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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저 휴직하려고요

by 경작인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 삶은 엉망진창이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어지러운 집안을 치우고 아이들 아침밥을 준비한 뒤 회사로 향했다. 30년 넘게 아침밥을 먹는 습관을 유지했지만 다 큰 어른이 돼서야 아침밥을 먹는데 할애하는 그 10분이 아까워서 아침밥도 먹지 않게 됐다.



출근을 하면 후배들이 각종 회의자료를 가져온다. 회사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닌데 회의는 왜 이렇게 많은지 프로젝트마다 진행상황을 업데이트해서 수정 반영하며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언젠가 팀장이 된다면 이걸 다 파악해서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회사에서는 연차가 어느 정도 차서 책임 있는 일을 해내야 했다. 출장도 자주 가야 했고 접대도 필요했다. 영업력에 따라 양질의 프로젝트를 따오느냐 마느냐는 얼마나 회사생활을 만족스럽게 또 오래 할 수 있느냐와 직결됐다. 팀 분위기가 화목해서 실적이나 영업력으로 암투가 일어나는 일은 없지만 은근한 경쟁이 있었다. 최근에 누가 누구를 만났다는 둥, 누구 라인에 누가 붙었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제 칼퇴하고 집에 갔던 내 행동을 돌아다보게 된다. 허리 디스크가 좀 나아지면 주말에 애들을 하루 종일 티비와 친구 먹게 하더라도 꼭 필드에 나가야지 다짐도 해본다.



그 와중에 오후 2시 반이 넘어가면 큰애와 작은애의 유치원, 어린이집, 태권도, 미술학원 등등의 각종 하원 알림, 등원 알림, 알림장, 공지사항 등이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댄다. 그때마다 일일이 신경 써서 볼 순 없어도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이가 태권도장에 가다가 중간에 어디서 사라지지는 않았는지 알고 있어야 했고 또 아이의 내일 준비물이 집에 없는 물건이면 미리 주문을 해놔야 무사히 등원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몸은 한 곳에 정신은 두 곳에 집중하며 하루를 보내고 퇴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이 출퇴근 시간만이 유일하게 내가 혼자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지하철에 버스에 환승을 두 번이나 해야 해서 진득하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지만 이 복작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책도 보고 투자 공부도 하며 이 시간을 꽉 채워서 썼다. 덕분에 신혼살림 시작하던 시절에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됐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먹고, 사고 싶은 것 있으면 다 산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 부부는 둘 다 사치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돈이 부족할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날이 복잡해져 가는 자산시장 속에서 누가 어떤 코인/주식/부동산으로 몇백억을 벌고 퇴사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 나도 갈 길이 먼데 하며 초조해졌다.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이천 원짜리 사는 것도 아껴서 투자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힘들게 일하고 또 투자해서 이제 겨우 돈 좀 벌었는데 이 정도도 못 쓰나? 하는 생각이 항상 함께 들어서 속 시원히 돈을 쓰지도 못했다.



칼퇴하고 집에 들어오면 6시 반.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애들 만화 보는 시간에 나도 허겁지겁 저녁을 챙겨 먹었다. 만화 엔딩 송이 나오기 시작하면 이제 또 일어나서 애들과 볶닥거려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더 아쉬웠다. 이까짓 10분짜리 만화 한편 더 본다고 얘 인생이 망하게 되진 않을 텐데 하는 생각과 그래도 정해진 규칙대로 하루에 보기로 약속한 시간만큼만 보여줘야지 하는 양쪽의 생각이 또 머릿속에서 싸운다. 그렇지만 대체로 천사는 악마를 이기고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키며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쉰다. 하루 종일 땀에 먼지에 뒤덮인 아이들을 씻기고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하다가 10시쯤 아이들을 재우다가 같이 잠에 든다.



몸은 자주 아팠다. 2년 전쯤부터 발병한 허리디스크 때문에 틈만 나면 와식생활을 하며 허리의 긴장을 풀어줘야 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누워있기가 어려우니 집에만 오면 와식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이들 책을 읽어줄 때도 누워서, 놀아줄 때도 누워서, 그냥 어지간하면 누워있었다. 그렇지만 집안에서 엄마가 누워만 있을 수 있나.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서 몸을 움직이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무릎도 아프기 시작했다. 혓바늘은 항상 나 있었고 다래끼도 자주 났다. 면역력 저하로 인해 생기는 소소한 질병 증상은 항상 하나쯤 갖고 살았다. 분명 건강 체질이었는데.






언젠가 내 삶을 돌아다보니 항상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뛰고 노력하는 시간만 있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뭔가를 주입하거나 생산적인 활동만 하다 보니 마음이 지쳐갔다. 그래서 하루에 1시간씩 일찍 일어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글 쓰기가 너무 재미있었다. 사실 나는 이렇게 나를 돌아다보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항상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남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삶을 살고 있었다. 하루에 1시간이 부족해서 1시간 반, 2시간 이렇게 늘린 날도 많았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나는, 나는... 하는 질문이 늘어갈수록 공교롭게도 머릿속은 더 복잡해져 갔다. 분명 글쓰기를 하면서 기분도 좋고 만족감도 생겼는데 마음속 어디에선가부터 불안하고 불편한 감정이 더 더 더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 불안의 근원을 찾고 싶었다. 불안으로 유명한 책도 읽어보고 심리학 책도 읽어봤다. 대체로 내 상황에 들어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공감을 받았다고 해서 내 불안이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결국 돌파구는 내가 찾아야 했다.



그렇지만 내가 스스로 내 돌파구를 찾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회피처를 찾았다. 혹시 우울증은 아닐까? 내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어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에게 여러분 나 혹시 우울증인 것 같지 않나요, 물으면 다들 코웃음 쳤다. 일단 '나 우울증인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울증 아닐 가능성이 높고, 또 설사 진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너는 절대 아니라고. 이 정도로 부인당했으니 우울증은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스스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본심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은 어딘지 모르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하루 반복하다 보니 밀물처럼 순식간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일 첫 번째로 나는 상당히 오랜 기간 이 직장생활을 유지하며 커리어를 발전해나가고 싶은 직장인으로서의 욕구가 있었다. 그렇지만 점점 직장생활이 가지는 한계를 벗어나 멋지게 내 사업을 성공시키고 싶은 욕구도 자라났다. 한편으로는 엄마로서 아이들의 곁에서 지켜보고 길을 터주는 역할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다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어려웠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듯 이 중에서 자기가 가장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길을 택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지금 떠오르는 이 욕구들이 순간적인 것일지 아님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일지도 몰랐고 내가 어떤 걸 해야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루하루는 너무 바빴고 나는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또 생각해볼 시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은 말이 있었다. 너무 치열하게 살지 말고 조금 쉬라고. 쉬면서 자기 시간을 좀 가지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항상 문제 상황에 부딪치면 네 자신이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노오력을 하면 다 극복해낼 수 있다고 배워오지 않았나. 쉬란다고 정말 쉬면 왠지 낙오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무 작은 시련에 쉽게 꺾인 건 아닐까,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풍파는 더 못 견디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 이 생활을 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은 직장생활과 육아였다. 부모 되기를 쉴 수는 없으니 쉰다면 직장생활을 쉬게 될 것이다. 이까짓 회사, 어차피 수억 버는 것도 아닌데 관둘래면 관두지 뭐~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막상 회사를 관두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다. 내 작고 귀여운 월급부터 회사생활 커리어,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가졌던 사회적 지위나 안정감 같은 것들이 너무너무. 그렇지만 이걸 포기하지 않으면 이런 숨 막히는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고 삶의 주도권을 잃은 채 건강도 시간도 내 마음대로 못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직전 글 직장인이 돼서 얻은 3가지, 잃은 3가지는 그 고민을 담은 글이다.)



https://brunch.co.kr/@sh1-click/36


https://brunch.co.kr/@sh1-click/37







어느 날인지 모르게 결심을 했다. 일단 직장생활을 멈춰봐야겠다. 다행히 나에게는 남은 육아휴직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뭐가 그리 바빴던지 1년짜리 휴직을 다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몸에서 새 생명을 떼내는 엄청난 일을 치러낸 와중에 몸도 마음도 다스리지 못하고 복직을 했다.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내 인생을 이제라도 돌릴 기회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회사를 관두게 된다면 굉장히 좋은 여건으로 갈아타기 위한 기회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해왔고, 그렇기에 내 회사생활의 마지막은 상당히 호기로움에 가득 차서 “여러분 저는 이만 퇴사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캬캬캬” 이런 인사말로 장식될 줄 알았다. 이렇게 두려움과 불안에 가득 차 “팀장님. 저 휴직하려고요…”라고 쭈굴거릴 줄 몰랐다. 물론 끝이 아니라 쉼이라 그런 것이겠만.



아무튼 그렇게 휴직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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