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휴직 후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하고 또 필요한 일이지만 인정을 못 받는 일이지요.

by 경작인


회사 동료들이나 나의 거취 변화에 대해 알고 있는 지인들이 잘 지내냐고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물어오면 당연히 잘 지내요, 괜찮아요 라고 답하는 휴직 생활을 보낼 줄 알았다. 어차피 안부를 묻는 사람도 진심을 다해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 아닐 테니 그냥 어지간하면 잘 지낸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그렇게 잘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서 만들어낸 답변은


"휴직하고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였다. 돌봄노동이란 정말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말한다. 아이, 노인, 환자 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 또는 그러한 순간은 천지에 깔려있다.



열흘간의 자가격리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처음 3일 정도는 잘 지냈다. 첫째는 나름의 생활계획표를 짜서 시간표대로 바꿔가며 활동을 했고 둘째는 둘째대로 옆에서 형을 따라 하며 심심하지 않게 보냈다. 가장 큰 고충이라면 둘째가 졸려서 낮잠 자야 하는 시간에 첫째가 자꾸 옆에 와서 이거이거 해야 되는데 왜 엄마가 안 도와주냐며 짜증을 내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첫째가 어느 정도 컨디션이 좋은 날은 혼자서 종이접기를 하며 둘째가 잠들기를 기다리기도 했고, 아이의 인내심이 허락하지 않는 날은 TV의 도움을 빌려 시간을 좀 벌었다.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을 찾아냈다. 그럼에도 하루 종일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해결해주고 하는 것에 지쳐 엄마 좀 그만 괴롭히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진짜 문제는 유치원 줌ZOOM 수업이 시작되면서 생겼다. 전 원생 검사 결과 확진자는 최초 발생했던 선생님 한 명으로 끝났지만 유치원은 휴원을 결정하고 온라인 수업 체제에 들어갔다. 이미 작년에 한번 해봤던 터라 유치원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었더란다. 다만 우리 아이는 올해 이 유치원에 처음 들어갔던지라 이걸 잘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디지털기기의 노출을 최소화시키려고 가정에서 안간힘을 써댄 탓에 아직까지 유튜브를 혼자서 틀 줄 몰랐다. 컴퓨터는 고사하고 스마트폰도 혼자서 첫 시작을 할 수 없는 아인데 디지털 기기로 집중해서 온라인 교육을 들을 수 있을까? 어른인 나도 화상 회의가 다소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는데 아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이 신식 문물을 너무나도 신기해할 둘째까지 있는데 과연 방해받지 않고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더군다나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영어유치원이었고 입학한 지 4개월 차라 아직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였다.



나의 이 우려를 뒷받침하듯 줌 수업 시작도 전에 유치원에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분명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조부모가 아이를 돌봐주는 집도 있을 것이고 기타 여러 상황 상 여건이 안 되는 집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온라인 수업만 가능한 아이들만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고 수업료는 통상 수업료의 90% 선에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아이들이 참석하게 될 것이다. 영어유치원은 보육보다는 교육의 의미가 강한 곳이기 때문에 한주 빠지면 그만큼 커리큘럼을 못 따라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이의 담당 선생님은 두 명이었는데, 그중에서 한 명이 코로나 확진으로 자가격리가 되었기 때문에 대체교사가 투입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설상가상으로 다른 담당 선생님도 유치원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학부모에게 전화를 돌렸던 그 선생님은 본인도 자가격리 중이고 집에 갓난아기가 있어 줌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갓난아이를 집에 두고 직장에 나와 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냥 직장인의 마음일까 궁금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유치원에서는 이 선생님이 유치원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퇴사를 했다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가격리가 이 선생님의 직장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하필 또 새 세션이 시작되는 시기였어서 책이 모두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책과 수업에 필요한 교구들은 유치원 버스 도우미 선생님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나눠주었다. 그렇게 선생님도, 수업 환경, 책도 모두 바뀌게 된 아이는 어리둥절해하며 노트북 앞에 앉았다. 원래는 아이 장난감과 책이 있는 놀이방에 아이의 책상이 있었는데 둘째의 방해를 피하고 혼자서 편하게(?) 유치원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해 안방으로 책상을 옮겼다. 첫날은 신기해서 얼굴에 싱글벙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코로나 검사와 줌 수업 결정 등에 소요된 일주일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이 화면에 떠오르니 아이는 흥분해서 계속 소리를 질러대며 친구들 이름을 불렀다.



이 와중에 한국인 대체교사 선생님이 상을 당해 이번엔 또 대체교사의 대체교사 선생님이 투입되었다. 이 정도 되니 거의 우리 아이의 줌 수업 라이프는 망할 망亡자를 들이대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대체교사의 대체교사 선생님과 대체교사 선생님 간의 진도표 착오에서 왔다. 상을 치르고 복귀한 선생님은 뭐가 문제였는지 이미 지난 시간에 마친 부분을 또 하려고 하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몇 페이지를 훌쩍 뛰어넘어 진도를 나가려고도 했다. 사전에 공지되지 않은 준비물도 꺼내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 아이는 그날 수업 내내 불안해했다. 아이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FM 스타일의 아이라 선생님이 하는 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상당히 불편함을 느낀다는 걸 이때 절실히 깨달았다. 결국 오후 수업을 다 마치지 못하고 아이는 혼자 노트북을 덮고 방을 뛰쳐나왔다.



엄마 나 이거 안 할래. 나만 빼고 선생님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어. 다른 애들은 다 따라 해서 머리 위로 동그라미 그렸는데 나만 못했어. 안 할 거야. 난 못해. 엉엉엉.



아이는 폭발했다. 선생님과의 엇박자가 몇 번 쌓여서 자기는 점점 불안해져 갔는데 다른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수업은 그날그날 내용이나 내 컨디션에 따라서 잘 못 따라갈 수도 있는 거고, 이걸 꼭 다 따라가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은 잘하는데 나만 못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야. 그냥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멋진 거야. 우리 아가 잘하고 있어 최고 최고. 아무리 치켜세워줘도 아이는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선생님의 확진, 코로나 검사, 자가격리, 줌 수업 모두 아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터질 것이었던 게 이제야 터진 것 같았다.



결국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게 잘 얼르고 마음을 다스리도록 도와주고 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역할 모두 내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줌 수업을 하는 내내 내가 자기 책상에서 2m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했다. 물이라도 마시러 갈라치면 금세 엄마 어디 가냐고 찾았다. 덕분에 수업 시간 중 배경으로 우리 둘째 아이가 침대에서 노래 부르며 방방 뛰는 모습도 줌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쓸 교구를 동생이 망가뜨려서 멀뚱히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고 쉬는 시간 오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자기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모니터 화면에 문지르고 가는 귀여운 동생^^도 있었다. 집집마다 난리도 아니었다.



이제 와서 웃으면서 끄적이고 있지만 사회 시스템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그나마 우리 집은 엄마가 집에 있을 상황이어서 이 정도였지만 정말 돌봄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던 집은 어떻게 이 위기를 넘겼을까. 실제로 엄마가 초등교사인 아이 친구 집의 경우는, 아이는 아이방에서 줌 수업을 받고 엄마는 엄마방에서 줌 수업을 이끌어가느라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한다. 이 와중에 5살 난 막내는 또 다른 방에서 혼자 방치되어 있었으니 이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싶다. 일반적으로 많이들 선망하는 교사라는 직업도 재난상황에서는 그렇게 녹록지가 않다. 이런데도 애 보는 게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엄마들끼리 하는 유머 중에 남편더러 애를 보라고 하면 정말 애를 쳐다보고만 있다는 말이 있다. 애를 본다는 의미는 그냥 데리고 있는 것에 있지 않다. 어른과 함께 있으면서 신체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며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요새는 부모에게 학습매니저 역할까지 부여되어 아이의 발달이나 학습 정도에 따라 해야 할 것들도 무사히 해내도록 하는 게 애를 본다는 의미에 포함될 것이다. 아이를 돌본다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돌봄 노동도 사회적으로 시급하게 공론화해야 할 대상이다. 아이 돌봄 뿐 아니라 광범위한 차원에서의 돌봄노동 모두 말이다.



자가격리 불만토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읽는 사람은 조금 지겨울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툴툴거려야겠다. 삼시세끼 밥 해다가 먹이고 청소하고 옷 빨아 입히고 하는 것들도 모두 다 나의 몫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이런 단순 살림 노동을 남에게 맡기기가 어려워졌다. 예전 같았으면 1~2주에 한 번씩 도우미를 불러 어질어진 방을 싹 청소하고 내 마음까지 깨끗한 기분으로 다시 어지르기 시작하는 삶을 살았을 텐데 모두를 경계해야 하는 코로나는 그런 일도 허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가격리 기간에는 아무도 집에 못 오니까 더더욱이 불가능했다. 적어도 유치원에는 밥해주는 사람, 청소해주는 사람 다 따로 있어서 점심시간 동안 밥 먹고 놀기만 하면 됐는데 이제는 수업 중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밥해주는 사람=청소하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다 보니 40분짜리 점심시간에 밥 한 그릇 해서 먹이기도 버거웠다. 그래서 점심은 주로 일품요리를 먹었다. 휘리릭 볶아대기만 하면 되는 볶음밥이나 국수 종류들. 5대 영양소 챙기고 플레이팅 신경 쓰고 뭐 그럴 때가 아니었다.


격리기간동안 지겹지 않게 매일 새 메뉴를 대령했지만 기억에 남는건 여윽시 아이스크림이라는




하루가 너무 짧으면서도 길었다. 자가격리는 10일 만에 해제되었지만 유치원 줌 수업은 3주 동안이나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나의 일을 하지 못하고 항상 누군가의 뒷바라지만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마음잡고 잘 다니던 회사도 쉬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냥 멈추기만 한 상태 같았다. 이 시기에 누구라도 집에 없었으면 엄청 불안하고 힘들었을 테지만 하필 그걸 독박 쓴 사람이 나라는 사실도 너무 힘들었다. 차라리 회사를 나가고 있던 중이라면 남편과 내가 상황 봐가면서 나눠서 이 부담을 졌을 텐데 내가 휴직 상태라는 이유로 나만 힘든 상황에 처한 것 같았다. 힘든 건 알지만 부담을 충분히 나눠가지려고 하지 않았던 남편도 야속하고 개인에게 이러한 짐을 떠넘긴 정부도 짜증 나고 그냥 막 다 싫었다. 그냥 누가 툭 치면 ㅅㅂ인생ㅈ같네 같은 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 와중에 틈틈이 쇼핑몰 입점이나 동영상 강의 시청을 꾸준히 해서 이 3주가 끝나갈 때쯤엔 쇼핑몰에 상품을 업로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하루 종일 돌봄노동에 시달리다 보면 탈진상태가 되었지만 아주 잠깐씩이라도 짬을 낸 결과였다. 새벽에 한강변에 나가 자전거를 달리며 마음을 잡기도 했다. 16시간이 넘는 돌봄노동과 상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긴 했지만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그래도 직장생활은 언제 끝날지, 또는 끝내고 싶다면 내가 스스로 끝낼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라는 게 있는데 이 돌봄노동은 그런 게 없다. 너무 힘들다고 해서 엄마 되기를 관둘 수는 없지 않은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끝은 어디일까. 자가격리가 해제되면 끝날까? 줌 수업이 종료되면 끝날까? 바보같이 그런 줄 알았다. 그 뒤엔 더 엄청난 게 기다리고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휴직하고 세 번째로 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