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산문집
홀연 뇌리에 박히는 순간이 있다. 막 불기 시작한 봄바람이 커튼을 부풀리고, 틈새로 비쳐 든 햇빛이 유독 하얗게 빛나던 순간 같은. 문학 선생님의 인사처럼 ‘코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아도 손 한 번 휘두르기 나른한 오후’였다. 열아홉의 번뇌 따위야 버텨볼 테니 영원히 머물렀으면 싶은 순간이었다. 기억은 곱씹을수록 예쁘게 다듬어져서 지금은 식곤증에 못 이겨 곯아떨어지기 직전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하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 늘 그립다. 『잊기 좋은 이름』은 이날의 기억처럼, 지나간 순간의 감정을 뭉근하게 불러일으키는 산문이다. 어린 시절을, 문학을,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아름답거나 쓰라린 이름들을 호명한 기록이다. 김애란은 다시는 없을 순간일수록, 잊고 싶은 이름이 무섭도록 선명할수록 붙잡아둬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으므로.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모르는 정보라. 아는 얘기라. 아는 얘긴데, 작가가 그 낯익은 서사의 껍질을 칼로 스윽 벤 뒤 끔찍하게 벌어진 틈 사이로 무언가 보여줘서. 그렇지만 완전히 다 보여주지는 않아서. 필요한 문장이라. 갖고 싶어서. 웃음이 터져. 미간에 생각이 고여. 그저 아름다워서’ 멈춰 선 문장들이다. 김애란의 문장에서는 낯익은 공기와 온도가 느껴진다. 한 시절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온 이들이라면, 그러니까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누군가라면 어느 무렵의 김애란을 따라 아련해질 것이다. 그러다 문득 피부에 닿는 온도를 치열하게 느끼며 살아왔음을 절감하게 된다. 그날의 공기를 그리워하고, 등허리를 쓸어내리는 손길을 느끼기도 하면서. 훗날 이 순간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대도 복원할 수 없는 당대의 공기나 감촉’이나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여름’으로 남기를 바란다. 사사로운 이야기지만 ‘나의 기원, 그의 연애’라는 장을 가장 좋아한다. 애타는 마음을 견디다 못한 아버지가 어머니께 건넨 포부를 잊을 수가 없다. 감히 한마디 보태자면 너무나 사랑스러우시다.
섬세한 문체와 곳곳에 스민 유쾌함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빛을 발한다. 김연수, 편혜영, 조연호, 고 박완서, 윤성희를 묘사하는 시선에는 퍽 친근하면서도 애정 어린 존경심이 느껴진다. 열무 아버지 김연수, 농담을 잘하는 그녀 편혜영, ㄱ부터 ㅎ까지의 단어로 묘사한 시인 조연호, 기우뚱한 인물로 시대의 얼굴을 그려낸 고 박완서, 청바지의 염류가 묻어 시퍼런 손바닥을 연신 파닥거리는 소설가 윤성희. 인간적이고 조금은 엉성하기도 한 모습에서 ‘사람과 이 세계를 대하는 어떤 태도 혹은 마음’이 느껴진다. 고스란히 문학이라는 형태로 전해질 마음 말이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에서 ‘인간의 허기와 고통’을 마주하는 것도, 좋은 문장이 ‘고요하고, 고유한 상태를 독려’해주는 것도 이런 마음이 담겨서일 테다. 문학은 나를 궁금해하고, 타인을 헤아려보고, 삶을 곱씹어보게 한다. 그렇게 책장을 하작이며 삶은 흐무러져 간다.
‘이해’란 타인 안을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_<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중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세월호, 동일본대지진, 아우슈비츠, 강남역. 고통으로 연상되는 단어들을 곱씹으며, 이해란 타인의 바깥에서 옆으로 폭을 좁혀나가는 일이라는 말을 되새겼다. 서툴게 쓴 문장이 ‘타인의 고통을 안다’는 허울이 될까, 타인의 고통을 넘겨짚은 표현은 아닐까, 염려된다. 그저 타인의 옆에 그러나 한 발자국 정도는 물러나 서 있을 수 있기를, 아픈 이름들을 잊지 않도록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