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하고 두 번째로 한 일

인터넷 쇼핑몰을 차렸다

by 경작인



휴직 첫 날, 지방 원정 투자를 다녀왔다.

그리고 둘째 날, 인터넷 쇼핑몰을 차렸다.



이쯤되면 엉망진창 된 마음을 돌아보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휴직한다고 했던 건 새빨간 거짓말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나는 스스로 직시하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쉬지 못할 거라는 걸. 그럴 사람이 못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왜 쉬기로 했나.

조금 덜 치열하게 일하고, 여유롭게 일하면서 살 수 있는 생활방식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 내가 가장 원하고 또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조금 덜 벌고, 덜 세련된 일이라도 내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일이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물론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일에 사활을 걸고 온 몸과 정신을 갈아넣어 매출을 극대화 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직장인들 중에서도 열정을 갈아넣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쇼핑몰 대표와 직장인의 차이는 갈아넣은 것은 만큼의 결실을 자기가 가져가냐 조직이 가져가냐에 있다. 또한, 자기가 원하지 않는데 갈아넣음을 종용당하는 일이 있느냐 없느냐도 큰 차이다. 쇼핑몰 대표는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 또한 자기가 치룬다. 그래서 직장에는 간간히 존재하는 월급루팡이 이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다.




photo by pickawood @unsplash




그런데 너무 밑도끝도 없이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나는 스스로 정말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나는 디지털 문맹이다. 새로운 전자기기, 새로운 프로그램, 새로운 인터페이스, 미안하지만 다 안 반갑다. 처음 써본 스마트폰이 아이폰이라 본의 아니게 앱등이가 되었다. 아이폰 시장 점유율이 점점 떨어져서 속상하다. 언젠가 안드로이드로 갈아타야 할까봐.



꼭 인터넷 기반이 아니더라도 유통 판매 관련 일을 하는 것도 너무 쌩뚱맞았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유통이 뭔지 판매가 뭔지 아직 감이 잘 안잡힌다. 더군다나 이날이때껏 해 본일이라고는 부동산PF 밖에 없어서 B2B 영업에만 능한 사람이었다. B2C는 생각만해도 너무 질린다. 예를 들면 진상 고객 같은. 나는 내가 불이익을 당하고도 제대로 따지지 못하는 사람인데 내가 과연 작정하고 덤비는 진상 고객을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1. 앞으로 성장할 온라인 기반 산업이면서

2. 진입장벽도 낮으면서

3. 시간과 근무 장소 등이 유연하고

4. 사업의 방향을 내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내 상품을 만들어내서 내가 홍보하고 내가 유통하는, 전적으로 내가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또 빌붙을 구석이 있어 보였다. 워낙에 시장이 크고 또 앞으로 더 커질 것이기에.



photo by jefferson-santos @unsplash



가진 게 없으니 남의 상품을 갖다 팔아야 하는데 국내사입을 할지 해외구매대행을 할지 고민하다가 휴직 며칠 전, 마침 블로그를 통해 해외구매대행 강의를 접하게 되어서 신청하게 되었다. 나처럼 디지털 문맹에 쇼핑몰 사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최적인, 사업자 내기부터 상품등록, 판매, CS처리까지 알려주는 챌린지 프로그램이었다.



이 챌린지 프로그램의 목표는 하루에 2시간 시간을 들여 월 100만원 순수익을 내는 것이었다. 해외구매대행의 마진율이 대략 25~35%인 것을 고려하면 대략 월 300만원어치 물건을 팔아야 순수익 100만원을 낼 수가 있는 것이었다. 무엇을 파느냐에 따라 객단가가 결정될 것인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의류로 접근을 했다. 대략 2만원짜리 옷을 판다고 가정했을 때 한달에 150개를 팔아야 순수익 100만원이 남는다. 하루에 5개씩 팔아야 된다.



"아무 기반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옷을 팔기 시작했는데 하루에 5개씩이나 팔 수 있다고? "

약간 사기같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온라인 판매가 워낙 흥하니 가능할수도 있으려나? "

긴가민가했다.



효율도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하루에 2시간씩 들여 월 100만원 수익을 내면 그냥 8시간 일하고 500만원 넘는 월급 받는 직장을 계속 다니는게 낫지 않나? 심지어 회사는 그냥 숨만 쉬고 버티기만 해도 550만원 600만원 이렇게 월급을 올려줄텐데.



심지어 인터넷쇼핑몰이라니, 별로 고상해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은, 물론 나는 진흙탕속 같다고 생각했지만 겉에서 보기에는 우아한 백조같은 삶이었다.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 취직하고, 화려하고 복잡한 엑셀 차트 돌려가며 사업 타당성을 분석하고, 법적 제한과 계약서를 검토하고, 그렇게 해서 한번 계약을 따내면 수백억, 수천억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CBD, YBD, KBD 중심업무지역 고급 음식점에서 접대하고 또 대접받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나의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올 상반기에 내가 수주한 프로젝트도 무려 1,100억 짜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2만원짜리 티쪼가리 150장 팔아서 월 100만원 버는 일을 시작하겠다니 참.... 나의 권위가 어깨 쯤에서 발목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photo by myriam-jessier @unsplash



그렇지만 일단 한번 해보기로 했다.

직장생활을 계속 한다면 내가 원하는대로 2시간 일하고 100만원을 받을지, 8시간 일하고 500만원을 받을지 결정할 수가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이제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대로 늘리고 줄여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또 사업은 월 100만원을 벌다가도 요령을 익히면 300만원, 1000만원, 1억 이렇게 늘려나갈 수 있지만 직장에서 아무리 난다긴다 해도 현재 월급에서 20% 이상 올리기 쉽지가 않다. 나는 분명 100억어치 이익을 가져왔는데 나에게는 500만원만 주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앞서 권위를 내려놓는게 어려웠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 그 권위는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라 내가 다니던 회사의 것이었다. 나는 과연 회사가 견고하게 쌓아놓은 울타리를 벗어나 나의 성을 쌓을 수 있을까. 나는 나의 성을 어떻게 쌓아갈 것인가. 휴식도 휴식이지만 새로운 도전을 할 생각에 설레었다.



그렇게 휴직 2일차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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