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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ou Jul 24. 2017

그리스 아마추어가 보는 산토리니

우연히 걷다 삶의 방향성을 찾았다

가끔 내가 그리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이 오는 몇 친구들은, 내가 흰 벽 파란 지붕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산토리니는 그리스의 얼굴이자 상징이다.


한국에서 친구가 온 덕분인지, 때문인지 산토리니를 한번 더 가게 되었다. 사실 산토리니는 항상 친구나 가족이 그리스에 놀러오는 바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너무 많이!! 갔다. 그래서 이번에도 엄청 투덜거리며 동행했는데, 역시 10년 친구다운 배려 덕분에 생각보다 잘 보내고 왔다.

산토리니 싫다, 싫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큼, 그리스를 아주 잘 표현해주는 섬임에는 틀림없다.

굳이 설명이 필요할까?

하얀 벽, 푸른 돔 지붕, 이보다 더 푸른 쪽빛의 바다.

이 곳이 산토리니, 이아마을이다.

짧은 일정인 데다 이번 여행의 테마였던 '여유'에 충실하고자 이아마을만 다녀왔다.

친구에게 그리스의 아름다움을 모두 보여주고 싶은 욕심은 잠시 접어두었다.

타이밍 좋게도 스냅사진 명소에서 기다림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웨딩사진, 우정 스냅사진을 찍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온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마주칠 수 있었는데,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남는 옷 걸치고 왔던 게 조금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이 교회 앞에서도 웨딩촬영 정말 많이 하는데, 이날은 유난히 사람이 없었다. 한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을 다시 찾을 때는,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 주어진다.

3년 전, 아무도 찾지 않는 겨울에 이 곳에서 유일하게 나를 반겨주던 강아지들이 생각난다.

작년에 엄마와 왔었을 때는 거리의 악사에게 무작정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연주를 부탁했었다. 그리스 대표 민중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곡이자 한국어로 번역되어 조수미가 불렀던 곡으로, 나치에 저항하여 카타리나로 떠난 레지스탕스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여심을 그리는 노래이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스 노래라고 하며 혹시나 하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연주해주었던 부주키 악사들. 그들이 앉아있던 벤치는 비어있었지만 그들의 선율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 같았다.

하얗고 파랗기만 할 뿐 아니라 가끔 이렇게 예쁜 꽃들이 장식을 해준다.


이 아름다움을 글로도 사진으로도 표현할 능력이 부족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아마을의 명소, 아틀란티스 서점에도 들렀다.

산토리니를 올 때마다 잊지 앉고 방문하는 곳이다. 그리스 관련 책뿐만 아니라 내부가 아기자기하고 예쁘니 꼭 한번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흔한 관광지 엽서가 아닌 세련된 디자인의 엽서, 지도도 판매한다.

이 곳에서 자체 제작하는 에코백이 유명한 기념품인데, 그 사이에 또 새로운 디자인이 나왔다. 아마추어라는 뜻의 Εραστέχνης.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Εραστής(Erastis), 예술을 의미하는 Τέχνη(Techni)가 결합된 명사이다. 직업이 아니라 자신의 기쁨과 열정을 위해 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


거짓말 조금 보태서 심장이 철렁했다.

왜 그리스를 배우려고 하냐고 묻는 질문에 항상 내가 말해왔던 대답이었다.

취업 생각할 거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고,
그냥 내가 배우고 싶어서. 그리스가 좋은데?


한국어로 아마추어라고 하면 비전문가, 즉 '부족함'의 의미를 더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배워왔던 것으로 돈도 벌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가를 바란 적은 없었고, 직업이 되면 더 힘들었겠지. 그리스에 대해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를 향해 좇아왔던 나의 삶을 그대로 표현해준 해석이었다.


내가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어를 잘하는 것도, 학교 성적이 좋은 것은 더더욱 아닌데 정말 그냥 심장이 뛰는 순간만을 좇았기 때문이다.

학교를 빼먹는 건 기본에, 중간에 삘이 꽂혀 공부를 하다가도 귀찮으면 책을 덮어버렸다. 나중에 하지 뭐. 열정이 타오르던 그 순간에만 불이 붙어 공부를 했다.그냥 귀찮고 게으른 거라고 비판하면 할 말은 없다.


렇게 좋으면 열심히 해서 최고가 되면 되잖아? 최고가 되어 프로가 되기에는 너무 많은 책임과 노력이 따르고, 그게 무섭다. 능력도 안되고. 그냥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그리스를 향해 나아가다 서서히 스며들길 바랐던 것뿐이다.


저 에코백 하나가, 외롭다면 외롭다고 할 수 있는 이 길을 응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돈을 정말, 정말 많이 아껴야 하는 상황이어서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친구가 선물로 사주었다. 한국에서 그리스까지 먼 길 와 준 것, 내 힘든 상황에 다 맞춰줬던 것, 그 이상으로 값진 선물이었다. 나는 그리스를 사랑하는 아마추어야. 그리고 그게 내 꿈이고.

혹자는 산토리니를 방문하고 실망을 할 수도 있다. 아름다운 곳만 찍은 내 사진은 이미지일 뿐이라고. 좁은 골목, 붐비는 인파, 비싼 물가, 당나귀 똥, 조악한 공항과 대중교통시설은 굳이 지적하지 않겠다. 또한 한여름의 그리스 태양은 얼마나 강렬한지. 5분만 걸어도 온 몸에 땀이 흐른다. 하지만 잠시 숨을 돌려 지중해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모든 나쁜 기억이 잊힐 거라는 것.


흔한 맛집 추천도, 관광 명소 안내도 아니지만 산토리니를 찾는 사람들이 그리스에 대한 좋은 인상을 잔뜩 심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사랑하는 사람이나 친구와의 추억이든, 단순히 그냥 아름다운 여행으로 기억되든. 의도치 않게 내 삶의 길을 마주했던 것처럼 이 곳에서 인생의 목표를 세우든.

 

아, 피라마을 시내에 Lucky Souvlaki의 수블라키가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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