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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03.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논술의 실제 5 - 미운 오리새끼, 갈매기의 꿈

5. 미운 오리새끼갈매기의 꿈     


[제시문 1]     

어느 여름날, 장원의 영주 저택을 둘러싼 연못 근처의 보금자리. 어미 오리 한 마리가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어미 오리는 오랫동안 알을 품고 있어서 지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새끼들이 하나 둘 알을 깨고 나오지만, 이상하리만큼 큰 알 하나는 도대체 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끼 오리를 보러 온 늙은 오리가 물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지내오?”

“아직도 멀었어요. 알 하나가 깰 생각을 안 하네요. 하지만 다른 아기들을 보세요. 정말 귀엽죠?”

“그 알을 좀 보여 주구려. 아마 칠면조 알이 틀림없을 거요. 나도 속은 적이 있거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칠면조는 물을 무서워해서 헤엄을 가르칠 수가 없었지. 그 알은 그냥 내버려 두고 다른 새끼들한테 헤엄치는 법이나 가르쳐 줘요.”

어미 오리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품어 볼래요.”

“마음대로 하구려.” 

늙은 오리는 가 버렸습니다.

“끽끽!” 마침내 아기 오리가 울며 밖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놈을 보니 너무 크고 못생긴 새끼 오리였습니다. 깜짝 놀란 어미 오리는 놈이 헤엄도 못 치는 칠면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새끼들을 이끌고 연못으로 향하였습니다. 새끼 오리들은 차례대로 풍덩 소리를 내며 뛰어들었고, 미운 오리새끼도 함께 헤엄을 쳤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미 오리는 안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당에서 놀고 있는 오리와 닭, 그리고 다른 새끼 오리들은 자기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미운 오리새끼를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리들은 미운 오리새끼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암탉들은 부리로 쪼아대었으며, 모이를 주러 나온 계집아이는 발길질을 했습니다. 심지어 형과 누나들도 미운 오리새끼에게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아유, 이런 못난이. 고양이가 물어갔으면 좋겠어.”

그리고 마침내 어미 오리마저 그 애가 어디론가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중략>

미운 오리새끼는 농가를 떠났습니다. 

자신의 고유한 영역으로 돌아온 미운 오리새끼는 물을 헤치고 자맥질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가을이 오고 단풍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세차게 몰아치자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태양이 질 무렵 새떼 한 무리가 풀숲에서 날아왔습니다. 

깃털이 눈부시게 하얗고, 목이 길고 우아한 백조였습니다. 그 당당하고 장엄한 새들은 화사한 날개를 펼쳐들고 따뜻한 기후를 찾아서 저 멀리로 날아갔습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도 사랑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이 사랑에 빠진 것처럼 그 새들이 그리웠습니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자 불쌍한 미운 오리새끼는 물이 완전히 얼어붙지 않도록 계속해서 주위를 헤엄쳐 돌아다녔지만 결국 힘이 다 빠져서 얼음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농부가 그를 발견하고 구해주었습니다. 

긴긴 겨울이 지나고 찬 바람이 물러간 어느 날, 따스한 햇살이 환히 비추었습니다. 찬란한 봄이 온 것입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갑자기 퍼드득 날개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날개는 ‘휙’ 소리를 내며 강하게 움직이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사과나무 꽃들이 활짝 핀 넓은 정원을 날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물에 내려앉은 미운 오리새끼는 앞 쪽의 덤불 속에서 예전의 그 아름다운 흰 새들을 발견했습니다. 미운 오리새끼는 갑자기 서러움이 왈칵 솟구쳐 그 우아한 백조들을 향해 헤엄쳐 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새들이 날개를 부풀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①죽일 테면 죽여 봐오리에게 쪼이고암탉에게 물리고뜰에 있는 소녀에게 발로 차이는 것보다 차라리 멋진 새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편이 낫겠어.

가여운 미운 오리새끼는 고개를 숙이고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에 비친 모습은 커다랗고 볼품없는 회색 오리가 아니라 멋진 백조였답니다. 

아이들이 다가와 빵과 과자를 던져주며 말했습니다. 

“새로 온 백조가 가장 예쁘고 우아한데.”

미운 오리새끼는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넓은 미운 오리새끼는 뽐내지 않았습니다. 못생겨서 구박과 서러움을 당했던 일을 생각하며 이제는 가장 아름다운 백조라는 칭찬을 가만히 들었습니다. 라일락꽃은 진한 향기를 풍겼고, 밝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었습니다. [한스 크리스찬 안델센, 「미운오리새끼」 중에서]     


[제시문 2]     

아침이었다.

그리고 싱싱한 태양이 조용한 바다에 금빛으로 번쩍였다. 기슭에서 약간 떨어진 앞 바다에서는 한 척의 어선이 고기를 모으기 위한 미끼를 바다에 뿌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그것을 가로채자는 신호가 하늘의 갈매기 떼 사이에 재빨리 퍼지며, 이윽고 몰려온 수많은 갈매기 떼가 이리저리 날며 서로 다투어 먹이조각을 쪼아 먹는다.

오늘도 또 이리하여 살기 위한 부산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란을 외면하고,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혼자 어선에서도 기슭에서도 멀리 떨어져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공중 약 30미터의 높이에서 그는 물갈퀴 달린 두 발을 아래로 내린다. 그리고 부리를 쳐들고 양쪽 날개를 비틀 듯이 구부린 괴롭고 힘든 자세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날개의 커브가 급하면 급할수록 저속으로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볼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속삭이듯이 낮아지고, 발밑에서 바다가 잔잔하게 누워있는 듯이 보이는 극한점까지 속도를 줄여간다.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고 눈을 가늘게 뜨고, 숨을 모으고, 억지로 ....이제 .... 더 .... 몇 미터만 .... 날개의 커브를 더하려 한다. 그 순간, 깃털이 곤두서며 그는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대체로 갈매기라는 놈은 공중에서 비틀거리거나 중심을 잃고 속도를 늦추는 법이 없다. 비행 중에 비틀거린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체면을 깎는 일일 뿐만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이며 불명예이다. 그러나 조나단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날아오르더니 다시금 날개가 떨릴 만큼 급한 커브를 유지하며, 천천히 속도를 낮춰 가는 것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더욱 천천히 - 

그리하여 그는 또 다시 중심을 잃고 바다에 떨어졌다. 아무래도 조나단은 보통 새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난다는 행위를 지극히 간단하게 생각하여, 그 이상의 것을 굳이 배우려 하지 않았다. 즉 어떻게 해서 기슭에서 먹이가 있는 데까지 날아가 또 돌아오는가, 그것만 알면 충분한 것이다. 모든 갈매기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나는 일이 아니라 먹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별난 갈매기 ②조나단 리빙스턴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먹는 일보다도 나는 일 그 자체였다. 그 밖의 어떤 일보다도 그는 나는 일을 좋아했다.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고 있으면 동료들이 묘한 눈으로 보리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아무튼 그의 부모들조차도 그가 매일같이 혼자서 아침부터 밤까지 수백 번이나 저공 활공을 되풀이하여 시도하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고 있었다. 예컨대 해면으로부터의 높이가 자기 날개 길이의 절반 이하라는 초 저공에서 날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왠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높은 데를 날 때보다도 힘이 덜 들고, 공중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가 활공을 끝내고 착수할 때에는 두 발로 물을 차 물보라를 일으키는 보통 방식이 아니라, 두 발을 몸통에 찰싹 유선형으로 달라붙게 하여 수면에 닿기 때문에, 해면에는 길고 예쁜 항적이 남는 것이었다. 그가 발을 쳐든 채로 해변에 몸통 착륙을 하여, 모래 위에 생긴 자기의 활강 자국을 발로 재는 듯한 흉내까지 냈을 때는 그의 부모들도 당황해 했다.

“왜 그러니, 존, 대체 왜 그래?”

어머니는 아들에게 물었다. “왜 너는 다른 갈매기 떼들처럼 행동하지 못하니? 저공비행 따위는 펠리컨이나 신천옹(거위보다 살쪘으며, 무인도 등에 서식함)에게 맡겨 두면 되잖니? 그리고 왜 너는 먹지 않니? 바짝 말라 뼈와 깃털뿐이잖아!” 

“뼈와 깃털뿐이라도 괜찮아요, 엄마. 나는 내가 공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고 싶을 뿐이 예요. 단지 그것뿐이에요.”

“애야, 조나단.” 하고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아버지가 말했다. 

“머지않아 겨울이 닥쳐온다. 그렇게 되면 어선도 적어질 것이고, 얕은 데 있는 고기도 점점 깊이 헤엄쳐 들어갈 것이다. 만약 네가 연구해야 한다면 먹이를 연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얻는지를 연구해라. 물론 너의 그 비행술인가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너도 알다시피 공중활주로 먹고 살 수는 없지 않니? 안 그래? 우리가 나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라는 걸 잊지 말아라. 알겠지?”

조나단은 다시금 갈매기 떼를 떠났다. 혼자서 바다 멀리 나가 굶주리면서도 행복한 마음으로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당면한 과제는 스피드였다. 1주일 남짓한 연습으로 그는 세계에서 제일 빠른 갈매기보다도 스피드에 관해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갈매기의 세계에서 신기록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는 순간적인 것이었다. 급강하한 후 수면과 평행으로 날고자 했을 때, 고정시킨 양쪽 날개의 각도를 바꾸려고 한 순간에, 그는 지난번과 같은 그 위험한 조종불능의 재난에 빠져든 것이다. 그것은 시속 140킬로미터라는 스피드 속에서 다이너마이트 같은 타격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그리하여 조나단은 파열한 것같이 되어 벽돌처럼 단단한 해면에 세차게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가 의식을 되찾은 것은 해가 지고 나서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는 달빛을 받으며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었다. 양쪽 날개는 납덩어리 같았지만, 그보다도 등을 내리누르는 패배감의 중압감 쪽이 더욱 무거웠다. 이윽고 그는 물속에 흠뻑 잠긴 채 공허하게 울리는 이상한 목소리를 자기 내부에서 들었다.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는 한 마리의 갈매기일 뿐이다. 원래 네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네가 나는 일에 관해 보통 이상의 것을 배우도록 정해져 있었다면, 눈을 감고도 정확히 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더욱 빨리 날도록 타고났다면, 매 같은  짧은 날개를 갖고 물고기 대신 쥐를 먹고 살았을 것이다. 네 아버지가 옳았던 것이다. 어리석음을 잊어야 한다. 갈매기 떼가 있는 데로 돌아가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만족해야 한다. 능력에 한계가 있는 불쌍한 갈매기로서의 자신에... [리차드 바크, 『갈매기의 꿈』 중에서]     



* [제시문 1]의 밑줄 친 ①과 [제시문 2]의 밑줄 친 ②의 문맥상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시오.(600자 이내) 

* [제시문 1]의 ‘미운 오리새끼’와 [제시문 2]의 ‘갈매기 조나단’의 자아실현 방법을 비교의 관점에서 논하시오. (1200자 내외)    

 

[출제 의도 및 논점 분석]    

 

* 출제 의도 : 이 문제는 전국 단위 논술대회에서 출제되었던 문제를 일부 수정하여 제시한 것이다. 본디 초등학생 대상으로 출제된 것이었지만 대상을 확대하여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논술대회나 대학 입시용 논술 문제로 출제되어도 큰 문제가 없을 내용이다. 제시문 자체가 크게 어려운 내용이 없으면서도 논제에 따라서 깊이 있는 대답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경우가 된다. 초등학생에게는 초등학생용 논제를, 더 높은 수준의 학생들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논제를 부과하면 될 일이다. 똑 같은 논제라도 학생(수험자)에 따라서 다양한 응답이 나올 수도 있다. 예상되는 논지의 수준을 낮게 가져가거나 높게 가져가는 것으로 그때그때 평가 기준을 달리하여 평가하면 된다. 

[제시문 1]은 한스 크리스찬 안델센의 「미운오리새끼」에서, [제시문 2]는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그 일부 내용을 취하여 제시문을 구성하였다. [제시문 1]은 프로이트가 「가족 판타지(어린이들의 가족을 대상으로 한 공상)」라고 이름 붙인 유소년기의 무의식적 원망(願望)을 소재로 한 창작 심리 동화이다. 널리 알려져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공상 속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는 남루한 자신의 가족과는 다른 어떤 고귀한 혈통의 신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꿈꾼다. 아이들은 그것이 공상임을 알면서도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프로이트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들이 그러한 꿈을 성인이 되어서도 버리지 못한다면 근원결락강박(根源缺落强迫)을 앓는 신경증 환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델센의 「미운오리새끼」는 그러한 차원에서 어린이들의 무의식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그것도 위무하는 탁월한 심리치유의 힘을 가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제재가 사춘기를 앞두고(혹은 경과하며)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거나 정체성 재정비를 욕구하는 나이 든 청소년들에게도 친숙하고 진지한 소재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시문 2]의 존재론적인 내용이 그러한 대상과 소재와의 있을 수 있는 거리감을 많이 불식시킬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주어진 존재론적 한계, 그리고 주어진 환경과의 끊임없는 불화 속에서도 자기실현을 위해 매진하는 ‘어린 자아’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두 제시문 사이의 간극을 많이 좁혀줄 것이라 판단된다. 이 두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비록 새이지만 결국은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시문 2]는 초중학생의 수준에서는 다소 어려운 문맥이 편재(遍在)하고 있으나 앞에서 [제시문 1]을 분석할 때 말한 것처럼, 이미 널리 알려진 텍스트라는 점, 그리고 [제시문 1]과의 상호텍스트성을 고려할 때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자료 제시형 탐구 논술이 즐겨 채택하는 ‘맥락적 이해가 요구되는 고등 독해문’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에서도 [제시문 2]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된다고 하겠다.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갈매기의 꿈』은 ‘운명(한계)을 넘어 승리하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승리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무엇을 소재로 삼든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이야기이다. 행여 그것들이 동물, 식물, 광물(鑛物)이거나 천문(天文), 지리(地理)에 관한 것일지라도,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운 오리새끼’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아무리 새들의 삶을 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직 자기 한계를 돌파하려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하는 메타포에 지나지 않는다. 

출제자는 [제시문 2]의 ‘승리하는 자의 이야기’가 [제시문 1]의 ‘가족 판타지’ 이야기와 어우러질 때, 학생(수험자) 수준에 걸맞은 제3의 맥락이 형성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미운오리새끼’와 ‘갈매기, 조다난 리빙스턴’은 다 같이 ‘길 없는 길을 헤매는 어린 새’라는 점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논술 시험의 주 고객인 ‘어리고 미숙한 주체’들과 정체성 서사적 차원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것을 알고 수험자 측의 깊고 진솔한 응답을 요구하고 있다. ‘인내와 도전’이라는 두 이야기의 각기 다른 강조점을 파악하고 있는지, 그러한 덕목(德目)이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성장기의 주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수험자들이 제대로 실감하고 있는지도 평가해 보겠다는 출제자의 숨은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 논점 분석 : 밑줄 친 ①과 ②의 문맥상 이유를 쓰라는 것인데 이 역시 독서 논술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①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사항이다. 초등학생에게 묻는 질문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환경과의 불화를 겪는 미운 오리새끼가 혼자서는 견디기 어려운 박대와 소외를 경험하면서 생의 막다른 골목에까지 내몰리게 된 경과를 적어주면 된다. 그중에서도 어미오리에게서까지 버림받아야 했던 가족 안에서의 고립무원 상태가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하면 좋을 것 같다. ②는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출제자도 이 문제에서 변별력을 기대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나단 리빙스턴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먹는 일보다도 나는 일 그 자체였다”

이 부분에 대한 맥락적인 이해는 대체로 3가지 국면을 검토하면서 총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문제적 인물인 조나단 리빙스턴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이다. 조나단은 갈매기이면서 갈매기 이상의 자기상(自己像)을 지닌 존재이다. 그는 그냥 존재하기를 원하는 자가 아니라 운명에 도전하여 승리하기를 원하는 자이다. 일상적 갈매기로서의 존재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한다. 새는 사지(四肢)로 기는 육지 동물이나 물속에서 헤엄치며 안주하는 물고기가 아니라 날개를 달고 허공을 솟아오르는 자이므로 “오로지 새는 날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 비유적 모티프는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물 이상의 존재이므로 그 이상의 존재 양태를 가져야 한다”라는 명제를 대변한다. 조나단은 그러므로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내포를 지닌다.

둘째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에 대한 이해이다. 인생의 목표는 유형적인 것과 무형적인 것이 있다. 크고 아름답고 무겁고 빛나는 것이 되려고 하면 그런 것들을 많이 보고 자라야 할 것이고, 깊고 아늑하고 그윽하고 따뜻한 것이 되려고 하면 그런 것들을 많이 느끼며 자라야 할 것이다. 조나단은 ‘높든 낮든 빠르게 날기’를 꿈꾼다. 그것은 그의 몸으로 실천하고 느껴야 하는 과제이다. 그 목표는 생각이 아니라 실천으로 그 스스로 자신의 삶을 최대한 ‘느끼고자 하는 노력’을 격려하고 촉진시킨다.

셋째는 ‘먹는 것’으로 표상된 ‘세속적 이해(利害)’ 내지는 ‘순응적 삶의 태도’에 대한 이해이다. 유소년기 자아는 두 가지 모순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야 한다. 하나는 ‘인내하라’는 요구이고, 다른 하나는 ‘도전하라’는 요구이다. 스승이나 부모나 제도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는 아이들은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자칫 부적응아가 되면 평생을 시련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될 지도 모른다. “인내하라,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다”라는 엄포는 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그 엄포 속에서 아이들은 ‘미운오리새끼’처럼 인내를 미덕으로 알고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 공존을 위하여 세속적 이해에 적당히 타협하여야 된다는 것도 터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도전하라’는 요구도 만만치 않게 주어진다. 현실에 안주하면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못 이룬 자는 꿈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친다. 조나단은 그러한 ‘도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갈매기의 꿈』은 진정한 고전(古典)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 고전적인 텍스트가 강조하고 있는, ‘나는 일 그 자체’에 집착하는 한 어린 갈매기의 에피소드가 ‘가치 있는 일에 몰두하는 태도’라는 인간사에 대한 한 범박한 유추로 이해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 이상의 그 무엇에 도전하는 ‘승리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사회가 요구하는 ‘도전’의 진정한 의미가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 두 번째 본(本) 논술 문제는 위에서 쓴 답들을 바탕으로 ‘미운 오리새끼’와 ‘갈매기 조나단’의 자아 실현 과정을 비교의 관점에서 논하라는 것이다. 

비교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면을 서로 견주어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슷하다’라는 말 자체가 이미 ‘같지 않음’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서로 비슷한 점과 서로 다른 점을 들어 자아실현 과정에 나선 이들 어린 ‘오리’와 ‘갈매기’의 이야기를 비교해 보자.

앞의 논점 분석에서도 밝혔지만, 이 두 주인공은 ‘길 없는 길을 헤매는 어린 새’라는 점에서 서로 공통적인 성격(性格, character)을 지닌 존재들이다. 이들은 처지나 신분이 열악한 인물을 표상한다. ‘오리’와 ‘갈매기’라는 이들의 주어진 신분과 어린 존재라는 처지가 그것을 잘 드러낸다. 열악한 신분이나 처지에서 보다 나은 그것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어린 독자들을 위한 텍스트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내용이다. 이 두 이야기 역시 그러한 ‘규범(canon)’을 잘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주인공은 ‘새 정체성 요구의 심층 기반’이라는 측면에서 판이한 성격을 지닌다. ‘미운 오리새끼’는 본디 백조였으나 오리 속에서 태어난 자로 태생적인 외면적 차이로 인한 박대와 소외를 경험한다. 주변의 박대를 견딘 연후에 비로소 자신의 진면목을 인정받는, 이른바 타의에 의한 ‘사회적 소외’를 넘어서는 인물을 표상하고 있다면, ‘갈매기 조나단’은 스스로 자신의 새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이른바 ‘존재론적 소외’를 자청하고 있는 인물을 표상한다.

따라서 이 두 주인공의 자아실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인간적 덕목 역시 서로 다르게 묘사된다. ‘미운 오리새끼’에게는 꿋꿋하게 주어진 상황을 인내하면서 자신에게 내장(內藏)된 본연의 모습이 출현하기를 기다리는 ‘인내’의 덕목이 강조되고, ‘갈매기 조나단’에게는 죽음도 불사하는 맹렬한 자기 연마의 ‘도전’이 강조된다.

이 두 제시문이 공히, 인내와 도전을 통해, ‘승리하는 인간’을 찬양하는 메타포이지만, 하나는 유소년기의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한 텍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청소년 이상의 독자를 위한 텍스트라는 점에서 ‘주인공의 역할’에 대한 텍스트 서사 내적 안배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미운 오리새끼’가 당하는 모욕과 소외 그리고 생존의 위협 그 자체에 대한 강조로 주인공의 ‘반응적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갈매기 조나단’이 비행(飛行)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여러 가지 정보는 그것이 ‘삶의 이치’와 상통(相通)하는 유추적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것이다. 유추적 맥락의 정교성이 이 이야기를 ‘서사적 가치’가 뛰어난 서사물로 만드는 주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야기들이 유추를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인간 이해’를 크게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주관을 통해 객관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주관과 객관에 내재하는 ‘미지의 법칙성’을 연결해 주는 것이 곧 유추를 바탕으로 한 비유이다. 유추는 두 영역을 일차원적으로 결합시키거나 억지로 그것들 사이의 동일성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괴테는 유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추를 통한 표현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또한 매우 유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추의 대상은 억지를 부리려 하지도 않고 무엇을 증명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다른 대상과 서로 맞은편에 세워지는 것이다. 유추란 무엇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사교 모임과도 같은 것이다.” 유추에 대한 이와 같은 괴테의 설명을 따른다면, 자연법칙과 인간의 사회적 관계, 자연과학과 문학의 유추 관계란 그것들 사이의 일차원적 상응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영역에 대해 사고의 ‘자극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서로 ‘마주 세워진’ 관계인 것이다. 『갈매기의 꿈』에 나타난 ‘갈매기 조나단’의 자아실현 과정은 그렇게 ‘마주 세워진’ 하나의 ‘자극’으로 독자들에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나단의 자아실현 과정’은 ‘미운 오리새끼의 자아 회복’과는 상이한 의미론적 차원에 놓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줄은 어떻게?]     


논점 분석에서 살펴 본 문제들을 풀어서 써 주면 무난한 논술이 될 것이다. 출제진 예상 논지 정도가 될 만한 예시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밑줄 친 ①에 대한 답은 생략한다.     

* 예비 문항 : 조나단은 갈매기이면서 갈매기 이상을 꿈꾼다(갈매기 이상의 자기상(自己像)을 지닌 존재이다). 그는 그냥 존재하기를 원하는 자가 아니라(먹고 사는 일에 충실하기 보다는) 타고난 한계에 도전하여 그것을 극복할 수 있기를 원하는 자다(사람으로 치자면, 운명을 넘어 ‘승리하기’를 원하는 자이다). 일상적 갈매기로서의 존재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한다. 새는 (사지(四肢)로 기는 육지 동물이나 물속에서 헤엄치며 안주하는 물고기가 아니라 날개를 달고) 허공을 솟아오르는 자이므로 ‘새는 날기 위해 존재한다’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 비유는 ‘인간은 동물이지만 동물 이상의 존재이므로 그 이상의 능력(존재양태)을 가져야 한다’라는 뜻을 지닌다(명제를 대변한다). 조나단은 그러므로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라는 뜻이다(내포를 지닌다).     

*본 문항 : (도입) ‘미운오리새끼’와 ‘조나단’은 자아실현을 위하여 여러 가지 시련과 역경을 겪었다(구체적인 서사적 디테일 예시). 아름다운 백조이면서도 못난 오리와 비교되면서 ‘미운오리새끼’로 자라야 했던 어린 백조의 처지나, 갈매기로 태어났지만 ‘먹고 사는 일’에만 얽매여 살아야 하는 못난 삶이 싫었던, 그래서 ‘나는 일 그 자체’에 몰두하는 ‘조나단’의 처지가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전개) 그러나 이 두 주인공은 자아실현을 하는 방법에서 많이 달랐다. ‘미운오리새끼’가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고 인내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림으로써 자아실현을 완성했다면, ‘조나단’은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도전으로 진정한 자아실현에 도달하였다(이 두 경우 중 어느 한 쪽을 지지하거나,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예시하는 경우도 인정). (두 주인공의 삶을 요약적으로 제시)

(결론) 두 이야기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개성과 역량이 서로 다르므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아실현을 이룰 수밖에 없다. ‘미운오리새끼’가 만약 ‘조나단’처럼 무모한 도전을 일삼았다면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하기 전에 사냥꾼에게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조나단’ 역시 ‘미운오리새끼’가 원했던 것처럼, 다른 갈매기들과 어울려 평화롭게 살려고만 했다면 진정한 자아실현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아실현이라는 것은 그냥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만이 진정한 자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인내나 기다림, 혹은 견디는 것도 자아실현의 한 중요한 과정이다. 어느 한 쪽을 긍정하고 다른 한 쪽을 부정하는 일관된 논지 전개도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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