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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ou May 18. 2017

이오니아 해 맛보기, 그리스 자킨토스

나바지오 아니고 나바기오´ㅅ`

자킨토스.

그리스 사람들 사이엔 그렇게 핫한 곳은 아니었는데, 태양의 후예 이후 산토리니를 위협할 관광지로 떠올랐다.

나도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는 않아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나바기오 비치를 위해! 자킨토스에 가기로 했다. 배로 가는 방법이 복잡해 몇 년(?)을 고민하다 이번이 정말 그리스 마지막 방문이 될 것 같아 서둘러 보았다.


아테네에서 자킨토스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1. 비행기

2. 버스+배

어쩌다 보니 나는 갈 때는 버스, 올 때는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되었다. 버스랑 배를 타려면 괜히 불편해 보이긴 하지만 티켓을 한 번에 끊어주어, 갈아타기만 하면 되는 거라 의외로 간단하다. 키피소스 터미널(ΚΤΕΛ Κηφισού)에서 자킨토스행 티켓을 끊으면 킬리니(Κυλλήνη)에서 배로 갈아탈 수 있는 티켓도 같이 끊으라고 말해준다.

키피소스 터미널에서 갈 수 있는 수많은 도시들. 아테네에서 거의 웬만한 곳은 다 여기서 출발한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버스 티켓 예매를 해서, 배만 끊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한 3시간? 4시간 정도 달려 킬리니 항구에 도착했다.

페리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자리도 넓었다. 산토리니 갈 때 탔던 블루스타 페리 느낌! 한두 시간 정도 더 갔던 것 같다.



사실 자킨토스의 첫인상은 매우 좋지 않았다. 하필 쓰레기차의 파업으로 거리에는 쓰레기로 가득했고, 날씨도 흐려 제대로 된 사진은 남기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주말이라 다들 일찍 닫는 바람에, 그냥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나바기오만 생각했지, 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지도를 찍어보니 성이 하나 있길래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진짜 무작정 간 곳이라 문도 닫았다. 힘들어서 그냥 쉬다 가자고 문 앞에 앉아있었는데, 같이 허탕 쳤던 외국인 일행이 우릴 찍어줬다. 사실 시간도 늦고 문 닫을 거 뻔히 알고 있었는데, 갈 곳이 없어서 간 것... 예... 걷는 건 싫지만 의외로 오며 가며 예쁜 곳도 많이 보았다.

높은 곳에서 보이던 자킨토스 항구

왜지? 날씨도 흐리고 바람도 엄청 불었는데.

재밌었나 보다. 머리는 다 날리면서..

내려가는 길엔 산양도 보았다. 산양? 염소? 등산에 가까웠던 산책 아닌 산책을 했지만, 정말 시골마을 같았다.

호텔에 돌아와서 쉬다, 밥을 먹고 광장에서 음악소리가 크게 들려오기에 시내 산책을 나갔다.

자킨토스는 밤이 돼서야 핫하더라

파티 중인지, 한 카페 앞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좀 유럽 같아!!! 낭만적이야!!! 더 걸어가다 나온 광장에서는 전통 춤 축제를 하고 있었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영상도 찍고, 눈으로도 즐기며 한참 보고 있었다.

사실 동유럽의 전통 춤은, 그리스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서 그냥 조금 보다가 나왔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같이 사진을 찍어오지 못한 게 항상 아쉽다.



다음 날은 나바기오 행.

호텔에서 나올 때마다 엘리베이터에서 사진 찍었다.

조명이 아주 예뻤다구


나바기오는 사실, 자킨토스 시내에 있는 게 아니라 차로 한 시간 정도 가야 한다. 안 그래도 뚜벅이인 우리는 이동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았다. 결국 민규가 기사를 자청... 했다기보다 유일한 운전 가능자여서 당첨.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렌트를 해본 거라 굉장히 떨렸지만 절차도 단순했고 민규도 운전을 아주 잘 했다!! 영원한 우리의 기사님._.


아무튼 나바기오로 들어가기 위해 포르토 브로미(Πόρτο Βρώμη) 항구로 향했다.

중간에 가끔가끔 이런 파란 바다가 등장할 때마다 우와 소리를 지르며 감탄했다.

하늘이 흐려 아쉬웠지만 여전히 바다는 푸르르다.

포르토브로미의 해변. 여기서 수영을 해도 충분할 정도로 맑고, 아름다웠다. 나바기오 투어를 다녀온 사람들은 여기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거나 수영을 하다 가던데 우리는 수영복을 갖춰오지 않아 아쉬웠다. 아직 바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막 떠난 배가 돌아와야 나바기오를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려준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발이라도 물에 담그고 놀았다.

난 아직도 그리스 바다에 맞는 수식어를 찾지 못했다.

확실한 건 정말 사진보다는 100배 이상 아름답다는 거.

Ζάκυνθος~~~


막상 배가 돌아오고 나서도 좀 기다리다, 선장님께서 좀 쉬셔야 한다고 해서 30분 정도를 여기서 기다렸다. 그리고 이 시간대에 우리뿐이어서 운 좋게도 우리만! 작은 통통배를 타고 가게 되었다. 이때만 해도 프라이빗 투어야!! 하고 좋아했지만....뒷일은 예상하지 못했다.

왼쪽은 우리가 탔던 통통배와 원래의 정기선(?)

출바아알!!!!!

그리스에서 배를 탈 때마다 모터가 만드는 바닷길을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청록색 같기도 에메랄드색 같기도 하면서 정말 아름답다.

사실 배가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게 가다 보니, 제대로 사진도 못 찍었고 물도 엄청 많이 튀었다.

덜컹! 할 때마다 우리는 소리를 질렀고 선장님은 우리를 보고 계속 빵 터지셨다.

유시진은 아니지만 우리를 나바기오로 데려다 주신 선장님.

이름이 기억 안 나요 죄송해요ㅠ 어쨌든 우리만을 위한 유시진!

수심에 따라 바다 색깔이 달라지는데, 여기는 좀 얕았는지 정말 맑은 하늘색이었다.

여긴 깊은 바다라 남색에 가까운 파란색.

배로 한참을 달리다 보니, 익숙한 절벽이 보이고 난파선이 보였다!!

여기는 또 더 얕은 바다라 아예 하늘색이다.

배가 하도 흔들려서 사진이 제자리에서 제대로 찍힌 게 없었다. 아 웃겨 옷 다 젖는 거 감수하고도 수영할 자신 있었는데.

바람 때문에 파도가 세서 해변 안까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저 난파선도 밀매를 하던 터키인들이 폭풍을 만나 들어가게 되었다가, 밀수품이 걸릴까 봐 도망간 거라고 한다. 그들은 실수로 들어갔지만 난 일부러 찾아왔어도 들어가지 못했다. 아쉬워..


아, 그리고 한국에선 어떤 이유인지 나바기오가 나바지오로 알려졌다. 사실 영어로 하면 Navagio, 라서 나바지오로 읽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바로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외국인들이 김밥을 보며 스시라고 외치거나, 김치를 기무치라고 하거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코리안..(?) 김정은 발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때 고쳐주고 싶은 심정이랄까.

Ναυάγιο, 나바기오가 맞습니다 ´ㅅ`

멀어져 가는 나바기오를 보며.

다시 널 볼 수 있을까?

수많은 한국인, 중국인 관광객을 뚫고 다시 올 자신은 없을 것 같으니 마지막으로 안녕...

돌아가는 길에 동굴 탐험도 시켜주셨다. 조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햇빛과 바닷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신비한 푸른빛을 내던 곳. 이탈리아 카프리의 블루 케이브 하나 안 부럽더라!!

옆에서 보면 사람 얼굴의 모양을 하고 있어, 포세이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무튼 한두 시간 정도 배를 탔을까. 처음에 신나 하던 우리는 멀미가 난다며 눈을 질끈 감고 얼른 항구에 도착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느낌에, 약간 겁을 먹었다. 칠흑 같은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이게 정녕 물이 맞는지. 왠지 다른 행성에 와있는데, 점성 있는 액체로 이루어진 표면 같아 우리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SF영화에 등장할 것만 같은 비주얼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조금 힘들었지만, 통통배는 다행히 뒤집어지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이제 나바기오 안에 들어가 보았으니, 전망대로 가서 나바기오를 내려다볼 시간! Shipwreck beach Viewpoint를 검색하면 갈 수 있다. 자킨토스 시내에서 좀 벗어나면 인터넷이 안 터지는데, 유일하게 전망대 쪽에서는 인터넷이 잘 됐다.

사실 처음 딱 본 전망대에선 철창 때문에 괜히 시들했다. 혹시나 해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았는데, 럭키!

어떻게 바다가 저렇게 청량한 색인지,

날씨가 좋지 않아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예에에

우리가 해변으로 들어갔을 때, 위에서 찍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했다. 드론이라던가ㅎㅎ

아쉽지만 여기서라도 인생 샷을 건져가야지. 그러려고 온 거니까. 하지만 나도 사진을 잘 못 찍어주었고, 내 사진도 많이 건지지는 못했다.

뭐 그래도 내 카메라로 나바기오를,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담았다는 것에 만족해야지. 예쁜 배경도 있겠다 오랜만에 셀카도 신나게 찍었다. 그리고 저긴 정말로 절벽이다! 사고가 있었다던가, 하는 건 모르겠지만 우리도 사진 찍으면서 덜덜덜 떨었다. 이 정도 사진을 남기는데 그깟 두려움이야 뭐! 다시 오게 되지 않을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더 열심히 셔터 버튼을 눌러댔다.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렌트를 했던 여행.

길을 잘못 들기도 했지만 어른 다 됐다며 신났던 여행.

예상치 못한 쓰레기들의 어택으로 지나갈때마다 코를 막아야 하기도 했고, 이 여행으로 통장은 텅장이 되었다.

하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은 역시 재미와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것 같다.

나만 편했던 건지, 기억이 미화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생각보다 순조롭게 잘 풀렸다.


사실 나는 동양인 관광객에 대한 나쁜 심보를 가지고 있었다.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관광객 무리들 때문에 괜히 동양인(= 나)에 대한 이미지까지 나빠지지는 않을까. 아무래도 여기서는 내가 나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동양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기에. 자킨토스가 알려지면서 한적하게 다닐 수 있던 관광지가 동양인으로 바글바글해지니 괜히 신경이 쓰였었다. 뭔가 그리스는 정말 나만 알고 싶던 곳인데, 정작 남들이 그리스에 관심을 보여도 자킨토스, 산토리니 같은 곳에만 열광하는 것도 싫었다. 주저리주저리 했지만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 부심..!


그런데 자킨토스에서 만난 택시기사가 태양의 후예 덕분에 마을이 아주 발전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자기들에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내가 그리스어를 하고 그리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나 혼자 그리스를 차지할 것도 아닌데,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리스어 할 줄 아냐고 놀라 하면서 대단하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내 자만심만 하늘로 솟았었나 보다.

한국 사람들이 그리스를 더 많이 찾을수록, 그리스 경제가 발전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와 한국 사이의 관계도 발전할 수 있는 건데. 택시기사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근거 없는 특권의식을 가졌던 나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에 맞게 다른 즐거움,

그리고 뜬금없이 교훈까지 얻어가게 된 자킨토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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