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만 내가 해준 밥이 남이 해준 것이라서 맛있었을까?
큰 아이를 태권도 학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친정 엄마가 감자전을 해놓으셨다. 아직 어린이집을 다니는 어린아이임에도 집밥보다 자극적인 외부음식이나 공장에서 가공한 식품을 더 좋아하는 둘째가 할머니 앞에 앉아서 참새처럼 잘도 받아먹고 있었다.
감자전이라기보다는 감자볶음에 가까운 것이기도 한 이 음식은 감자를 얇게 슬라이스 한 뒤 부침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기듯 부친 것이다. 감자만 부치면 심심하니까 당근을 넣어 식감도 살리고 소시지를 썰어 넣어 짭조름한 맛도 더했다. 색감이 살아 음식이 한결 멋스러워지기도 했다. 단순한 음식 같지만 과정을 살펴보면 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식탁에 걸터앉아 한입 먹어보니 역시나 구미에 당기는 맛이었다.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접시 해치우면서 엄마 진짜 맛있다 너무 맛있다 했더니 엄마가 그랬다.
원래 남이 해준 건 다 맛있다.
엄마가 스스로를 남이라고 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사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고 당연히 남이긴 한데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남이라니. 대학생 시절 술에 거나하게 취해가지고 '우리가 남이가!!!' 하던 남의 집 아들딸들이나 진짜 남이지 우리 엄만 남은 아니지 않나. 그렇지만 역시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긴 하지. 더군다나 나는 독립해서 애도 둘씩이나 낳은 어른인데, 나의 엄마가 나의 동일시 대상인 건 당연히 아니었음에도 엄마가 남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생경하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엄마와 함께 살던 집이 우리 집이 아닌 게 된 순간부터였을까. 주민등록증이 생기던 순간부터였을까. 더 이상 법정 대리인이 필요하지 않게 되어서일까. 자아가 생겨서일까. 내 의사를 내가 표현할 수 있게 되서였을까. 아니 사실 그냥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와 나는 남이었는데.
아아아아주 어릴 때, 밥을 꼭꼭 씹어서 삼키지 못할 정도로 어릴 때의 기억인데, 옛날 사람이었던 우리 엄마는 밥을 당신 입으로 씹어서 내 입 속에 넣어주곤 했었다. 나는 그걸 참 싫어했었는데 싫다는 말을 할 줄 몰라서 어쩔 수 없이 받아먹었다. 그게 싫었던 걸 보면 나는 아주 어릴 때도 엄마를 남이라고 생각하던 순간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제 와서 엄마와 내가 남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질까.
엄마 입으로 꼭꼭 씹은 음식을 받아먹던 시절부터 독립하기 전까지 나는 엄마와 단 한 번도 이사를 안 가고 한 집에서 살았다. 심지어 우리 엄마는 그 집에서 오빠가 독립해 나갈 때까지, 또 그 후로도 몇 년을 더 살았다. 그랬던 우리 엄마 집이 이제는 진짜 수명을 다 해서, 동네 사람들과 다 같이 오래된 집을 부수고 새로 짓기로 결의했다. 흔히 말하는 재건축 조합 사업이다. 그런데 지금 그 조합 사업에 문제가 생겨서 공사가 중단되고 싸움이 나고 아사리 판이 났다. 잘못하면 우리 엄마는 집을 잃을 수도 있을 지경이라 골치가 아프다. 내 집도 아닌데. 엄마 집인데.
우리 엄마가 이 집을 잃게 된다면 어떡하나. 우리 집에서 같이 살자고 해야 하나.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집'의 '우리'는 나와 내 남편이 주축이 된 가족인데 같이 사는 건 좀 불편할 수 있지. 그럼 내가 엄마의 거처를 마련해 드려야 하나. 혹시 엄마는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같이 살길 바라신 건 아닐까. 부대끼며 같이 사는걸 더 싫어하시려나. 아니 어쩌면 엄마는 엄마일이니까 내가 관여하는 걸 더 싫어하실 수도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벌써부터 걱정하냐 싶기도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일이 잘못돼서 정말 그래야 하면 어쩌나 싶다. 그 집에 다시 못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엄마가 충격을 받으면 어쩌지. 그나저나 우리집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든 사람들 정말 도시락 싸다니면서 쫓아가서 패주고 싶다. 아니 우리집은 이제 내 남편과 우리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엄마는 '우리집'의 '우리'가 아닌데. 나 왜 이렇게 자꾸 헷갈리는 거야.
요새 엄마집 문제 때문에 밤마다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그건 자식으로서 부모님 집을 지켜드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기도 하지만, 나와 엄마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도 있는 것 같다. 몇몇 부모가 자식을 자기 분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요리든 휘리릭 뚝딱 빠르고 쉽게 만들어내는 엄마와 달리 나는 희한하게도 오래 끓여야 맛이 나는 닭백숙 같은 요리를 집에서 잘해 먹곤 하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의 것도 같이 푹푹 삶아서 갖다 드리곤 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참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신다. 혹시 그건 남인 내가 해줘서 그런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