 소멸을 앞에 둔 자의 허허로움 같은 것들을 꿈 속에서 만나야 할 터인데 그런 것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꿈은 여전히 ‘내 안의 작은 인간’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 겪었던 것들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분노, 실망, 질투, 불안과 같은 것들이 꿈속 서사(敍事)의 주동(主動)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안하무인(眼下無人), 마치 주둔군처럼 행세할 때는 제 베갯머리가 아주 어수선합니다. 아무래도 ‘내 안의 작은 아이’에게는 여태 세상의 짐이 너무 무거운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껏 그 옛날의 상처를 안고 낑낑댑니다. 시도때도 없이 징징거립니다.
그 아이에게는 아픈 상처를 감싸줄 어머니도 없고 믿고 의지할 아버지도 없습니다. 어린 아들을 위로할 ‘어머니의 몸’은 그 육체성을 잃고 관념 안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속의 어린 아이는 지상의 어떤 여성성에도 만족을 모릅니다. '아버지의 말'도 마찬 가지입니다. 어디까지가 아버지의 변명인지, 어디까지가 내게 허여된 '윤리의 기준'인지, 알기 힘듭니다. 평생 아버지에게서 진짜 아버지를 못 본 탓이라 여깁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게 저의 ‘주홍글자’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세상이 굳이 ‘아버지의 이름’과 ‘어머니의 몸’, 그 둘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 아니고도 세상에는 수많은 ‘진리의 말씀’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노년의 문턱에 선 지금의 저에게는 그 ‘이분법적 말씀’이 유독 자주 절실합니다. 아마 ‘해체와 재구성’이 요구되는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