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그리스 - Πατρίνο Καρναβάλι
사실 카니발 하면 리우나 베니스가 먼저 떠오른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데 역시 스케일이 다르다. 리우 카니발은 삼바축제, 베니스는 가면축제가 중심이 된다.
그리스는 사실 이 정도는 아니고...ㅎㅎㅎ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부활절 전 49일 동안 금식 기간을 지낸다. 고기, 유제품, 치즈 오일 등 금식하는 음식이 몇 가지 정해져 있어 모슬렘의 금식보다는 조금 여유롭다. 요즘은 독실한 정교회 신자가 아니면 금식을 지키지 않지만, 부활절과 관련된 축제는 칼같이 지킨다.ㅎㅎ 금식기간 전, 즉 부활절 10주 전부터 7주 전까지 3주의 기간을 Απόκριες (apokries, 아포크리에스)라고 부르며 사육제를 즐긴다. 이제 먹지 못하게 될 고기와 술을 다 먹어버리겠다는 의미인가. 그리스의 아포크리에스는 할로윈과 카니발을 합쳐놓은 느낌이다. 일반 사람들도 할로윈처럼 코스튬을 입고 축제를 즐긴다.
* Carnival = carne (고기) + vale(farewell) / levare(제거하다)
* Αποκρίες = από (apo, from) + κρέας (kreas, meat)
= απέχω από το κρέας (apeho apo to kreas, be far away from meat)
(카니발과 아포크리에스는 언어만 다를 뿐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튼! 나름 그리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카니발이 열리는 파트라스로 떠났다. 파트라스는 아테네에서 약 200km,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테살로니키에 이어 제2의 항구도시이자 아테네, 테살로니키 다음으로 가장 큰 도시이다. 유적지나 관광지로는 모르겠지만 카니발과 마브로다프니라는 품종의 와인으로 가장 유명한 것 같다. 나는 작년 카니발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되었다.
원래는 코스튬을 입고 축제를 즐기는데, 코스튬까지는 무리인 것 같아 친구들끼리 토끼 머리띠를 맞춰 쓰기로 했다. 토끼 수염이랑 코를 그리려고 하다 작년에도 고양이 코를 그렸기 때문에... 차별화를 하기 위해 그냥 화장만 조금 신경 써서 했다 :) 그리고 사실 저것은 토끼가 아니라 당나귀임. 신나서 셀카 짱 많이 찍고 개한테도 씌워주고 히히 지금 생각하니 너무 아쉽다. 내년에도 올 수 있다면 꼭! 풀 코스튬을 장착하고 올 거임.
퍼레이드 시작은 2시라, 점심을 얼른 먹고 와서 겨우겨우 앞자리에 설 수 있었다.
지나가다 아는 사람 있으면 인사하러 와서 얘기하다가 간다ㅋㅋㅋㅋ 줄 이탈해도 되는 거야...? 그리스식 카니발이라 가능한...
이 아주머니 너무나 흥이 넘치는 것
아무래도 저 덩어리가 비를 몰고 오지 않았나 싶다
완젼 귀여웠던 바람개비 컨셉의 애기들
기자들도 센스 있게ㅋㅋㅋ 나름 꾸미고 왔다 귀여워
사람이 이렇게 바글바글 모여있고 아파트 난간으로 내다보는 주민들도 있었다. 비도 안맞고 편하게 볼 수 있었겠네...부러워...
퀄리티가 제일 좋았던ㅋㅋㅋ잭 스패로우
악귀를 쫓아준다는 Μάτια(Evil Eye) 컨셉ㅋㅋㅋㅋ
포켓몬 트레이너들과 피카츄!!!!! 왠지 모를 동질감...
강강술래처럼 행진하다가 삥삥 돌고 그런다. 완죤 유쾌한 거 아니냐
케찹필터가 낭낭하지만 비 안 올 때는 틈틈이 사진도 찍었다. 입에서 호루라기는 절대 뗄 수 없었음
퍼레이드 하는 사람들이 뿌려준 컨페티. 근데 너무 안 예쁜 거 아니냐..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데 넌 멀리 보아야 아름답구나... 저 종이조각들은 아직도 털 구석구석에 끼어 빠져나오지 않는다. 옷 빨아야 하는데...
시간 상으로 보면 이때쯤에 해당하는 것 같다. 퍼레이드 중 한 기자가 플래시까지 대동해서 사진을 찍어주고 갔는데, 예전에 코트라에서 같이 일했던 대리님이 기사에 실렸다며 링크를 보내주셨다. 찍은 사진 메일로라도 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히히. 짧게 지나간 사진이지만 그래도 그리스 기사에 실리다니. 영광이야.
http://m.lifo.gr/now/greece/134937
2시부터 한 3~4시간 동안 서 있었더니 너무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서ㅠ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셀카 찍고 놀았다 히히 와인은 Μαυροδάφνη, 마브로 다프니라고 하는 아카이아 현 토착 와인이다. 묵직한 바디감과 표정이 찡그려질 정도의 당도, 그리고 높은 도수가 특징이다. 거의 소주에 가까운 15도로, 축제를 즐기기에는 최적인 와인이다. 아니나 다를까 몇 모금 마시니 알딸딸해지는 게 기분이 좋았다. 좀만 덜 달았다면 신나게 마시고 미친 듯 놀 수 있었을 텐데. 결국 한 병을 다 마시지 못하고 아테네에 들고 왔다..
예쁘게 꾸며져 있던 길거리의 조명들. 지금 보니 다 흔들렸구나....
퍼레이드는 대충 한 7시까지? 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신나게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너도 저 버스 타러 가자고.. 아니 딱 봐도 자리가 없는데요....
항구 쪽 광장에는 바이킹과 행사 천막 등으로 가득했다.
링을 던져서 와인병 목에 걸면 와인을 주는 코너가 있었는데ㅋㅋ 애들이 다 정신이 팔려서 쳐다보고 있는 모습. 뭔가 귀여워서 찍었는데 잘 찍혀서 기분이 좋다. 제목은 <도박에 정신 팔린 토끼들>
총 쏴서 인형, 풍선 맞추는 게임도 있었는데 역시 여기에도 정신이 팔려있는 토끼들. 하지만 줄도 길고 어려워 보여서 그냥 지나쳐왔다.
이렇게 놀이기구도 설치가 되어있었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하나도 타보지 못했다. 재밌어 보였는데 나름...
그래서 우리는 바이킹을 타보기로 했다! 2.5유로였던 것 같다. 매표소 할머니가 자꾸 그리스어 잘한다며 극찬을 하시고 대단하다고 했다. 그냥 티켓 한 장 달라고 한 것뿐인데... 아무래도 동양인이 워낙 없는 곳이라 그랬던 것 같다.
놀이기구 못 탄다는 은수, 윤주 언니, 금비까지 꼬드겨서 탔다.
한국 동네 아파트에 장 설 때 오는 정도의 작은 크기였는데도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재밌게 탔다. 솔직히 우리 덕분에 재밌어 보여서 줄 선 사람 있을 거야. 이 정도면 홍보용으로 공짜로 태워줘도 되는 거 아니냐.
지나가다가 만난 카드맨, 바나나맨들이랑 사진도 찍었다. 작년에 코스튬 입은 사람이랑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도 별로 많이 못 찍어서 아쉬웠다.
나는 걸음이 느려서 항상 뒤처지는데, 토끼 귀 덕분에 애들을 잘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멀리서도 귀만 보였다.
신나게 퍼레이드 보고, 밥 먹고 하다 보니 벌써 버스를 타러 갈 시간이더라. 10시가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불꽃놀이는 못 보고 가는구나 하며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버스 타러 가는 길에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처음 쏘는 것들은 완전 별로라서 막 에버랜드 출장 좀 갔다 와라 좀 배워와라 했는데ㅋㅋㅋ 점점 대규모로ㅋㅋㅋㅋ 카메라가 꺼지는 바람에 핸드폰으로밖에 못 찍었다. 색감을 못 잡은 게 조금 아쉬웠지만 팡팡 터지는 불꽃을 보면서 괜히 마음이 후련해졌다.
확실히 이번 축제 방문은 지친 일상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물론 호루라기를 세게 부는 것만으로 끝나긴 했지만, 큰 소리를 내본 적이 얼마만인지. 그리고 한국에서와는 달리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여기저기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내가 참 신기하다. 짧은 기간 동안 그리스를 최대한 많이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매년 이렇다 분명 비행기표 예매할 즈음에는 최대한 한국에 빨리 돌아오고 말거라며 대충 뒹굴거리다가 돌아와야지 생각하는데 출국하고 나면 하루라도 더 있고 싶다. 5개월이나 남았지만 벌써 출국 날짜가 다가오는 느낌이다. 애증의 그리스인가.....? 그동안 최대한 재밌고 유익하게 즐기다 가야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 여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