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당근마켓 거래 정복기
아이에게 경제관념을 심어주겠다며 내가 저지른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살 수는 없다. 우리의 자원(돈과 공간)은 한정적이니까.
물건을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을 만들려면 가치를 창출해서 남에게 팔아야 한다
너는(아이는) 당장에 딱히 창출할 가치가 없으니 있는 재산(장난감)을 팔아야 한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중고시장(당근마켓)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중고시장에 헌 장난감을 갖다 팔면 그 돈으로 새 장난감을 살 수 있다!!??
이렇게 시장경제의 세계로 들어오라고 한껏 인도해놓고선 돌아서서 “아직 애니까 잊어버리겠지” 하곤 어쩌다 들어온 거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버린 것이다. 아이한테 이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면 너무 상심할게 뻔했다.
아이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아이에게 가르친다는 이유로 고압적인 태도로 훈계를 해대면서 정작 내용은 이랬다 저랬다 하면 아무런 교육이 안된다. 오히려 부드럽게 이야기 하더라도 꾸준히 같은 방향으로 말해주면 아이는 오히려 납득하고 이해하게 된다. 평소에 이 일관성을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1순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내가 이런 우를 범하다니. 역시 하기로 한 일은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소한 해프닝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실패의 경험으로 남아 오랫동안 괴롭힐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매수의향이 들어온 사실을 숨기자니 바로 값을 내리자고 할 것 같았다. 우리가 책정한 물건 가격은 적정가격이라고 생각했고 이보다 더 내린다면 이 장난감을 사기 위해 지출한 최초의 내 돈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짱구를 굴린 결과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사겠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부품이 제대로 잘 갖춰져있는지 몰라서 못 팔았어”
내가 생각해도 진짜 기지를 발휘한 것 같다. 덕분에 아이의 실망도, 가격을 내리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내가 아이한테 거짓말 한 부모가 된 것 빼고. 이제 워렌버핏이니 짐로저스니 하는 유명인들의 어머니는 물건너간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부모로서 반성도 하고 거래도 좀 수월하게 할 겸 1개당 1만원씩 파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아이는 내 옆에 꼭 달라붙어서 엄마가 제대로 상품설명을 바꾸는지 검사했다. 한글을 깨쳐서 이렇게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도움이 될 줄이야
그로부터 얼마 가지 않아 거래 가능여부를 묻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 기쁜 소식을 우리 아이에게!!!! 전하기 전에 일단 진정성 여부를 파악해야했다.
대답이 늦어서일까. 그렇게 그는 그뒤로 연락이 없었다. “안녕하세쇼” 라고 인삿말부터 오타났을 때 그의 다급함을 헤아렸어야 했는데 전적으로 나의 불찰이다. 아마도 그 집 아들도 옆에서 무진장 닦달하고 있었던 거겠지. (엄마!!! 합체랑 변신도 잘 되는지 물어봐!!! 연락 왔어??? 안왔어???? 왜안와???? 그냥 딴거 살래%#@&₩)
우리 아이에겐 이 사실도 비밀이었다. 조만간 또 입질이 오겠지.
시간은 흘러가는데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에 사는 5~7세 남자 어린이라면 환장할 헬로카봇을 왜이렇게 아무도 안 사가지? 상품설명이 너무 간단해서 그런가? 그치만 화려하게 설명해봤자 카봇은 카봇일뿐인데 뭐가 문제일까.
인터넷에 새 상품을 검색해보니 우리가 팔려고 내놓은 4개를 다 사면 최저가로 9만원 정도 하겠더라.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언제 이렇게 가격이 떨어졌지? 역시 우리 아이가 새로 나온 헬로카봇X를 원하면 다른집 아이들도 헬로카봇X를 원하지 더이상 한물간 헬로카봇 오리지널은 원하지 않나보다. 이렇게 간단한 수요와 가격의 법칙을 나도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아이한테 경제교육은 개뿔 나부터 각성해야겠다.
그렇다면 역시 가격을 내려야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또 내 멋대로 아무렇게나 가격을 내리면 아이와 한 약속이 틀어지니 앞으로 일주일만 기다려보고 입질이 없으면 가격을 10% 내리기로 했다.
그러고 몇일째였을까. 기다리던 "당근~" 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왔다!!!
근데 구매의향자께서 사용감이 많은지 물어보신다. 의외로 "1개만 사고싶어요"나 "가격 깎아주세요"가 아니라 4개 다 살테니 사용감이 어떤지를 묻는다. 엥. 중고니까 당연히 새거는 아닌데 왠 사용감을 물어? 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새 상품을 살 수도 있지만 조금 내 돈을 아끼고 조금 지구를 아끼자는 차원에서 중고물건을 사는건데 구매하고 보니 못쓰기 일보직전인 걸 내가 돈주고 사왔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 빡침은 정말 이루 형용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구나. 중고거래에선 "사용감" 도 중요하구나.
그런데 좀 난감하다. 도대체 이건 사용감이 많은건지 아닌건지 모르겠다. 고장나거나 까진데는 없지만 그렇다고 잔기스가 없는건 아닌데. 이런 애매한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구매로 이어지게 할 것인가. 갑자기 옛날옛적 마케팅 서적에서 읽은 지식들을 풀 동원했지만 별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고전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 고전은 바로 함무라비 법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애매한 질문엔 모호한 답변!
"완전 새거는 아닌데 깨끗한 편이에요."
라고 대답했더니 시간 약속을 잡자고 했다. 읭. 사용감은 별 중요한게 아니었나? 함무라비 법전 역시 명성이 대단한만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을 맞추다보니 오늘은 어렵고 내일저녁에나 되는데 정확한 시간은 내일 연락을 준다고 한다. 시간을 정확하게 정한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내일 진짜 거래를 할지 안할지는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이한테 말을 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됐지만 일단 이 정도면 거래의 50%는 진행했다고 봐도 될 것 같아 아이에게 소식을 알렸다.
"봉식아. 우리가 팔려고 내놓은 헬로카봇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있는데 내일 저녁에 사러 온대. 그러니까 깨끗하게 닦아서 쇼핑백에 담아놓자."
아이는 신나서 난리가 났다. 드디어 새 장난감을 살 수 있겠구나!!!
"그치만 그 사람이 내일 사정이 생겨서 못 올 수도 있어. 그렇더라도 너무 상심하지는 말고 만약에 못 팔게 되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보도록 하자."
"네네 엄마~~"
뒤에 한 말은 아이 귓속으로 안들어간 것 같지만 일단 내일의 거래를 준비해본다. 아이는 정말 정성을 다 해 카봇 4개를 닦았고 사이즈에 꼭 맞는 쇼핑백까지 준비해 반듯하게 넣었다. 그렇지만 걱정이 된다. 이래놓고 내일 사겠다는 사람이 잠수타면 어쩌지.
그러면 뭐, 거래라는건 성사되기 전까지는 엎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면 되지.
[중고거래에서 중요한 점 3줄 요약]
- 빠른 대응 (고객서비스)
- 가격 적정성
- 물건의 상태 (사용감)
=> 결국 새 상품 거래와 다르지 않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