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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캉가루 Aug 17. 2020

눈아 미안해

겪어본 사람만 안다는 각막염 후기

때는 바야흐로 2018년 4월에서 5월로 넘어가던 어느 날, 하루 열 시간 렌즈 착용에도 끄떡없던 내 눈이 점점 빨개지기 시작했다. 워낙 예민한 눈을 갖고 있었지만 미용렌즈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6개월용 렌즈를 쓰다가 막 원데이 미용 소프트렌즈로 바꿔 사용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창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라 눈이 많이 힘든가 보다 생각했다. 여느 때처럼 인공눈물 몇 방울을 툭툭 털어 넣었다.

그리고 2018년 5월 4일,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오른쪽 눈에 렌즈를 뒤집어서 낀 것. 렌즈인들은 알지 않은가. 이 얼마나 기분 나쁜 고통임을. 렌즈를 뒤집어서 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확히 3초 후,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글 파일에 '아프다'는 텍스트를 폰트 크기 90까지 키워서 폰트 색깔까지 빨간색으로 바꾼다고 해도 강조가 모자랄 정도로 '아프다'라는 말로는 형용이 되지 않는 고통이었다.. 빨리 렌즈를 눈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손이 덜덜 떨려서 삼십 분 가까이 미련하게 눈물만 흘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렌즈를 빼는 데에 성공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눈동자에 상처가 난 모양이었다. 빼자마자 일전에 묘사한 고통에 40% 정도가 가중된 고통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눈을 절대 뜰 수 없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만 나왔다. 텍스트 그대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 그 순간 내가 실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 정도로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이 순간, 내 눈을 위해 안경을 끼고 학교에 갔으면 더 큰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이 날은 영상편집 실습수업의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맞다. 내가 직접 출연을 해야 했던 것. 노래를 부르면서 촬영을 해야 하는 수치스러운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안경까지 쓰고  촬영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결과물을 수강생들이 함께 감상하는데, 어린 마음에 조금이라도 예쁘게 나오고 싶은 마음이 일렁거렸고, 결국 렌즈를 다시 껴야겠다는 욕망이 찰랑이다가 넘쳐버리고 말았다. 눈도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아 다시 내가 아끼던 원데이 렌즈를 주섬주섬 꼈다. 2년이 흐른 지금도 제발 간절하게 이 순간의 나를 말리고 싶다. 렌즈를 다시 끼고 보니 분명히 아팠다. 그런데 이전의 고통이 너무 강력했던 탓일까, 나의 뇌는 참 간사하게도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상황이었음에도 이것을 단지 '이물감'으로 인식하게 하여 그대로 나를 학교에 보내버렸다.

오전에는 팀 회의를 하는데 내 오른쪽에 앉은 팀원분이 말할 때마다 얼굴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본의 아니게 계속 윙크를 했다. 미안..

계속 눈이 시리고 빛을 보기가 힘들어서 수업 전에 렌즈를 빼러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신세계를 맛볼 수 있었다. 렌즈를 빼면서 상처가 있던 자리를 다시 긁었던 것. 렌즈를 빼려면 이 곳을 긁을 수밖에 없다. 아침에 꾸역꾸역 다시 렌즈를 낀 것이 잘못이었다.

화장실에서 혼자 오열했다. 눈을 다시 뜰 수가 없었다. 그냥 불닭볶음면 소스를 오른쪽 눈에 쭉쭉 짜 놓은 느낌이다. 강의실에 가서 겨우 진정했지만 여전히 눈을 뜨긴 힘들었다. 왼쪽 눈은 멀쩡했지만 왼쪽 눈을 움직일 때마다 오른쪽 눈도 함께 움직여서 의미가 없었다. 3시간짜리 연강 수업을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결국 내 분량의 촬영은 다음 주로 미루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 선생님은 “검은 동자에 상처가 있네요, 일주일 동안은 렌즈 끼지 마세요!” 이때까지만 해도 약만 넣으면 바로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난 이날 해야 할 과제들이 많았기에,,,,

눈을 부여잡고 집에 와서 안약을 넣었다. 화장실에서의 고통 2차 재연되었다. 상처에 약이 닿으면 쓰라린 건 당연하지만 이건 너무했다 정말.. 불닭볶음면 소스에 신라면 수프까지 버무려서 눈에 넣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이 약은 두 시간마다 넣어줘야 했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저녁 8시쯤 되니까 눈을 힘들게 뜰 수 있을 정도는 됐지만  모니터 빛만 봐도 눈이 부셨다. 핸드폰 밝기도 최대한으로 낮췄는데도 눈이 아프길래 그냥 자기로 했다. 과제고 뭐고 그냥 눈뜨고 있지를 못하겠는 걸 어떻게 하나..

근데 눈을 감고 있어도 아픈 건 똑같았다. 아니 눈꺼풀이 상처를 덮어서 그런가 더 아팠다. 그래서 잠도 안 왔다. 눈물은 몇 시간 동안 안 멈추고 계속 흘렀다. 꽃보다 남자 OST가 생각났다. 눈물샘마저도 고장이 났나 봐~ 자꾸 눈물이 멋질 않아~ 이 노래 작사하신 분도 각막염 걸려보신 분인가? 어쨌든 눈물이 어느 정도로 많이 흘렀냐면 중간중간에 눈을 뜰 때 눈꺼풀끼리 붙어버려서 손으로 벌려서 눈을 떠야 했을 정도. 그럼 고여있던 눈물이 줄줄 나왔다. 너무 아파서 몇 시간을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졌다. 어제의 그 난리 고생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괜찮아졌지만 약은 계속 넣어야 했다. 렌즈도 너무 끼고 싶지만 이 고통을 평생 다시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이번 주에 다시 병원가 보고 상처 아문 거 확인하고 껴야겠다.

렌즈 끼는 사람들이 왜 안구건조증과 결막염, 각막염을 달고 산다는 건지 소프트렌즈로 바꾼 지 정확히 1년 1개월 만에 알았다. 눈아 미안해.... 앞으론 언니가 신경 많이 써줄게...!

*미세먼지 ‘나쁨’인 날에는 안경을 씁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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