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집이 만든 불편한 일상
어느 순간부터 집이 찝찝해졌다. 과분하게 편한 공간이라서 더 찝찝했다.
내가 집을 찝찝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은 회사에 다니고 나서부터였다. 재택근무날마다 쌓인 일은 많은데 자꾸 침대로 기어들어가게 되는 나 자신을 타일러서 다시 앉혀 놓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운좋게도 3년 내내 재택근무 복지가 있는 회사에 다녔지만, 재택근무날은 무조건 카페에 가서 일하거나, 1시간 20분여 걸려서 사무실로 출근했다. 하루종일 침대에서 녹아내리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밀린 일을 처리할 바에는 집을 나가서 일하는 게 여러 모로 효율적이었다.
나에게 집은 오랫동안 '내 멋대로 하는 곳'으로 굳어져 있었다. 집 밖에서 품고 있었던 최소한의 긴장이 모두 풀리면서,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눈도 붙일 수 있고, 괴롭히는 사람도 없어지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일을 한다는 건 참 힘들다. 여긴 분명히 편해야 하는 곳인데, 메신저로 들어오는 업무 요청을 보고 있자면 모르는 사람이 자꾸 우리집 문을 쾅쾅 두드리는 것과 같은 듯한 기분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장소에서 일을 했지만 편하긴 커녕 더 거부반응만 강해지다보니 되려 안락함을 버리고 자꾸 내 발로 불편한 곳으로 도망가는 일이 많아졌다. 불편한 곳에서 하는 불편한 일은 당연한 것이지만 편한 곳에서 하는 불편한 일은 왜인지 자꾸 손해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일이 없는 주말에도 집앞 편의점에도 나가기 귀찮아서 2시간씩 뒹굴거리며 누워있는 나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편안하지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은 아니라고.
음식을 할 때, 편하면? 끝이에요.
음식에 대한 사랑을 잃을 수가 있어요.
유퀴즈에 나온 흑백요리사의 '에드워드 리'가 한 말을 참 좋아한다. 매 경연에서 익숙한 요리에 안주하지 않았고 계속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냈던 에드워드리의 요리철학이 담겨져 있는 말이다.
집이라고 다를까, 집이 마냥 편하기만 하면 사람은 대단한 동기부여가 있지 않은 한 게을러진다. 내가 하루 종일 침대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도 결국은 이 공간이 주는 이상적인 편안함이 나의 뇌로 하여금 "이 곳을 벗어나면 위험해!"와 같은 신호를 주며 나를 속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가짜 편안함'이 우리 집을 한없이 게을러지는 찝찝한 곳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것이다.
집에 대한 사랑까지 잃기 전에, 집에 작은 긴장을 줘보기로 했다. 나는 집에 있으면 부끄러울 정도로 게을러졌던지라, 조그마한 변화에도 효과는 컸다. 내가 나의 방에준 두 가지 불편함은 아래와 같다.
(1) 1인용 소파 놓기
내 방에는 책상과 의자가 없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책상이 거의 필요가 없어져서 치웠는데, 없어진 책상은 나에게 저주라도 건 듯 생활습관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켜왔다. 노트북 작업부터 독서, 영화감상, 식사까지 모두 침대에서 하게 된 것이다. 예상하신 바와 같이 자연스레 조금만 피곤해지면 바로 누웠고, 누워있으면 잠이 왔다.
그래서 1인용 빈백 소파와 간이 테이블을 구매했다. 침대에서 나를 꺼내다 앉히기 위해 안락한 빈백 소파를 놓았고, 약간의 불편함을 주기 위해 간이 테이블은 일부러 빈백 소파에 앉았을 때 가슴 정도 위치 높이에 오는 걸로 선택했다.
내 방에 들어온 낯선 가구 2개는 정말 나를 침대 밖으로 끄집어냈고, 일과 중에 휴식이 필요할 때는 소파에서 쉬는 습관이 생겼다. 당연히 나의 침대생활(?)도 막을 내렸다.
(2) 집에서의 작은 루틴 만들기
느슨한 정신적 긴장감을 만들기에는 루틴만한 것이 없다. 일어나서, 혹은 자기 전에 할 수 있는 간단한 규칙들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다.
일어난 직후
- 유튜브 쇼츠를 보며 도파민을 이용해 잠 깨기
- 모닝 페이지(아침일기) 작성하기
일과 중
- (평일 오전) 부업 업무
- (주말 오전) 빨래
자기 전
- 간단한 스트레칭 (20분짜리 힐링요가)
- 읽고 싶은 책 읽기 (30분)
이 중에서 도움이 많이 되는 루틴은 '모닝 페이지(아침일기) 작성' 이다. 나는 일어나서 정신이 들면 거의 바로 모닝페이지를 작성한다. 크게 오늘의 감사, 오늘의 계획, 하루를 여는 말 로 나누어 작성하는데, 특히 오늘의 계획을 찬찬히 짚는 과정에서 집에서 수행해야 할 일정과 바깥 일정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게 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집에서의 일정도 바깥 일 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집을 중요한 공간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집에서 하는 크고 작은 일정들도 집 밖에서 하는 일정 만큼이나 소중하게 대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집이 편하면, 집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다. 여느 연인간의 사랑처럼 집에 대한 애정 또한 끊임없이 투자하고, 노력하고,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집의 소중함을 일깨줘주신 에드워드 리 셰프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집아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