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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ou Mar 28. 2017

이건 진짜 방문기 - 그리스 델피

끄적끄적 그리스 - 델피

열심히 여행하기로 마음먹은 지 3주 차. 지난주에는 비가 많이 와서 아무 데도 가지 못했고, 이번에는 3월 초부터 엉덩이 들썩거리며 신나 했던 델피와 아라호바를 갔다.  사실 델피는 세 번째, 아라호바는 두 번째이지만 계절마다, 함께 하는 사람마다 매번 달라지는 여행이고 가격도 저렴하니 망설임 없이 출발을 했다.


델피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당연히 현재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있다. 위치로 따지자면 그리스 중부의 가장 북쪽, 파르나소스 산에 위치해있고 아테네에서는 버스로 2시간 반 정도 걸렸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 의하면 파르나소스 산은 그리스 신화 판 노아, 데우칼리온이 처음 자리를 잡아 인류를 되살린 곳이기도 하다.


첫 세대(?)의 인간들이 탐욕, 시기, 질투, 분노 등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악행을 일삼자, 제우스는 모든 인류를 없애고자 했다. 예언의 능력이 있던 프로메테우스는 아들 데우칼리온에게 대홍수가 오기 전 방주를 만들라고 귀띔해준다. 프로(προ)는 ‘먼저’, ‘앞’이라는 의미의 접두사, 메테-(μαθ)는 ‘배우다’라는 동사 μαθαίνω의 어근이다. 즉, 먼저 배우는 자의 아들이 신의 결정을 미리 전해 들은 것.


방주에서 살아남은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는 파르나소스 산에 도착하여 제물을 바치고 인류를 되살릴 방법을 묻는다.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지라는 하늘의 지시가 있었고, 그들은 대지의 어머니인 가이아의 뼈가 바로 돌이라고 생각하여 돌을 등 뒤로 던졌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어 인류가 다시 탄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파르나소스 산은 신화에 여러 번 등장한다. 판과 뮤즈들의 성지인 코리키안 동굴이 있다고 전해지고,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의 집이라고도 한다. 당연히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 잘 알지만 괜히 두리번거리며 상상하게 된다.


하필, 델피를 가기로 한 날 시내에서 마라톤 경기 때문에 도로가 차단되었다. 덕분에 델피 비용에 가까운 11유로를 택시비에 쓰고 말았다. 심지어 늦었지만 버스가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감동이야….

델피에 도착하자마자, 드높은 돌산이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스 산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돌 산이다. 올리브나무 숲이 조금씩 듬성듬성 나 있는 게 전부인데, 그리스 땅의 80%가 산지라고 배웠다. 고대 그리스에서 폴리스가 생겨났던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산악지형이기도 하다. 아무튼 오랜만에 날씨가 너무 좋았고, 조금만 걸었는데도 발등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 저 먼발치에서 아련하게 보이는 아테나 신전 톨로스!

나는 입장이 무료인데 학생증을 두고 오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학생요금 6유로를 냈다.. 성인은 12유로... 흑.. 우선 입장하고 나면 로만 아고라도 있고, 배꼽도 있고 그렇지만 그냥 패스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아테네의 보물창고이다. 아폴론의 신탁을 받는 일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스 전국 각지에서 서로 신탁을 받겠다고 몰려드는 탓에, 순서는 추첨으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그중에도 델피에 많은 선물을 바쳤던 폴리스의 시민에게 우선권을 주었다. 그렇다 보니 온갖 보물과 봉헌물들이 델피로 쏟아지게 되었고, 각 폴리스에서 바친 보물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가 있었다. 아직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고, 복원된 곳은 아테네의 보물창고. 델피 박물관에 가면 어디선 어떤 걸 바쳤고 뭐 이것저것 볼 수 있는데, 그건 언제 다 정리하냐...

아폴론 신전 맞은편에 있는 청동 기둥. 페르시아 전쟁 중에 플라타이온 전투에서 폴리스 연합군이 승리하자, 아테네가 페르시아 군의 방패를 녹여 만든 기념품이라고 한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원래는 위에 뱀이 있었고 전투에 참가한 폴리스의 이름이 쓰여있다... 고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델피가 명성을 잃고 오스만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델피의 수많은 유적들이 지금의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약탈되었다ㅠㅠㅠ 터키 개객끼들ㅠㅠㅠㅠ

이제야 보이는 아폴론 신전. 두둥.

아폴론은 음악, 조화, 빛, 태양의 신이자 예언의 신으로, 델피 성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첫 신천은 기원전 7세기, 두 번째 공사는 기원전 4세기경에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아테네의 알크메오니돈 가문의 지원으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6x15개의 도리아식 시둥으로 지어졌으며 파로스 섬의 대리석이 사용되었다고. 낙소스? 뭐 어디 대리석이 엄청 좋기로 유명해 델피에서 다 쓸어담았다고 했었는데ㅎㅎ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다.. 사실 세 번이 아니라 신화 얘기까지 포함하면 한 네다섯 번 지어졌던 건데 아무튼 지금 보이는 아폴론 신전은 기원전 330년에 지어졌다. 사스가...

원랜 이렇게 생겼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있는 6개의 기둥만으로도 위압감이 어마어마한데,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크으으으..신탁을 저기서 받았던 걸까ㅇㅅㅇ

아폴론은 올림포스 신 중 가장 잘생겼고, 다재다능한 신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 아름다움, 음악, 예언, 의술, 활의 신이다. 신들은 태어나고 며칠이 안돼서 성인의 몸을 갖게 된다고 하지만.. 바로 며칠 만에 델피를 차지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뱀 피톤을 죽이고 이곳을 자신의 성역으로 삼았다. 피톤이 거의 큰 산 하나 크기인 데다가 가이아의 자식이기까지 한데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이 무찌를 정도로.. 후! 그리고 피톤의 아내였던 피티아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아폴론의 신탁을 전달하는 여사제의 역할을 맡게 된다. 피톤이 좋은 괴물은 아니었지만, 가이아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 4년마다 이 곳에서 피티아 제전을 열고, 우승자에게 월계관을 수여한다. 올림픽 하면 다들 월계관을 생각하지만 올림픽은 올리브관이야!! 월계관 안니야!!


아무튼. 이 위대한 아폴론의 성역에서 신탁을 받기 위해선 깨끗한 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재물까지 바쳐야 한다. 아폴론은 올림포스 신들에게 무기를 만들어주던, 가이아의 아들 외눈 키클롭스를 죽였고, 그 죄를 씻기 위해 테살리 지방의 템페 강에서 정화를 했다고 한다. 그 신화에서 유래된 절차인 것 같다. 테살로니키에서 메테오라로 가는 길에 이 템페 강을 지난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크고 영험한+_+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템페 강까지 갈 수는 없으니 델피 입구에 있는 카스탈리아 샘에서 목욕재계를 한 후에야 신탁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신탁을 받을 자격이 없었던 것 흑

그리스 대표 유적지답게 주말인데도 학생 단체가 많았다. 그리스 초딩들은 자꾸 날 보고 끼네지라고 한다ㅠㅠ 한국인이라고ㅠㅠㅠㅠ

아폴론 신전의 폐허..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벅차지만, 이 깊은 산속에 건물을 짓는 것은 생각도 못하겠다. 나는 편하게 버스를 타고 왔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일일이 돌을 옮기고...

아폴론 신전 뒤편에는 원형극장이 있다. 들어가 보지 못해서 아쉽...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다.. 다 올라온 것처럼 보이지만 델피 유적지 꼭대기에는 스타디움이 있다. 사실 맨 처음 델피에 왔을 때는 학교에서 그냥 친구들끼리 온 거라 몰랐었다. 두 번째 엄마랑 올라왔을 때야 발견했었지만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스타디움 사진이 없는 것이 너무너무너무 아까워 다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스타디움으로 올라가는 길... 봄이라 유채꽃이 너무 아름답게 펴있었는데, 친구 사진만 잔뜩 찍어주다 꽃 사진도, 내 사진도 찍지 못해서 아쉬웠다.

포도송이 모양의 꽃ㅎㅎㅎ

이 정도...? 만 겨우 찍은 것 같다. 하지만 눈으로 보았던 것은 훨씬 화려하고 예쁘고 따뜻했다. 봄 여행의 묘미는 꽃구경에 있지. 나이가 많아지면 꽃만 보인다는데. 큰일 났다.

원형극장에서부터 한 20분? 올라간 것 같다. 지난번에도 한여름 땡볕을 뚫고 오느라 힘들었는데... 지금은 3월인데도 덥다. 65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고 트랙이 177m라고 하는데, 이 더위에 여기까지 올라와서 그늘 한 점 없는 경기장에서까지 뛰어야 한다니. 벌써 힘들다.


꼭대기까지 올라왔으니, 아까 미처 못 봤던 유적들을 찬찬히 보면서 내려가기로 했다.

아폴론 신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던 이오니아식 기둥. 어디에 있던거닝? 아폴론 신전은 도리아식 기둥이니, 어느 다른 폴리스의 보고에서 나온 기둥인 것 같다. 그냥 보면 크기는 작아 보이지만...

꽤 크다. 크기를 가늠할 수 있게 찍으려면 옆에 서서 찍어보라는 엄마의 말을 잘 실천하고 있다.

배꼽도 다시 찾았다. 실제 명칭은 옴팔로스이지만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배꼽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옴팔로스 중 하나일 뿐이고, 그나마 좀 예쁜 옴팔로스는 델피 박물관 안에 있다. 델피 박물관 글을 따로 써야되...겠지? 제우스가 세상의 중심을 알아보기 위해 양쪽으로 두 독수리를 날렸고, 독수리들이 만난 지점에 돌을 떨궈 배꼽이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이 옴팔로스에서 나온 옴팔로스 신드롬이란, 나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이다. 동생이 호주 울룰루 라는 곳에서 일을 했었는데, 거기 사람들은 울룰루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긴다더라. 여기거든?ㅎㅎㅎㅎㅋㅋㅋ

실제 델피의 복원도이다. 지금은 너무나도 초라한 폐허로 남아있지만, 고대 그리스 신탁의 성역으로써 이름을 날리던 영광스러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델피를 뒤로하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테네 신전으로 향했다. 아테네 신전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신전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고, Ἀθηνᾶ Πρόνοια, 아테네 프로니아라고 불리는 신전 앞에 있던 작은 원형 신전 일부부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테네 성역과 김나지온으로 가는 길. 델피에서 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데, 워낙 날씨가 더워 10분이 20분 같고 그랬다.

김나지온은 왠지 모르지만 입구가 막혀있었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의미하게 된 김나지온은 델피의 젊은 청년들이 운동을 하던 곳..이었겠지. 그리고 아폴론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신성한 힘이 있다는 목욕탕이 있었다고 한다. 나도..!! 나도!!

들어가진 못하고, 길 옆에서만 본 김나지온. 사실 고고학이고 역사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들어가서 봐봤자 그냥 돌만 많은 곳...이라고 생각하겠지ㅜㅜ


아무튼! 드디어 아테나 성역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도 또 한참 걸어내려가야 한다. 여기쯤 와서야 예쁜 유채꽃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

쨔쟈쟈쟌~~ 원형 신전이라 폐허도 저렇게 남았다. 복원 탓에 약간 점박이 신전처럼 보인다.


원래 이렇게 생겼었다는데, 남아있는 게 저 기둥들 뿐이라니.

유적 가장자리에는 복원되지 못한 돌들이 널려있었다. 일부러 안 한 건지, 못한 건지 불쌍하게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저~~~ 멀리 아폴론 신전도 같이 보인다 :)

봄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델피에 비해 아테네 성역까지 찾는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하고, 한적하기만 한 유적을 항상 지키고 있는 것은 고양이들. 어디 가나 세네 명씩 뭉쳐 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그리스에 오면 좋아질 수밖에 없는 냥이들


아쉽게도 델피에서는 2시간 정도밖에 있을 수 없어서, 조금 서둘렀지만 생각보다 알차게 잘 보고 왔다. 다음은 아라호바... 태양의 후예 사진도 얼른 찾아봐야겠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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