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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Nov 20. 2019

키르케의 마법

자기 동일성

[아침광장] 키르케의 마법 


그리스 서사(徐事) 오디세우스 이야기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요정들입니다. 마녀 키르케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키르케는 지중해의 외딴 섬에 홀로 살면서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동물로 바꾸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녀의 집 주위에는 항상 맹수들이 우글거렸습니다. 모두 마법에 걸린 자들이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이타카로 귀향하던 오디세우스는 살아남은 부하들과 함께 키르케의 섬에 도착합니다. 섬 정찰에 나섰던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은 키르케가 내준 맛 난 음식을 먹고 모두 돼지로 변해 버립니다. 망을 보던 한 명의 부하만 무사히 돌아와서 오디세우스에게 그 소식을 전하지요. 부하들을 구하러 가던 오디세우스는 다행히 도중에서 헤르메스 신을 만나 키르케의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약초를 얻습니다. 약초와 기지(機智)를 동원해 키르케의 마법을 물리친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을 구한 뒤 뒤 키르케의 구애를 받아들입니다. 1년 동안 그녀와 행복하게 지냅니다.

모든 옛이야기는 ‘선 굵은’ 생활의 교훈을 남깁니다. 키르케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두 가지 시사를 얻습니다. 하나는 정신, 하나는 육체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는 인간의 동일성 투쟁과 관련된 교훈입니다. 키르케의 마법에 걸린 자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분열(分裂)의 고통이 뒤따릅니다. 몸은 돼지지만 정신은 아직 인간이기에 찢어지는 부조화의 아픔이 있습니다. 분열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하루라도 빨리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손쉬운 망각을 선택하면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갈 길이 없게 됩니다. 키르케와 인간의 싸움은 기억의 고통과 망각의 유혹이 벌이는 싸움입니다. 이 이야기를 조금 확장해 보면 이렇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양심의 소리, 윤리 감찰, 도덕적 의무감 같은 것들(인간)과 본능적 충동(돼지)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입니다. 몸은 돼지 몸이지만 정신은 끝까지 인간이기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몸과 마음이 다 돼지가 되는 것을 택할 것인가가 늘 고민하며 삽니다. 마법이 시키는 대로 영원한 망각을 선택한 자들은 죽을 때까지 돼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자신의 분열을 의식하며 사는 자에게는 언젠가는 돼지 몸을 벗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런 보편적인 철학적 이해를 키르케 이야기로부터 유추해 낼 수 있겠습니다.

키르케 이야기에서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점은 ‘음식남녀(飮食男女)’에 관한 것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키르케의 마법에 걸리게 된 것은 그녀가 내준 맛 난 음식을 아무런 생각 없이 먹었던 때문입니다. 음식에 홀린 탓이었지요. 아마 그래서 돼지로 변신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천행으로 음식의 유혹에 대항할 수 있는 약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는 키르케의 마법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살아가는 데에는 무엇보다 먹을 것 조심하는 게 중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키르케의 마법이 아무리 강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음식 한 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만 초연하면 절대 질 수 없는 게 키르케와의 싸움입니다. 또 하나는 남녀관계에 있어서의 절제력입니다. 사랑에 눈먼 자들은 무슨 일이든 저지릅니다. 그것을 피해야 합니다. 오디세우스는 고향의 조강지처를 끝내 잊지 않습니다. 1년 만에 그녀를 떠납니다(아들이 생겨도 괘념치 않습니다). 불멸의 요정 칼립소와의 7년 동거보다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혈기방장한 장년기 남자로서는 큰 절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그의 10년 귀향길은 ‘음식남녀’와의 뼈를 때리는 악전고투였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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