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당근마켓 거래 정복기
우리집 첫째 아이는 편식도 안하고 떼도 잘 안쓰고 양치질도 (여러번 시키면) 스스로 하는, 정말 동화책에 나올 법한 순한 아이였다. 장난감을 충분히 많이 갖고 있어서인지 아이 성향인지 딱히 뭔가를 더 사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잘 없었다. 아이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핸드폰은 당연히 차단했고, 아이도 딱히 핸드폰을 탐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아이가 달라진 건 한 6살 쯤이었을까?
동생과 장난감을 나눠서 놀아야 하고, 친구집에 가면 새로운 장난감이 있는 모습을 본 경험이 누적되서 였을까. 언젠가부터 새로운 장난감이 갖고 싶다고 했다. TV에 나오는 다른 집 아이들처럼 "이거 사줘. 안 사주면 밥 안먹을거야." 또는 마트에서 눕기 신공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몸을 배배꼬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이런 모양새였다. "엄마아... 나아... 사시르은 할 말이 있는데에...누구네 집에 갔더니 OO가 엄청 멋지더라?" 이건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갖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뭐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 정말 단순히 멋지다는 표현같기도 하고? 그래서 처음엔 별로 신경을 안 썼다.
그러다 점차 그 빈도가 높아졌다.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그냥 " 아 그랬구나. 봉식이(첫째아이) 눈에는 그 장난감이 멋져 보였구나" 하고 공감해주고 "그렇다고 모든 장난감을 다 살 순 없는 거야"라고 이해시켜주면 되지만 꼭 바쁜 출근 준비 시간 때 내 다리에 달라붙어서 이러면 아무리 아이에게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던 부모도 짜증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다. 급기야 "집에 장난감이 이렇게 많은데 뭘 또 새로 산다고 그래?" 하고 다그치는 지경까지 갔다.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패턴에도 문제가 있었다. 대체로 남편이 인터넷 쇼핑몰이나 중고시장을 물색해서 괜찮은 물건을 사오거나, 주변에서 안쓰는 장난감을 받아다가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장난감을 골라 가진 경험이 별로 없는 것이다. 한번은 "아빠한테 이제 내가 원하는 걸로 사다달라고 해" 라는 주문까지 받았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실 아이들 장난감 해봐야 수천만원 하는 것도 아닌데 사주려면 다 사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이에게 '세상은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수 있는 것' 이라는 개념을 심어주면 안되었다. 최근들어 불고 있는 "돈에 대한 관념"과 "경제교육"을 미리부터 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교육과정 내에서 경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돈에 대한 교육은 결국 집에서 맡아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아이가 소유를 탐하기 시작한 지금 이 시점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사실 요새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잘 없고 대부분 핸드폰으로 주문을 하다보니 아이들은 핸드폰이 새 물건을 가져오게 하는 요술상자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주로 카드를 쓰다보니 거래에 대해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다. 이미 신용카드의 지불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다가 지친 경험이 있었다. 미취학 아동에게 신용을 기반으로 한 사회를 설명하는 건 참 어렵더라.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중고거래였다. 집에 있는 장난감을 팔아서 번 돈으로 새 장난감을 사기로 하는 것이었다. 당근마켓을 이용하면 아이와 함께 가서 물건을 전달하고 돈도 받아오게 되니, 아이가 "거래"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는 순순히 자기 물건을 내놓겠다고 했다. 사실 안 가지고 노는 장난감 내다 파는건 싫고 새 장난감만 갖고 싶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는데 생각외로 일이 잘 풀렸다. 시작부터 페이스가 괜찮은데?
그럼 어떤 물건을 팔고 싶은지 골라와보라고 했다. 신나게 장난감통을 뒤져 이거 고르고 저거 고르고 하더니 팔 물건을 대령했다. 아이가 5살때쯤인가부터 아직까지 환장하는 로봇자동차 헬로카봇이었다. 그것도 무려 네개나.
"봉식아. 이거 네가 무척 아끼는 거잖아. 이거 내다팔면 다시 갖고 놀고 싶어지지 않겠어?"
"아니야. 나 요새 이거 안 놀아. 이거 팔거야."
"그래도 다른걸로 골라와봐. 헬로카봇은 지금도 한창 만화 보고 있는 것들이잖아."
"아니야. 지금 나오는건 헬로카봇X고 얘네는 그냥 헬로카봇이라서 없어도 돼. 이거 팔고 헬로카봇 X 살거야."
그래 알았다. 정 니가 그렇다면야.
아이가 원하는대로 헬로카봇 4개를 당근마켓에 팔기로 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알록달록 카봇 네개를 쪼로로록 세워 사진을 찍었다. 자동차 모드로도 찍고 로봇 모드로도 찍고 변신한 모습도 찍고 최대한 뭔가 있어보이게, 또 성심성의껏 사진을 찍었다. 솔직히 귀찮았지만 아이이게 경제관념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는건데 이정도 귀찮음을 감당 못 하랴. 이 경험을 토대로 아이가 돈과 경제에 대한 개념이 생긴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었다. 나는 이미 거의 워렌 버핏의 어머니가 되어있었다.
요리조리 예쁘게 사진을 찍고 당근마켓에 올리려고 보니 또다시 문제에 봉착했다. 상품가격을 못 정했다는 사실이었다. 헬로카봇을 사본 부모라면 다들 알겠지만 이게 정상 가격은 무척 비싸다. 하나에 4~5만원 정도? 우리집에 얘네들을 들여올때는 남편이 중고로 사왔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오래되서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하나에 2만원 정도씩 했던 것 같단다. 그럼 대체 나는 얼마에 팔아야 하는거지?
당근마켓에 다른 사람들은 얼마정도에 팔고 있나 검색해봤다. 옆에서 아이는 내 상품 빨리 안올리고 뭐하냐며 성화였다. 엄마가 딴짓하는 줄 아나보다. 그래서 중고가격은 우리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에 파는지 알아야 정할 수 있다고 설명해줬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비싼 값에 팔면 아무도 안 사고 너무 싼 값에 팔면 우리가 손해보는 것이니까 적정가격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아이는 금방 수긍했다. 이번엔 짐 로저스의 어머니가 된 것 같았다.
검색 결과를 종합해보니 개당 만원씩에 팔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4개를 4만원에 올렸다. 1개당 1만원씩 올리면 좋을텐데 왜 한꺼번에 4만원에 올렸냐고? 솔직히 이 때까지만 해도 이걸 진짜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아이한테 경제관념 심어주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지만, 그것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던 장난감이 없어져 상심하는게 더 큰 충격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난 그때가서 새걸 사줄 수도 없고 결국 또 당근마켓으로 검색해서 새로운 중고를 사오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할테니 그런 수고는 원천 차단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냥 당근마켓에 올려놨는데 안팔리고 기다려도 안팔리고 그렇게 잊혀지고 마는 해프닝으로 유야무야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정말 그날부터 하루에 다섯번씩 연락이 왔냐고 물어봤다. 일어나자마자 물어봤고, 퇴근하고 오자마자 또 물어봤고, 저녁 먹으면서, 자기 전 양치질 하면서, 자려고 누워있으면서도 물어봤다. 정말 초미의 관심사가 따로 없었다.
4개 4만원이라는 진입장벽 전략이 성공했는지 당근마켓에서는 아무도 연락이 없었다. 한 일주일쯤 지났는데도 "당근~"소리는 안들렸고 아이는 아직도 계속 보챘다. 급기야 남편이 자기한테 팔면 자기가 더 비싼값에 팔아주겠다고 나섰다. 일주일만 더 기다려보고 안되면 가격도 내리고 사진도 새로 찍어서 올리기로 아이와 약속했다. 4개 4만원 일괄거래로 올려서 사람들이 안 사려 한다는 사실은 아직까진 비밀이었다.
다행히 그 다음 1주일 후 아이의 머릿속에서 이 중고거래는 잊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근마켓에 매수의향자가 나타났지만 모처럼 갖게 된 이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못팔게 되었다고 죄송하다고 하고 말았다.
한달 뒤쯤이었다. 아이가 다시 묻기 시작했다.
"엄마 아직도 연락 없어?"
"응? 뭐 말이야?"
"당근마켓 말이야."
"ㅇ.ㅇ?"
역시 기회가 왔을 때 팔았어야 했나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