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선규 Feb 17.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저자의 말

저자의 말

이 책은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도전하려는 이들을 위해서 쓰여진다. 평소에 좋은 글도 자주 찾아 읽는 편이고 한 번씩 글도 써 보는데 만족스러운 글쓰기가 되지 않는 분들에게 특히 유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복잡한 글쓰기 이론은 일절 다루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오히려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무용 지식(無用知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기본 생각 세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글쓰기에는 이론이 없다: 글쓰기에는 이론이 없다. 글쓰기는 온전히 실기(實技)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이론에 좌우된다는 생각을 표방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무용 지식일 공산이 크다. 특히, 생각하기(아이디어 생성 및 목표 설정), 글감 찾기(제재 선택 및 전략 수립), 글쓰기(목표의 구체화 및 조직), 글 다듬기(정교화 및 수정) 등으로 선형적인 글쓰기 과정을 상정하고 이론화를 추구하는 것들은 거의 다 설명을 위한 설명일 때가 많다.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라 저자를 위한 책이다. 경험보다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는 글쓰기 책은 글쓰기 공부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백해무익이다. 글쓰기 공부에서는 그런 책들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이론의 유혹에서 벗어나 실행의 장으로 용기 있게 나서는 게 중요하다. 이론을 강조하는 책들의 저자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자기 글은 잘 쓰지 못한다. 글을 좀 써 본 사람들은 그런 책을 쓰지 않는다. 이론에 치중하는 사람들 중에는 지식이 실천의 의무를 면제한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흔히 본다. 거듭 말하지만, 글쓰기 기술을 배우려면 이론을 내세우는 책이나 선생을 피해야 한다.


글은 손으로 쓴다: 글은 손으로 쓴다. 글 쓰는 자는 손으로 생각한다. 미식가는 혀와 입천장으로 생각하고 격투기 선수는 주먹질과 발길질로 생각하고 검객은 칼로 생각하고 요리사는 손, 코, 입으로 생각하고 목수나 미용사는 눈과 손으로 생각한다. 숙련된 작가는 오직 손만으로 생각한다. 글을 머리로 쓰면 글쓰기의 진정한 경지에 들 수 없다. 가용할 수 있는 의식과 무의식을 충분하게 써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은 손으로 쓴다’라는 말은 글쓰기가 자신의 삶 전부를 반영하는 실천의 장이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에는 이중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든 문장에는 겉 뜻과 속뜻이 있다. 이 말도 마찬가지다. 글쓰기가 육체적 작업을 수반하는 실천 영역이라는 겉 뜻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수립해 나가는 윤리적 실천 과정이라는 속뜻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손은 거짓말을 모른다. 손은 자신이 살아온 것을 그대로 반영한다. 내가 모르는 나를 손은 알고 있다. 


설명, 묘사, 서사, 논증: 글쓰기 기술은 설명, 묘사, 서사, 논증이라는 네 가지 의도(意圖)의 차원을 가진다. 보통 기술(記述)의 네 가지 방법으로 이것들을 설명할 때가 많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의도의 네 가지 차원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글쓰기 의도에 따라서 이 네 가지 차원은 서로 돕고 서로 배제하며 글쓰기 세계 속에서 상생한다. 설명에 묘사와 서사가 이용되기도 하고 서사의 편의를 위해 설명이나 묘사가 이용되기도 한다. 감동을 주는, 바닥을 치는 묘사가 필요할 때는 정서 감응에 불필요한 설명이나 서사는 가급적 절제되고 반박을 불허하는 일격필살의 논증이 요구될 때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설명이나 서사를 적극 활용된다. 유명한 소설의 명 묘사 장면이나  판사의 판결문 같은 것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설명, 묘사, 서사, 논증은 글쓰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나누어지는 게 좋다. 그 분별 자체가 글쓰기의 힘을 덜어내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정진하려면 이 네 가지 기술부터 차근차근 익혀야 한다.


이 책이 ‘글쓰기 인문학 10강’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된 것은 두 가지 까닭에서다. 첫째 ‘글쓰기 인문학’이라고 명명한 것은 글쓰기야말로 인문학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것이다. 글쓰기 없는 인문학은 속 빈 강정 신세에 불과한 것이고, 역으로 인문학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 글쓰기는 아무리 공을 들여도 도로(徒勞)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10강’을 부기(附記) 한 것은 열 번의 강의 정도면 글쓰기에 대한 지식 차원의 공부는 모두 마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이 두 가지 집필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글쓰기 기술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인문학적 마인드가 형성되는, 그러면서도 읽기에 쉬운 책을 꼭 쓰고 싶었다. 그러나 “값싸고 좋은 차는 없다”라는 속언에 우리 모두가 공감하듯이, “읽기 쉬우면서도 심오한 이치를 가르쳐 주는 책은 없다(글쓰기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격언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개념어들이 범람하는 딱딱한 책은 면했다는 자부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사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큰 제목이든, 작은 제목이든 굵은 활자로 인쇄된 것들(선입견의 허를 찌르는 명제)의 의미에 집중하며 책을 읽어 나간다. 

② 각 장에는 예문과 그것에 대한 해설이 있는데 <예문-해설-예문> 순서로 피드백하면서 읽는다. 

③ 마음에 드는 예문이 있으면 비슷한 주제나 소재로 모작(模作)을 해본다. 

④ 손 가까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간헐적으로 읽는다. 

“아는 것만으로는 항상 불충분하다”라는, 젊은 시절에 들은 한 스승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열 번 정도, 열흘 정도의 공부면 글쓰기에 대해서 ‘아는 것’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많이 아는 것은 좋은 글쓰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는 것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이 책은 평생 글을 써 온 내 경험의 소산이다. 부디 글 쓰는 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