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는 한참 달랐던 휴직 1일 차
약 10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휴직했다. 출산이나 중병 같은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갈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해서가 아니라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 같아서, 잠시 삶을 멈추고 몸을 만들고 인생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휴직을 했다. 물론 사유는 출산 직후 다 쓰지 못한 육아휴직이었지만 (어쩌면 출산하고 충분히 추스르지 못하고 복귀해서 그걸 지금 하는 것일 수도)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휴직을 할 줄 몰랐다. 당연히 회사를 안 가게 된다면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거나 다른 사업을 시작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휴직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출근하는 게 너무 힘들 때마다 막연하게 한 일주일 쉬고 집에서 잠만 잤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조금 숨을 돌릴 수 있다면, 아침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서점에 가 책 한 권을 사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 있게 책을 보는 상상? 뭐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랬던 나의 휴직 1일 차, 과연 무엇을 했을까.
웃기게도 나는 그날 지방 부동산 투자를 하러 갔다.
쉬면서 인생을 돌아보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휴직한다면서 첫날부터 돈을 벌러 떠났다. 무려 기차를 타고.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단 한 번도 서울을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부동산 투자 6년 차지만 서울과 경기도권 이외에는 한 번도 등기를 쳐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지방 투자일까.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할 정도로 여유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일을 쉬더라도 지금만큼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싶었다. 하루에 8시간씩, 출퇴근 준비시간까지 합치면 11시간씩 일하러 가지 않으면서 생활수준은 유지하고 싶다니 엄청난 욕심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내가 원하는 바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를 쉴 수 없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내 스스로가 돈 벌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당장 1분 1초를 돈 벌기 위한 노동에 쓰지는 않더라도 장기플랜으로 돈 버는 것에 한 발짝 걸친 사람이어야 했다. 나는 편하게 쉬는 것도 못할 사람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더 중요한 건, 이제 지방 부동산 투자를 할 만큼 투자에 확신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투자 철칙 중의 하나가 '망하면 내가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집만 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울이나 경기도권, 그중에서도 내가 살아도 만족할 만한 수준의 집들만 샀다. 그런데 이제 부동산 시장을 수년 관찰해보니 어떤 원리로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지 조금 알겠더라. 어차피 이미 다주택인 난 이제 서울에서는 더 이상 투자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뭐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벌자는 차원에서 지방에 원정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지방 부동산 투자 충분히 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이걸 하려고 휴직까지 한거냐? 라고 하면 솔직히 뭐 할 말이 없다. (일단 지방 전업투자를 하려고 휴직한 건 아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지방 투자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주말마다 가서 시장 조사하고 계약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면 되지 않냐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만 놔두고 주말마다 지방을 들락 거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남편과 아이들까지 대동하고 그 일을 해내는 것도 한두 번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닥치면 엄청나게 지치는 일인 것을 이미 경험해본 터였다.
지난해 6.17 대책 발표 직전 인천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계약했었다. 수리상태가 별로여서 일단 대출받아 잔금을 치르고 인테리어를 해서 전세를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책 발표가 나자마자 바로 대출 승인이 거절됐고 그 때문에 3일을 연차 반차 돌려 써가며 은행 다니고 상담받고 자서하고 난리를 쳤었더란다. 왕복 3시간이면 왔다 갔다 하는 인천에 다니는데도 이렇게 진이 다 빠졌는데 지방에 갔다가 뭐 하나 잘 못 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 같았다. 조금 편하게 살자고,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투자인데 그게 내 생활을 잠식해서는 안되었다.
그렇지만 휴직하고 간 지방 원정 투자도 그렇게 여유롭진 않았다. 일단 아침 9시 20분, 아이들 하원을 마치고 신나게 따릉이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9시 35분에 예약해둔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서였다. 그날따라 아직 아기인 둘째가 '엄마가 회사를 안가네?'라는 사실에 흥분해서 자꾸 어린이집을 안 가려고 했다. 얘야 엄마는 출장 가야 해 기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하며 달래고 달래서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나니 진짜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신호를 받고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 동안 결국 무궁화호 기차표를 취소하고 30분 뒤 열차를 다시 예매했다. 계약시간에 딱 맞춰서 갈 수 있을 시간이었다. 하원 시간에 맞추려면 계약하고 점심 먹고 동네 한번 둘러보고 바로 기차 타고 올라와야 할 것이었다.
이미 출근시간이 지나 한산해진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제시간에 도착해 몸을 실은 기차는 텅텅 비어있었다. 회사 다니던 시절 지방 출장을 갈 때면 항상 일정이 타이트해서 서울역에서 6~7시 반 사이의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선 객실의 절반 정도 자리가 찬다. 그러다 광명과 수원을 거치며 거의 풀방이 돼서 밑으로 밑으로 향하곤 했다. 기차역에서 맥모닝과 커피를 사 기차 안에서 먹으면서 가는 게 낙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것도 못하고 왠지 헛헛했다. 한여름에 따릉이 타고 달려오느라 온몸이 땀에 젖었는데 텅텅 빈 객실에 혼자 앉아 에어컨 맞고 있으니 너무 썰렁하게 느껴졌다.
이 날은 이미 계약할 물건을 정해서 사전에 가계약금 넣고 본계약을 하러 가는 길이었다. 내려간 김에 혹시 다른 괜찮은 물건을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부동산 앱을 켜고 둘러보는데 마땅한 게 안 보였다. 요새는 부동산 투자카페와 단톡방이 활성화돼서 어디가 좋다 싶으면 메뚜기 떼처럼 몰려가서 싹쓸이하고 어디가 시들하다 싶으면 부동산에 파리만 날린다더니 그 말을 실감했다. 불과 일주일 전에 가계약을 했는데 일주일 사이에 매물도 없고 간간히 보이는 것들은 가격이 추격 매수하기엔 조금 급하게 오른듯해 보였다. 나는 몇년을 주저하다가 드디어 작심해서 지방 투자를 시작했는데 다른 투자자들은 이미 이렇게 빨리 결정하고 또 실행에 옮겼구나 싶었다.
이번에 계약한 곳은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는 중소도시였다. 일자리가 많고 젊은 사람들이 모여드니 전세 수요가 탄탄하고 공급물량도 많지 않아 당분간 집값이 떨어지기 어려워 보였다. 첫 지방 투자인 만큼 신중하고 안정적으로 가기 위해 2억 이하 소액의 물건을 골랐다. 매도자가 팔고 이사 나가는 집이라 새로 전세를 맞춰야 했다. 잔금기간을 좀 길게 잡았지만 혹시라도 전세가 안 나갈 것을 대비해서 내가 100% 현금 조달할 수 있는 규모의 집을 골랐다.
부동산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리니 매도자 부부가 나타났다.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40대 부부였다. 이분들은 이 집을 샀던 가격에서 손해를 보고 파는 거라 계약하면서 언짢음을 내색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동요 없이 차분히 계약을 하고 헤어졌다. 투자를 하다보면 이런 물건을 종종 만나곤 한다. 나는 오를 것 같아서 이제 들어가는데 내 앞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털고 나오는 물건. 문득 누군가는 직장때문에 불행해서 어떻게든 그만두고 싶어하는데 누군가는 직장이 없어서 불행해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각자의 사정과 요구가 맞아 거래가 무사히 성사됐다. 계약을 마치고 부동산 사장님께 전세도 잘 맞춰달라고 거듭 부탁을 드리고 나오니 오후 한 시였다.
옛날 아파트 특유의 단지 내 상가 안에 있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한 줄 주문해서 먹었다. 가게 안에 테이블 놓을 자리가 없어 복도에 자리를 내놓았는데 꼭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있던 김밥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조금 오래됐긴 하지만 단지가 차분하고 정감이 가는 동네였다. 아무리 신축 아파트가 좋다고는 하지만 그 특유의 삭막함은 어쩔 수가 없다. 단지가 20년이 넘어가면서 뿌리를 깊게 내린 수목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건물 외벽, 가로 구조물 등은 어떻게 따라 할 수가 없는 요소들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기차 시간에 맞춰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이의 하원 시간에 맞추기까지 약 15분의 여유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기차가 연착됐다. 거기다 하필 우리 집은 왜 교통체증 지옥에 있나.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따릉 따릉 자전거를 신나게 달려서 겨우 버스 시간에 맞춰 갔다. 또 온몸이 땀이다.
마침 큰 아이 미술학원에서 전시회를 하는 날이라 부랴부랴 챙겨서 종로로 나갔다. 거리에 회사원이 가득한 평일 종로에 미팅이 있어서 나왔던 적은 있어도 아이와 전시회를 보러 온 적은 처음이었다. 이래저래 오늘 처음인 일이 참 많다. 오늘 휴직이 아니었다면 연차를 쓰고 나왔을까.
아이가 참여한 미술 전시를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품안의 꼬물이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뒤집기에 겨우 성공해서 아직 네 발로 기지도 못하는 아이를 집에 두고 회사를 나갔던 게 진짜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무려 전시회라니. 이 아이를 이만큼 키워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버티고 견뎌냈었나 싶었다. 아이가 자라난 시간을 추억하는게 아름답고 숭고한 느낌이 아니라 이악물고 버텨낸 기억으로 점철되다니. 오늘 하루 이상한 기분을 여러번 느낀다.
미술전시 관람까지 마치고 이렇게 한여름에 땡볕인데 아이는 집에 안 들어가고 놀이터에서 논단다. 덕분에 동네 엄마들과 함께 오래간만에 수다도 좀 떨었다. 직장을 다닐 때 어쩌다 연차를 쓰고 집에 있으면서 만난 동네 놀이터 아줌마들에 대해 막연하게 다들 전업주부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분들도 다 자기 일이 있지만 잠깐 쉬는 사람, 집에서 일을 하는 사람, 밤이나 주말에 일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밖에서 놀다가 땀범벅이 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와 저녁밥을 먹이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
그렇게 휴직 1일 차,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