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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20. 2019

좌측으로 진을 치니 허물이 없다

주역, 지수사

좌측으로 진을 치니 허물이 없다   

  

어제는 목련꽃 그늘을 찾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 그렇게 목련꽃을 기립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이 때쯤이면 고등학교 시절 가형(家兄)과 함께 부르던 ‘목련꽃 그늘 아래서’로 시작하는 노래(사월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그 노래처럼 매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노래가 또 있을까요? 아마 그 노래처럼 한 해 한 해 의미심장을 더하는 노래도 또 없을 겁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앳된 커플에게 ‘신입생?’이라고 물었더니 ‘3학년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한 컷을 부탁했더니 눕혀서 하나, 세워서 하나, 두 컷을 찍어주었습니다. 노(老)교수의 봄나들이가 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인생의 빛나는 계절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장도(壯途)에 행운만이 가득하길 빕니다. ‘지수사 地水師’, 주역 일곱 번째 괘는 사(師)괘입니다. 무엇이든 정도(正道)를 따를 것을 권합니다.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 듯, 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포용으로 사람을 대할 것을 강조합니다.  

   

사(師)는 바르게 해야 하니, 장인(丈人)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으리라.(師貞丈人吉无咎) 

    

상전에서 말하기를, 땅 가운데 물이 있음이 사(師)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백성을 받아들이고 무리를 기르니라. (象曰 地中有水師 君子以容民畜衆)   

  

육사는 군사가 좌측으로 진을 치니 허물이 없도다. (六四師左次无咎) - 자리를 얻었으되 응함이 없으니, 응함이 없으면 행할 수는 없으나 자리를 얻으면 처할 만하다. 그러므로 좌측으로 진을 쳐서 허물이 없다. 군사를 쓰는 법은 오른쪽 등을 높게 하므로 왼쪽으로 진을 치는 것이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좌측으로 진을 치니 허물이 없다’는 것은 평상을 잃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비록 (적군을) 사로잡을 수는 없어도 족히 (자신의) 평소 상태를 잃지 않을 만은 하다.[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84~89쪽]  

   

왜 하필 왼쪽으로 진을 쳐야 허물이 없다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진법의 문제로 ‘오른쪽을 높게 하다’와 관련된 문제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옛날식 어법에서는 좌우가 여러 가지 대비적인 위상을 대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좌포청, 우포청도 그렇고 좌수사, 우수사도 그렇습니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은 품계라는 것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아마 현재로서는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그 어떤 코드와 맥락이 당시에는 있었을 듯합니다. 지금에 와서는 소멸된 것들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그 모든 것에 앞서서, ‘지수사(地水師)’에서는 ‘평상심’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습니다. 이 괘 해석은 평상심을 잃지 않고 반듯하게 살라는 권면으로만 새기겠습니다. 그저께 잠깐 평상심을 잃고 측근 인사에게 한 ‘지적질’을 한 것이 후회가 됩니다. “자신을 몰라야 하는데 알면서도(안다고 자처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면 그게 병이다.”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살다보면 집착을 할 일에 집착을 해야 하고 공감을 할 때 공감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는 자기반성의 고백을 듣고서 그런 지적질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오른쪽 등을 높게 하고 좌측으로 진을 치면) 살다 보면 결국에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덕담으로 마감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는데 그만 가볍게 입을 놀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주제넘게도 제 어릴 때 경험까지 들먹였습니다. 어려서 너무 세파(世波)에 시달리면서 한때 공감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던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그걸 깨닫고 대오각성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투로 자랑질까지 했습니다. 자기가 무슨 ‘사(師)’나 된 듯이 오만방자를 떨었던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그 일을 떠올리니 얼굴이 뜨겁습니다.

          

‘지수사(地水師)’, “땅 중에 물이 있으니 군자는 그것처럼 백성을 길러 비축한다”라는 말이 심금을 울립니다. 그 괘가 구구절절이 저를 가르칩니다. 그것을 읽은 지 오래되었건만 아직도 ‘좌측에 진을 치’지 못하는 제 신세가 가엽습니다. 고작해야 ‘교통사고에서 같은 과실이라면 오른쪽 진행 차량에 조금 더 사정을 두고 사정(査定)을 한다’라는 정도로만 이해했던 것을 알겠습니다.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면 그게 병이라는 것도 결국 저 자신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지수사(地水師)! 사정장인길무구(師貞丈人吉无咎)!

<2015. 3. 20.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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