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노잼시기에 빠지고 감사일기 쓰는 시간대를 바꿔봤습니다.
회사를 나온 이후, 매일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 발로 나온 회사였지만 백수기간이 더해질수록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게 보일 시기가 올 것임을 확신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감사해야 할 일들을 매일 저녁에 나열해보기로 했다. 감사한 일들이 나중에 올 다양한 좌절감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저녁 감사일기를 쓰면서, 부끄럽게도 그 감사함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감사일기를 매일 쓰다보면 감사의 레퍼토리가 비슷해진다. 특히나 매일이 특별히 달라지지 않는 백수기간에는 더더욱. "오늘 갔던 카페의 커피가 맛있었음",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부드러워서 기분이 좋았음", "병원 대기줄이 짧아서 빨리 들어감"
공교롭게도 회사에 속해있지 않다보니, 나를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상황이 줄어들어든 덕에 일상적인 행복들이 주는 자극도 함께 없어진 것이다. (=배가 부른 것이다) 저녁에 감사일기를 쓰며 "커피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지."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감사일기를 덮고 취침을 하고 다음 날에 일어나면 어제 적었던 감사한 일들은 내 머릿속에서 리셋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감사일기를 아침에 써 보기로 했다. 전날의 감사한 일들을 다음날 아침에 곱씹어보면 좀 다를 것 같았다. 예상대로 아침에 쓰는 감사일기의 효과가 더 좋았다. 어떻게 좋았냐고?
감사일기를 밤(저녁) 시간대에 썼을 때에는 감사함을 되뇌이는 그 순간에는 너무나 충만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전날의 감사함은 다 휘발되어버리고 삶에 불만 투성이인 나의 모습으로 돌아와버리곤 했다.
하루를 시작하며 쓰는 감사일기는 조금 달랐다. 피겨선수가 시합에 나가기 전에 코치가 선수에게 은밀하게 조언을 해주는 것처럼, 오늘도 하루의 많은 과업들을 수행하러 나가는 나에게 어제의 내가 얼마나 럭키비키한 사람이었는지를 주입시켜줌으로써 긍정 에너지를 꽉꽉 채운 채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다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되었다. 어제 느꼈던 추상적인 감사함이 실제 내 일상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어제의 작은 감사한 일이 오늘 하루의 방향이 되어주는 셈이다.
ex.
1. 병원 대기줄이 짧아서 예상보다 빨리 들어감
-> 어제 1시간 가량의 시간을 벌었으니 오늘 1시간 정도는 여유롭게 보내자!
2. 우리집 강아지의 털을 쓰다듬는데, 어제는 유난히 부드러웠음
-> 오늘 퇴근하고 강아지 빗질을 더 해줘야겠다!
감사일기를 쓰려면 아침에 생각을 정리해야하다 보니, 자연스레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게 되었다. (해봤자 30분 일찍 일어나는 거지만...) 어렸을 때부터 잠이 많았던 몸뚱아리였고, 잠을 깨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었던지라 내가 그냥 게으른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아침 감사일기를 쓴지 5일차쯤 되었을 무렵부터는 눈뜨고 5분 안에 몸을 일으키는 게 어렵지 않아졌다.
아침부터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시작하니, 회피하고 싶은 일도 어제 나의 럭키력을 믿고 해보면 그만이었다. 잘 안되면? 어차피 나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힘든 일은 결국 다 지나갈 것이고, 그 속에서도 행복한 일은 항상 있다. 어제도 그랬고, 그저께도 그랬고, 엊그저께도 그랬던 것처럼.
신기하게도 아침마다 "오늘 그냥 잠이나 자는게 편하지 않겠냐"며 나를 못 일어나게 막았던 회피성향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이제 아침에 일어나는 게 그리 힘들지가 않다.
훗날 회사에 다시 들어가게 되어도, 지금보다 자유도가 작은 일상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아침에 감사일기를 쓰는 것을 유지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기를! 당분간 아침 감사 지구력을 좀 길러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