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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ou Apr 25. 2017

부활절 in 로도스(3) - 예수가 부활하셨습니다!

성스러운 불과 잊을 수 없는 마기리차의 기억

자꾸 폭탄급 폭죽 소리가 펑 펑 들려왔다. 

분위기 좋게 얘기하다가도 자꾸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게 될 만큼. 

폭죽 소리가 점점 잦아지고, 12시가 다되어오자 우리도 Άγιο φως, 성스러운 불을 받으러 교회로 갔다. 

교회가 어디인지 알아보지 않아도, 폭죽 소리를 따라가니 마주할 수 있었다. 

가는 내내 폭죽 소리가 고막을 찌르듯 들려왔다. 

사실 부활절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수준의 폭죽이었다. 

무서워서 가까이 가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열두 시가 다 되어갈 즈음에는 공터에 폭죽을 쏟아붓더라. 무서웠다. 

우리는 계속 귀를 막고 깜짝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그랬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광민이었나 누구는 폭죽 파편도 맞았다고 해서 우리는 완전 피해있었다.

그러다가 소리가 들려 위를 보니 예쁜 불꽃놀이를 하고 있더라.

사진을 찍고 있던 참이라 덕분에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예수 부활 축하합니다!!

Χρόνια πολλά! 축하합니다! 
Χρίστος Ανέστη! 예수가 부활하셨습니다!

Αλήθως Ανέστη!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절인 만큼 인사말이 달라진다. 

Χρίστος Ανέστη(흐리스토스 아네스티)! 하니 더 방긋 웃으며 

Αλήθως Ανέστη(알리th오스 아네스티)!라고 대답해준다. 

아테네에서도 그렇지만, 로도스에서 그리스어를 하니 더더욱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예전에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최대한 말을 줄이곤 했는데, 

몇 번 와봤다고 지금은 심지어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교회 안에 들어가서 직접 초를 받아야 하나 하면서 주춤주춤 하고 있었는데 광민이가 그냥 옆에 계신 아저씨에게 불을 받아와서 우리도 불을 붙였다.

바람이 꽤 많이 불어서 불을 지키기가 어려웠다. 한 열 번 꺼진 것 같은데. 네 명 중 한 명이라도 살려서 가자는 마음으로 다들 조심조심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부활절에 먹는 음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Μαγειρίτσα, '마기리차'라고 하는 스프이다.

양 내장을 넣고 고아 만든 스프인데, 부활절 금식 후에 갑자기 고기를 먹게 되면 탈이 날까 봐 스프로 먹는다.

옛날부터 마기리차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작년 부활절에 먹어볼 기회가 없어 올해 꼭 도전하기로!

숙소로 가는 길에 문을 열었던 유일한 식당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뭔가 애매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느낌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양고기 코스가 인당 25유로.

- 아니 아니 우리는 진짜 맛만 보고 싶은 거라 하나만 시키려고 했는데... 

- 어 그러면 고기 말고 마기리차만 네 개 갖다 줄까? 

- 아니 아니... 음 진짜 조금만 먹어볼 건데... 결국 두 개만 시켰다. 

식당에 들어갈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그래도 덜 호갱 같았다고 위안을 삼고 싶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스프랑 별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양고기 중에도 하필 내장....이라 냄새가 어마어마했다.

스프는 빵에 찍어 겨우 먹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것도 숨을 편하게 쉬기는 어려웠다. 

은수는 거의 입에도 못 댔다. 나도 꾸역꾸역 먹어보다 포기했다. 

한국에서도 양고기를 많이 먹어본 적이 없지만, 정말 양 비린내는 상상 이상이다. 

옆 테이블에선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이 먹고 있었는데....  

아마 뭐 곰탕, 도가니탕, 선지 해장국, 감자탕 같은 일반 고기가 아닌 특수부위를 넣은 탕 정도로 비교가 되려나.

다른 외국인들에게 이런 음식들이 얼마나 거부감이 들지 마기리차를 통해 한번 더 느꼈다. 

결국 제대로 몇 입 먹지도 못하고 마기리차 하나에 12유로, 빵에 물값까지 한 명당 만원 넘게 낸 듯하다. 

두 개만 시켰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리고 늦은 시간이라 손님이 없어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아 괜히 신경 쓰였다. 

아무튼 처음이자 마지막일 마기리차, 문화체험이라 위안 삼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홀리 파이어도 세워두고, 애들이랑 빨간 계란을 깼다. 

광민이가 마지막까지 덜 깨지고 살아남았다. 부럽다 짜식. 

다음 날 아침에 본 양고기.

긴 꼬챙이를 Σούβλα, '수블라'라고 한다. 꼬치에 고기를 끼워먹는 것이 수블라에서 유래된 수블라키이다. 

나도 이렇게 제대로 통으로 굽는 양은 처음 봤다. 징그러웡.

온 거리가 양고기를 굽는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차더라.

동영상이랑 사진을 찍으니 식당 아저씨가 좀 있다 익으면 먹으러 오라고 했는데.

아직 마기리차의 충격이 가시지 않아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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