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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하고 세 번째로 한 일

장밋빛 꿈 앞을 막아선 자가격리

by 경작인


10여 년을 다니던 직장을 휴직하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새로운 일에 도전할 생각에 설레어 있었다. 실행은 빠를수록 좋기에 앞으로 할 일들을 주루룩 적어놓고 실천해나갔다. 늘어지게 늦잠 자기나 평일 오전 브런치,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카페에서 독서 같은 여유로운 희망사항들은 잠시 미뤄두었다.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들을 하면서 조금 피곤할 법도 했지만 지치는 줄 몰랐다. 머릿속이 온통 꽃밭이었다.



그렇게 휴직 후 첫 주말을 맞았다.



일요일인데 느닷없이 유치원 알람이 떴다. 아마도 사전에 공지한 다음 주 공지사항에 수정할 것이 있다든지 숙제에 오타가 있다든지 해서 알람이 왔을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들 일요일인데도 출근하시고 고생이 많으시네 하면서 앱을 켰는데 이상하게 글이 길다. 대충 보고 끄려고 했는데 대충 볼 수가 없는 글인 것 같다.







우리 아이의 유치원 담임 선생님이 코로나 확진인 것 같다고 한다.


선생님이 확진되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이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는 건가?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건가?

이런 건 누가 알려주는 거지?

근데 정식 코로나 검사도 부정확하다던데 자가진단 키트 믿을만한 건가?



일단 일요일이었고, 선생님이 확진 판정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유치원도 보건소가 아니다 보니 딱히 원생들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침을 주지 못했다. 그저 내일 월요일은 휴원을 한다는 공지뿐이었다.



다행히 우리 아이는 확진이 유력한 이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서 밥을 먹지 않았고, 유치원에서 계속 마스크를 쓰고 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치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권하는 대상자에 속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어쨌든 하루 일과의 절반 정도 약 2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냈기 때문에 안심할 순 없겠다 싶었다.



처음엔 그냥 어리둥절했는데 점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도 확진되면 어쩌지.

코로나 걸리면 열도 많이 나고 몸도 엄청 아프다던데 숨도 못 쉰다던데. 아이가 아직 어린데 혼자서 병원에 있어야 하는 걸까. 부모가 간병인 자격으로 병원에 같이 있을 순 있는 건가. 근데 아이가 확진이면 나도 확진인 건가? 하루 종일 같이 밥 먹고 씻고 자고 다 했는데. 그럼 나도 숨 못 쉬게 아프고 격리당하는 거야?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갈수록 점점 더 암울해져 갔다.



아니 그래도 설마 우리 아이가 확진될까 싶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며 여러 케이스를 보고 들으면서 코로나가 그렇게 쉽게 걸리는 병이 아니란 걸 느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확진자와 새벽부터 같이 골프 치고 사우나하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커피 마시고 온종일 같이 있어도 안 걸리는 사람은 안 걸리더라.



그나저나 당장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어쩌나 싶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코로나 검사를 받아봤던 나는 그 오묘한 기분을 알았다. 위에서 언급한 "확진자와 새벽부터 같이 골프 치고 ~ 커피 마신" 동료의 바로 옆자리 직원인 탓이었다. 엄청나게 큰 실뜨개코바늘 같은 게 한도 끝도 없이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그 기분. 내 코가 이렇게 길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어느샌가 눈밑의 어딘가까지 바늘이 올라와 콕 찔러서 눈물이 찔끔 나게 하는 그 검사. 7살짜리 애가 이걸 견딜 수 있을까. 심지어 우리 애가 확진돼서 4살짜리 둘째까지 검사를 받아야 하면 어쩌지. 얘는 진짜 안될 것 같은데. 아니 그럼 당장 우리 가족 모두가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건가?



걱정과 불안한 마음에 검색창에 이것저것 검색해보며 정보를 뒤졌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못찾았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라는 말을 되뇌며 일요일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었다. 첫째와 둘째 모두 유치원, 어린이집에 안 가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띠링. 유치원 앱 알람이 울렸다.







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망한 건 확실한 것 같다.



이제 우리 아이도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나? 확진자 선생님과 마스크 벗고 같이 밥 먹은 건 아니라서 1차적으로 검사를 받진 않았지만 그래도 검사를 받아야 하나 싶었다. 일단 유치원에서는 보건당국이 아니라서 정확한 지침을 내릴 수 없기에 보건소의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저녁 7시가 넘어서 우리 구의 보건소 임시 담당자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분이 제일 먼저 물은 건 코로나 검사 결과가 양성인지 음성인지 였다. 아직 우리 아이는 코로나 검사를 받기 전이라고 했더니 왜 아직까지 안 받았냐고 언성을 높였다. 보건소 연락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고 당신이 나에게 처음 전화한 사람인데 어떻게 검사를 받았겠냐고요.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줌마를 봤나 하는 취급을 하며 그 정도 밀접 접촉이면 당연히 먼저 검사를 받았어야 하지 않냐고 다그쳤다. 아 그렇군요 몰라서 죄송합니다. 코로나 검사 비용이 무려 10만 원이 넘던데 그걸 무료로 해준다고 이렇게 정식으로 검사 대상자로 판별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막 가서 받아도 되는 건가요? 저 진짜 어디 가서 세금 많이 내는 걸로 안 뒤지는 사람인데...



게다가 우리 아이는 밀접접촉자에 해당해서 자가 격리자로 분류되었으니 코로나 검사받으러 갈 때 빼고는 10일 동안 아무 데도 가지 말란다. 집에서도 단독으로 생활하는 방을 지정해서 거기서 나오지 말고 화장실도 따로 쓰란다. 밥도 문 앞에 갖다 주고 쓰레기도 자가격리 해제될 때까지 버리지 말란다. 집에서 격리할 방이 없으면 하루 종일 마스크와 일회용 장갑을 끼고 살란다.


저기 근데 저희 애는 7살인데요.


그게 방침이라서 어쩔 수 없어요.


가족도 코로나 검사받고 자가격리해야 되나요? 회사는 어떻게 하나요?


가족은 코로나 검사나 자가격리 대상은 아니니까 하던 대로 하시면 돼요.


그럼 7살짜리 애는 혼자 골방에 틀어 박혀서 알아서 먹고 자고 놀고, 가족들은 나가서 생계활동을 하라는 건가.....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굴리는 노동자 역할은 계속하되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혜자 역할에서는 잠시 배제되라는 거구나. 현실적으로 자가격리 방침을 지키기가 어려우니 결국 아이와 보호자 모두 자가격리를 하라는 말과 같았다. 잠시 어처구니를 잃어서 4살짜리 동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질 않았다. 가족들은 각자 자기 생활 잘하시라고 하길래 얜 그냥 어린이집을 보내도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날 밤 유치원 같은 반 엄마와 연락하다가 어린이집에 보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보건소 직원이 우리 집 가족 구성원까지는 잘 모르는가 보구나. 개인정보보호 확실해서 좋네.



다음 날 아이와 함께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더운 여름날이어서 대기가 많으면 어쩌나 기다리다가 아이가 지치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이는 더위도, 대기줄도, 공포의 대바늘 찌르기도 잘 견뎌냈다.



그러는 동안 유치원 앱에는 다른 아이들과 유치원 직원들의 검사 결과가 수시로 업데이트됐다. 단 한 명도 양성인 사람이 없었다. 이 와중에 우리 애만 양성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우리 애도 검사 결과 음성.



일단 한시름 놓았다. 이제 자가격리만 견뎌내면 될 것이다.



photo by annie-spratt @ unsplash



하필이면 휴직하고 뭐 좀 시작해보려는 찰나에 이런 일이 닥치다니. 그래도 내가 집에 있으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을 때 자가격리를 하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꼭 나의 새로운 출발을 막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뭐 회사를 다닐 때 이런 일이 생겼으면 정말 막막했을 게 뻔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더 크게 갖기로 했다. 그동안 회사 다니고 일하느라 아이들과 붙어있을 기회가 적어 아쉬웠는데 이번 기회에 강제로 질리도록 붙어있어 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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