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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ou Apr 21. 2017

부활절 in 로도스(2) 시미

형형색색 물든 시미 아일랜드

부활절 계획에 대해 그리스 친구와 얘기하다 '시미'라는 섬을 추천받았다. 

로도스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작은 섬이다. 

사실 그리스 섬이라고 하기에도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있다. 

거의 터키 땅 바로 근처 빨간 핀이 가리키는 곳이 바로 시미시미.

그렇게 유명하고 큰 섬은 아니라, 신화나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많이 없지만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여신인, 카리테스 고향이라고 한다. 

역시 직분에 걸맞게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곁에 머무는 신들이라는데 

과연 섬도 아름다울까 기대가 많이 되었다.


일정이 애매하긴 했지만 로도스의 다른 동네, 린도스를 포기하고 가기로 했다. 

보통 여행사에서 섬 전체를 도는 투어를 많이 하는 모양인데, 

부활절 공휴일이라 일반 페리만 있어서 우리도 그냥 항구 근처만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Dodekanisos Express! 

야외로 뻥 뚫린 페리를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배가 그렇게 큰 편도 아니었다.

중간에 바닷길 사진도 찍고 하려고 했는데, 이른 시간에 일어난 후유증으로 그냥 잠이 푹 들어버렸다.

사실 멀리서 본 시미의 모습은 사실 그냥 다른 작은 그리스 섬들과 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뜯어볼수록 아름답더라.

항구에 정박되어있는 작은 보트들. 

뭐 그리스 사람들은 차 대신 보트 타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는데 막상 살아보니 아닌 것 같다. 

엄청 비싸드만..

나의 숨을 멎게 한 것은 항구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맑았던 물 그리고 수많은 물고기들!!!!! 

심지어 팔뚝만 한 것도 발견해서 신나게 찍었다

바다 맞은편에는 기념품샵이 즐비해있었는데, 여긴 유난히 해면이 많더라. 그리고 가격도 훨씬 쌌다.


시미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배고파서 카페에 앉아 주문을 했는데,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고 맛은 없어서 다들 호갱이 되었다며 슬퍼하며 바닷가로 가기로 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해서 천천히 걸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물이 이렇게 맑을 수가!! 계속 우와!!! 우와!!! 감탄하면서 갔던 것 같다.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옆에 비스듬히 세워두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기자기한 색깔에, 푸른 바다까지 왠지 파르가를 연상시킨다. 

파르가는 그리스의 친퀘테레라고 불리던데. 이탈리아 부라노 같기도 하고. 형형 생색의 동네. 

멀리서 보니 더 아름답다.

뭔가 미코노스, 산토리니의 푸른 골목에 있어야 할 것 같은 꽃도 덩굴을 이루고 있고.


근처 바닷가를 가보았지만 공사 중이라 그냥 택시를 잡아 다른 바닷가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시미 항구 전체가 보이던 도로를 달렸다. 카메라를 들자, 기사님이 살짝 멈춰주는 센스까지 보여주셨다. 

바다도, 하늘도 그래픽처럼 파랗다. 

기사님이 데려다 주신 동네는 아주 평온했다! 

바닷물도 맑았고, 깊어 보이지도 않고. 수영을 하진 못했지만 발이라도 담그려고. 

진짜 난 그리스 바다가 너무 좋다. 화려한 수식어로 최대한 열심히 꾸며보고 싶지만, 

나의 짧은 창의력으로는 어렵다. 

살짝살짝 치는 파도에 몸을 맡기며 느끼는, 세상에 나쁜 일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편안함.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르다 못해 검은 바다를 보면 속을 알 수 없어 두려움이 생기기 일쑤이지만, 

맑은 그리스 바다는 속내를 다 드러내고 나에게 기대어 쉬라는 것 같다. 

나는 너에게 열려있어, 뭐 이런 느낌? 

전날 마트에서 사둔 상그리아를 각자 병에 담아왔다. 

더운 날씨 탓에 뜨거워졌을까 물에 담가 두었다. 

다 녹아버린 초콜릿도 물속 자갈에 조금 묻어두니 바로 제 모양을 갖추더라.

광민이는 아예 젖을 옷을 가져오고, 우리는 무릎까지만 담갔다. 

너무 너무 너무 아쉬웠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뛰어들고도 남았을 텐데... 

발 담근 것만으로도 덥고 지친 몸이 힐링된 것 같아서 나름 만족..

계속 신나게 물에 발 담그고 놀다, 버스 시간이 애매해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식당 분위기는 진짜 좋았는데... 너무 맛이 없고 비쌌다.... 

누구 코에 붙이지도 못할 정도의 양이었지만 생선모양 접시가 귀여웠고, 오징어튀김은 맛있었다. 

나름 그리스에 대해선 잘 안다고 자부하는 나인데 이렇게 식당 선정에 실패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시간에 맞추어 집에 돌아왔고, 전날 사다 둔 로도스 맥주를 마셔보기로 했다. 

식당에서 먹은 로도스 맥주가 정말 맛있었어서, 사보았는데 최고였다. 

맥주를 먹지 않는 나인데도 술술 들어가는...

우연인지, 아닌지 로도스 레몬에이드와 맥주 이름이 똑같았다. VAP. 

하지만 이 단어를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읽으면 '나르'로 발음된다. 

영어 스펠링만 보여주고 이 레몬에이드 이름이 나르인지, 밥인지 맞춰보기도 하며 숙소에서 숨을 돌렸다. 

와인가게 아저씨의 추천을 받아 Πάθος, '열정'이라는 뜻의 로도스 산 와인을 구매했다. 

가격 대비 엄청 맛있었어서 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한병 더 사 왔다. 

수블라키를 시켜서, 발코니에서 분위기 있게 향초도 키고 먹었다. 

오늘은 정말로, 부활절 의식을 열두 시 정각에 보기 위해서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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