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작인 Aug 02. 2021

직장인이 되어 잃은 3가지

건강, 시간 그리고 기회


직장인이 되어서 많은 것을 얻었다. 직전 글에서 언급한 월급, 인정, 안정감 외에도 수없이 많은 자잘한 것들을 얻었다.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구조랄지, 산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랄지 집에만 있었다면 전혀 알지도 못하고, 또 알아볼 생각도 안 했을 사회에 대한 얄팍한 지식과 경험들을 얻었다. 어쩌다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진상 이웃을 대하는 요령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직장인이 되어서 많은 것을 잃었다.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이 바로 건강, 시간, 그리고 기회다.





직장인들 대부분이 지병 하나씩은 앓고 있다. 나는 직장인이 되고 딱 10년 차가 되던 해,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디스크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그냥 출산하고 나서 얻은 지병이라고 이야기하고 말지만 사실 난 8시간 동안 앉아서 생활하는 회사생활이 디스크 진단에 더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자세가 안 좋은 것도 아닌데, 아니 대체로 자세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나인데 희한하게 디스크가 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허리 디스크라는 병은 허리를 지탱해주는 척추 뼈 또는 그 안의 물질이 정상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붙어버리거나 흘러나오거나 신경을 건드리는 등 허리를 받쳐주는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다양한 상태를 일컫는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큰 충격을 받거나(교통사고, 출산) 오랜 시간 동안 안 좋은 자세로 생활해오면서 허리가 불균형한 힘을 견디지 못해 이상이 생겨 병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 병원에 가 X-ray나 MRI를 찍어보고 디스크를 진단하는데 이미 이렇게까지 검사를 받을 때에는 디스크 발병 이후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직접적인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 그냥 OO이 내 디스크 발병의 이유이겠거니 하고 짐작할 뿐이다.



이 디스크라는 병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의 경우 심하게 아플 땐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워있을 땐 통증이라도 덜한데 앉아있으려면 그렇게 아플 수가 없다. 그러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행위는 정말 지옥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나마 서 있는 건 조금 괜찮아서 재택근무 시절에는 안방에 있는 키 큰 서랍장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업무를 봤다. 그렇지만 재택근무는 오래 지속할 수 없었고 결국 나는 사무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앉아있다가 서 있다가 할 일 없이 허리를 팡팡 두드리며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다소 정서불안을 겪는 사람처럼 되고 말았다.



사실 디스크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게 통증으로 나타나는 사람과 안 나타나는 사람의 차이는 허리를 지탱해주는 근육이 얼마나 기능을 잘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한다. 근육맨으로 유명한 연예인 김종국도 디스크가 아주 심각한 상태라고 하니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온다. 그러면 디스크를 앓는 모든 사람들이 허리 운동을 하면 될 텐데 왜 문제일까? 나의 경우 통증이 심해서 운동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장기간 물리치료를 통해 통증을 가라앉힌 후 운동으로 근력을 키우라고 했는데 일단 통증이 안 가라앉아서 근력운동은 계속 후일로 미뤄졌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았더라면 나아졌을 텐데 코로나와 회사생활로 물리치료를 한 달 이상 지속한 적이 없었다. 물론 핑계라면 핑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업무시간 중에 물리치료를 위해 2시간씩 자리를 비우는 일을 한 달 이상 해낼 자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한 세 달 정도 얼굴에 철판 깔고 병원 열심히 다녀서 빨리 건강을 되찾을걸 하는 후회도 없지 않아 있다.



 

 


결국 나는 내 시간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건강을 회복할 기회도 잃은 것이다. 직장인이 되어서 잃은 두 번째의 것, 시간도 결국 이렇게 이어져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하루에 8시간의 근로시간과 1시간의 휴게시간, 도합 9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출퇴근 시간 편도 1시간을 더하면 11시간 정도를 집 밖에서 보내는 꼴이고 출퇴근을 위한 준비시간까지 합치면 하루의 절반인 12시간 정도를 회사생활에 바친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남는 시간 12시간 중에 7시간 정도를 잠에 할애하면 딱 5시간이 남는다. 그 5시간 동안 우리는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하고 아이들과 시간도 보내며 집안일도 하고 자기 계발이나 취미활동을 위한 시간도 보낸다.



하루 24시간 중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최대 5시간이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면 기존에 하던 일을 포기하거나 잠을 줄여야 한다. 하루 7시간 수면이 너무 긴 것 같아서 잠을 6시간, 5시간으로 줄여봤지만 결국 삶의 질만 떨어졌다. 이런 와중에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치료시간과 통원 시간 총 2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것이니 내가 물리치료에 집중하지 못한 게 100% 핑계라고 볼 수는 없다.



하루가 24시간이라고 하면 상당히 길어 보이지만 그중에서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은 5시간. 그마저도 꼭 해야 하는 일들, 예를 들면 집안일이나 육아 등에 할애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자기 시간을 갖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그냥 나를 위한 독서나 음악 듣기처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별로 없는 활동을 하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인 때가 많다.



 



산업화 직후의 공장 노동자들은 거의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공장 노동만 해야 겨우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근로시간은 수백 년 동안 근로자들이 싸워 쟁취한,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사회적으로 합의한 시간이다. 그런데도 참 근로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도대체 세상이 왜 이렇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통을 조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직장생활을 함으로써 잃은 마지막 것이 떠오르게 된다. 바로 기회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직업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와 관련된 이야기만 해보면, 일단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직장생활을 할지 말지, 어떤 직장에 갈 것인지, 언제 취직을 할 것인지, 한 곳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질지 아니면 옮겨 다니며 일하는 직업을 가질지, 하루에 8시간 일하는 일을 할지 아니면 유연하게 일하는 직업을 가질지,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등등 많은 선택을 할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여기서 “OO에서 직장생활을 한다”라는 선택지를 고르고 그 생활을 시작하고 나면 그 이후로부터는 선택지가 확 준다. 이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게 그나마 중대 사안이 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예를 들면 코로나로 전자상거래가 늘어나고 물류거점 확보 싸움이 시작되고 쿠팡이 나스닥에 상장되고 이런 것들이 나의 생활과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들린다. 변화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무수히 많이 발생하는 기회들을 잡을 생각이 없다. 일단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여력도 없기 때문이다.



직장인으로서 살면서 가끔 자영업자나 창업가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대화를 나눠보면 참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분명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팬시하고 사회적 지위와 힘을 가진 쪽이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상당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사실 내가 몸담은 이 조직이 힘을 가진 거지 나 자신은 그다지 권한도 책임도 없다. 제도권 하에서의 과장님이 아무리 잘나도 결국 과장 나부랭이일 뿐 절대 어떤 세계의 대표님을 이길 수 없다.



직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하루에 자기 시간 내는 게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든 일이다 보니 무언가 도전을 하다가도 금방 흐지부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현재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자니 지금 내가 직장인으로서 갖고 있던 걸 버리고 불확실성에 뛰어들어야 하니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도 회사를 다니던 도중 새로운 일에 참여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인생을 바꿀 새로운 도전까지는 아니고 그냥 과외활동 정도였다. 가장 최근에는 어느 신문사에서 기획한 '청년들의 부동산 정책 좌담회'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와 찬반 토론이 치열하게 벌어질 게 예상되었다. 원래도 방송 출연이나 기고 등은 회사의 허락이 필요한 일인데,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발언을 하러 나간다니 분명 회사에 알려야 할 것이었다. 이미 주변 동료가 정부 정책 수립에 대한 지원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회사의 허락을 굉장히 어려 단계에 걸쳐서 받는 것을 옆에서 본 터라 그냥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뒤로 삼O어묵 등 부동산 정책에 대한 논객들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또 순기능을 하는 걸 보며 '아 그냥 물고 늘어져서라도 할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내가 무엇을 잃었나를 생각하면서 왠지 모르게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게 되는데, 이때 가장 내 마음이 헛헛해지는 것은 이게 나의 선택에 의한 결과라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웬만해선 이걸 멈출 수 있는 용기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언젠가 한 번은 직장이 나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써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참 미루고 미뤄오다가 겨우 시간을 내 끄적였다. 써놓고 다시 한번 읽어보니 이 얘기했다가 저 얘기했다가 중언부언하고 있는 게 보인다. 그만큼 이놈의 직장생활, 단어만 떠올려도 마음과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미래에 이 글에 첨언을 하게 되는 날이 올 것 같다. 그치만 너무 자주, 많이는 안 왔으면 좋겠다. 그냥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싶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직장인이 버리기 어려운 3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