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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Oct 22. 2021

어쩌다 영어유치원

극성맘은 아니지만 보냅니다.



찬바람 부는 초겨울이 되니 미취학 아이를 둔 맘들이 모인 단톡방이 뜨겁다. 내년도에 우리 아이를 어떤 기관에 보낼 것이냐 하는 문제로, 알아보고 고민하고 조언을 구하느라 그렇다.



나도 작년 이맘때쯤 그랬다. 그리고 7살인 우리 첫째 아이는 지금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단언컨대 4~6세 부모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봤을 것이다. 우리 아이, 영어유치원 보낼까?



우리 첫째는 다른 아이들보다 기관을 옮겨다닌 전력이 좀 많았다.


- 일단 2~4세까지는 집 근처 민간 어린이집에 다녔고,

- 5세에는 정말 운 좋게 도보 거리의 일반 유치원에 당첨돼서 다니게 됐었다.

- 그렇게 7개월을 다니다 이사를 오면서 동네 일반 유치원에 자리가 없어 단지 내 국공립 어린이집 5세 반에 들어갔고

- 6세가 되면서는 이사 와서 환경도 낯선데 반년도 안돼서 원을 옮기는 게 부담이 되어 계속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리고 7세를 앞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다. 아이가 다니던 국공립 어린이집이 단지 내에 있고 시설도 깨끗하고 좋았지만 6,7세 인원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6,7세들이 유치원으로 빠지다 보니 5~7세 통합반을 운영했다. 그마저도 7세는 2명밖에 안됐다. 6~7세 통합반이라고 하면 뭐 한 살 차이 정도야... 할 수도 있지만 5~7세 통합반은 뭔가 체감상 좀 그랬다. 인구 소멸 예정인 지방 소도시의 읍면소재지도 아니고 서울 도심 한복판인데 이건 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일반 유치원을 다니다가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겪어 본 우리 아이를 보니 확실히 유치원은 교육기관이었고 어린이집은 보육기관이었다. 유치원은 짜인 시간표대로 한 과목, 한 과목을 클리어하는 느낌이었고, 어린이집은 70% 시간을 자유놀이에 할애하다가 조금 지루해질 때쯤 선생님과 활동을 한 두 개 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 정도로 차이가 극단적인 건 아니겠지만 아이의 표현대로라면 이랬다. 그래서 아이는 어린이집을 참 좋아했다. 



사실 우리 아이는 5세 초반 일반 유치원의 압도적인 교실 스케일과 갑자기 많아진 인원수, 빡센 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해 부적응이 왔었다. 유치원 안 간다고 실랑이하며 점심만 먹고 겨우 데려오는 생활을 4개월이나 했다. 그래서 이사를 오면서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어 다행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어릴 땐 역시 자유롭게 노는 게 제일이지, 하면서도 나만 너무 뭘 안 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이미 어린이집에 7세가 2명밖에 남아있지 않는 것으로 주변 분위기가 증명되기도 했고.




Photo by Gautam Arora on Unsplash



그래서 7세에는 무조건 다른 곳에 보내기로 다짐을 했다. 


1순위로 주변에 구에서 운영하는 유아체능단(수영과 기타 체육활동에 중점을 두는 교육기관)이 있어서 보내려고 했는데 코로나로 1년째 문을 닫은 상태였다.

2순위로 일반 유치원을 보내고자 처음학교로로 접수를 했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광탈.


애초에 TO가 1명, 2명인 상황에서 우리 애가 당첨될 거라고 기대도 크지 않았지만 정말 광탈하고 나니 허무했다. 대기번호도 무의미한 숫자였다.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맘카페를 들쑤셔 미리 입학설명회를 다녀온 곳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영어유치원이었다.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다행히 들어갈 자리를 하나 얻어 영어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남들은 아이의 발달을 체크해서 어떤 교육기관이 적당할지 고민하고 그에 맞는 테크트리를 짜주는데, 나는 그냥 일반 유치원 광탈하고 어린이집은 보내기 싫으니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밀어 넣는 느낌이 들어 처음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만큼 영어유치원이 내 머릿속에서 순위권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생각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의 명분을 찾게 됐다.



일단 수년 내에 해외 생활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아이의 해외생활을 언어적 측면에서라도 연착륙시키고 싶었다. 앞서 5세 때 경험했듯 우리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조금 적응이 느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일찍이 언어라도 트이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혹시 영어유치원에 적응 못하고 안 간다고 하면 뭐, 어린이집으로 돌아가면 되지 싶었다. 지금은 뒷걸음질 칠 곳이 있는 상황이지만, 수년 뒤 해외에 나가게 되면 그런 안전장치가 없을 테니까.



두 번째로는, 첫 아이를 낳고 반년 만에 회사에 복귀하고 또 정신없이 살아오느라 아이 교육에 큰 신경을 못 썼는데, 다른 지식적인 건 포기하더라도 언어 구사능력만큼은 좋게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뢰벨, 짐보리, 잉글리쉬에그, 한글나라 같은 영유아 교육프로그램을 비롯해서 아이 연령에 맞는 각종 전집류들을 들여 읽히는 것도 그 당시엔 너무 바빠서(사실 내가 별로 관심이 없어서) 못해줬는데 이제 뭘 좀 알아먹을 나이가 됐으니 영유라도 보내주마 했던 것. 



세 번째로는, 다양한 영유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다 보니, 보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아이는 너무 적응 잘하고 잘 다녔고 초등 들어가서도 학교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어떤 아이는 유치원 적응도 어렵고 초등 들어가서도 적응을 못 했다 그러고, 또 어떤 아이는 영어 구사능력이 뛰어나게 좋아져서 영어에 꾸준히 관심 갖고 잘하는데 어떤 아이는 아웃풋이 그저 그렇고. 아 역시 아이는 애바애구나. 회사 선배 중에 초5 아이를 키우는 차장님이 그랬다. 하고서 후회할지 안 하고서 후회할지 모르겠으면 일단 해 보라고.



그리고 부차적으로 선생님 당 학생 수가 적은 것, 각종 행사가 많아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워킹맘들이 많이 보낸다는 것 등등이 장점으로 부각돼 편안한 마음으로 영유에 보내기로 했다. 비록 시작은 '어쩔 수 없이'였지만 '그래 이 선택도 꽤 괜찮아'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Photo by Jessica Rockowitz on Unsplash




그렇게 올해 3월부터 현재까지 8개월째 영어유치원 7세 1년 차반을 다니고 있다. 결론적으로 만족하냐고? 당연히 그렇다. 다행히 우리 아이에게는 부적응도 없었고, 아이가 공부에 지쳐 불행해하는 불상사도 없었다. 애초에 아이 수준에 적당한 곳(=별로 안 빡센 곳)을 고른 탓도 있었고 그만큼 부모가 많이 신경을 쓰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를 글로 표현한다면 '일유 적응 못하고 영유 적응해서 잘 다닌 애'가 된다. 사실 우리 아이가 일유에 적응 못 했던 건 급격한 환경 변화 탓도 있지만 그 당시 둘째가 태어나서 심경적으로 더 이상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고 그 다른 사정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해보기 전엔 모른다. 더욱이 그것이 어른이 아니라 아이의 일이라면. 그래서 나는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존재하는 선택이 아니라면, 그 길을 한 번 가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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