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보낸 편지
<살아서 진정했던 자들은, 러브 레터>
이번에는 귀신이 보낸 편지 이야기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심리학 쪽 공부 하나 간단히 했으면 한다. 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는 게 좀 있어야 제대로 생을 즐길 수 있다고 옛날 어른들이 자주 말씀하셨다. 앞에서 다 하지 못한 귀신 이야기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귀신은 인간들에게만 나타난다. 귀신에게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말은 결국 귀신은 인간의 ‘두려움’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인생 그 자체가 늘 우리에게는 두려움일 수 있다. 그래서 그 두려움, 그 불안을 밖으로 대상화한 것이 귀신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두려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의 출처는 어딘가? 앞에서는 단순히 ‘무의식’이라고만 했다. 이제 그 본색(本色)에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의 출처를 ‘무지(無知)’에서 찾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무엇이든 몰라서 무섭고, 알면 두려움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체로 동양학(주자학)하는 이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하는 것 같다. 군자가 되면 만사형통이니 그럴 만하다. 매사에 잘 터진다(와이파이?). 그러나 우리 같은 속인들의 사정은 많이 다르다. 모르는 게 약일 때가 많다. 문제는 항상 우리의 생각, 우리의 앎(제한된)이다. 모든 게 거기서부터 발생한다(모든 생각은 자기중심적이고, 피해망상적이거나 과대망상적이다). 프로이트가 한 말이 있다. ‘두려운 낯익(설)음 Unheimliche’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은 오래되었지만 친근하고, 친근하지만 오래된 것이 억압된 결과이다. 그것들은 늘 ‘자기 집(Das Heimische)’ 안에 있는 것들이다(①자기 집, ②학교, ③종교 건물, ④무덤). unheimlich는 억압당한 heimlich이며, 그것의 회귀도 바로 억압을 당한 그곳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생각이다. 전혀 낯선 것들, 우리의 집 안에 있지 않은 집 밖의 것들은 큰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려운 낯섦의 기원을 억압된 친숙한 것에서 찾아낸 프로이트는 좀 더 구체적으로 두려움의 조건들을 열거한다. 생각의 전능성, 욕망의 순간적인 실현, 숨어 있는 해로운 힘들, 죽은 자들의 돌아옴 등이 그 조건의 목록들이다. 한편으로 비켜 놓았던 옛날의 믿음들이, 사실로 입증되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두려운 낯설음의 감정을 가진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결국은 ‘아직도 내가 네 친구로 보이니?’가 제일 무섭다는 말이다. 내 마음속의 귀신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하고 ‘멋있고 사랑스런 귀신이 보낸 편지-러브레터-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자).
영화 『러브레터』(이와이 슌지, 1999)는 죽은 한 남자가 살아생전의 두 연인(戀人)에게 치유의 은사(恩賜)를 내린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매개가 되는 것은 ‘편지’다. 그 편지를 통해서, 죽은 옛 애인에 대한 기억을 통해, 두 여인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 편지는 명실공히 <러브레터>가 된다. 죽은 한 사람의 남자(남자에 대한 기억)가 살아있는 두 사람의 여자 애인들(한 명은 원본이고 또 한 명은 복사본이다)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선사한다. 그래서 영화 <러브레터>는 ‘귀신이 보낸 편지’가 살아있는 인간을 구원한다는 이야기다. 귀신(후지이 이츠키男)은 아직도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는 생전의 연인(히로코)에게 오타루에 있는 자신의 분신(동명이인)이자 첫사랑인 만성 감기증 환자, 이츠키(女)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귀신은 자신의 집을 찾은 히로코에게 편지가 가야 할 곳의 주소를 가르쳐 준다(앨범의 주소). 그녀는 자신의 팔뚝에 그것을 기록한다. 그것은 영혼의 문신이다. 종이에 쓰는 약속과는 다르다. 그것은 귀신과의 약속을 나타내는 징표다. 히로코가 <오겡끼데스까? 와다시와 겡끼데스>라고 편지의 서두를 장식하는 것은 물론 귀신이 시켜서 쓴 것이다. 이츠키(女)가 늘 감기를 몸에 달고 사는 것을 귀신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안부가 아니다. 그랬으면 순백의 설원(雪原)에서 행해지는 ‘살아남은 자의 절규’, <오겡끼데스까>도 없다. 물론 그 외침에는 히로코의 미안함과 이츠키(男)에 대한 야속함이 공존한다. “나는 괜찮은데 당신은 어때요?”도 들어 있고, “당신 그렇게 떠나놓고도 (맘 편히) 잘 지내고 있나요?”도 들어 있다. 그만큼, ‘살아남은 자’의 심사는 복잡하다. 그래서 히로코는 이츠키(女)d게도 시치미 뚝 떼고, 당신이나 나나 우리 모두 아프지 않습니까, 라고 쓴다. 물론 귀신이 가르쳐 준 것이다. 오타루의 그녀는 겉으로는 (감기가 폐렴으로 도져 죽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그런 식으로 ‘연장’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첫사랑에게(그녀가 사랑을 고백하지 않아서 그렇게 떠난 것일 수도 있다. 무의식은 그렇게 생각한다) 일찍이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죄과에 대한 자기 처벌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대표적인 징벌은 감기와 남자 기피증이다). 물론 둘 다 무의식의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지만,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감기 증상이 떠나는 것과 남자가 접근하는 것을 죽기보다도 더 두려워한다(그렇지 않으면 병이 아니다).
히로코가 보내는 편지는 오타루의 원본, 이츠키(女)의 사랑(첫사랑) 이야기를 요구한다. 죽은 연인의 첫사랑이 누구냐고 집요하게 추궁한다. 물론 귀신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히로코를 시켜 살아서 못 들은 사랑 고백을 기어이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이츠키 역시 조금도 지기 싫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첫사랑에게 사랑 고백을 기어이 하고야 말겠다고 벼른다. 결정적인 이야기들만 골라서 히로코에게 송부한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전달한다. 절대 자신은 누구의 첫사랑 따위는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죽어도 죽은 당신의 연인이 내 첫사랑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내가 원본이라고 자신의 존재 증명을 끝까지 완수해 낸다. 결국은 히로코의 항복을 받아내고 만다. 히로코로부터 ‘나는 당신의 조잡스런 복사본에 불과했습니다’라는 자백을 받아내고 만다. 그래서 히로코는 죽은 연인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새 사랑을 찾아 떠날 수 있게 되고, 이츠키는 귀신이 되어버린 첫사랑을 애도하면서, 그의 사랑을 물증으로 확인하면서(도서카드의 뒷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놓은 것을 확인한다. 그것은 그녀의 첫사랑이 떠나는 날 자신에게 준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뒷면에 꽂혀 있었다), 자기 처벌의 오랜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새로운 삶이, 사랑 가득한 미래가 그녀를 기다린다.
진정한 사랑은 그렇게, 죽어서도 사랑의 메신저가 되는 모양이다. 살아서 진정했던 자들은 죽어서도, 자신의 살아생전의 자취로, 산자들을 독려해,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나간다. 지금도 ‘귀신이 보내는 편지’는 여기저기서 우리를 독려한다. 우리의 ‘개봉(開封)’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야말로 호시탐탐(虎視耽耽), 개봉박두(開封迫頭)다. 자기 안을 들여다볼 일이다.
추신 1 : 여기서 ‘귀신의 역할’을 기호의 힘으로 보면, 기표의 창발성(기의를 만들어내는 기표)이 그들에게(이츠키와 히로코) 사랑을 되돌려주는 원동력이 된다. 옛사랑에 대한 미련과 새 사랑에 대한 기대 속에서 번민하는 히로코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욕망-원망-죄책감>을 편지에 담아 보내고 당연히 그 편지는 사랑이라는 기의를 불러내는 그릇(기표)이 된다. 그 편지(기표)가 이츠키(女)에게 억압된 ‘사랑의 기억’이라는 기의를 소환하게 한다. 강제로 기표가 기의를 불러낸다. 이츠키는 소환된 기억으로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된다(될 것이다).
추신 2 : 여기서 ‘귀신의 역할’을 ‘시간을 되돌리는 메신저’로 본다면, 기억의 발굴이라는 ‘과거의 현전’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과거-현재>의 삶에 몰랐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그들이 주고받는 편지는 기억의 ‘발굴’에 필수적이 매장물 지표다. 과거는 현전하면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재탄생한다. 히로코는 자신이 이츠키의 복사본이라는 것을 알고 죄책감에서 벗어난다. 과거는 현재에 의해서 이서(裏書)될 때만 의미 있는 시간으로 재탄생(재구성)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흐른다’라는 생각은 시간을 공간으로 환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의 차원은 3차원에 속박되지 않는다. 이츠키와 히로코는 <과거-현재>를 공유한다.
추신 3 : 여기서 ‘귀신의 역할’을 신경증에 대처하는 주체의 자기실현 노력으로 보면, 편지의 주인인 그녀들은 각각에 필요한 애도를 충분하게 행하지 못해 얻은 신경증으로부터(아버지와 연인의 죽음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부터), <러브레터>라는 자기 고백의 과정을 통해, 필요하고 충분한 애도의 기회를 가지게 되면서(질병의 치유라는 은사를 입고), 벗어나게 된다. 히로코는 아키바와의 새(억압된?) 사랑을 성공적으로 꾸려나가게 되고, 이츠키(女)는 강박의 소산인 보호자적 인격(상처를 주는 남자의 접근을 차단하는)과 이별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게 된다(우편배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