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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Oct 06. 2021

디지털 문맹인데 인터넷 쇼핑몰을 열 수 있다구요?

열기는 개능 운영은 안개능


인터넷 쇼핑몰이 대중화되던 시절부터 나는 왠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일단 복잡했고 정신이 없었다. 내가 원하는 상품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때마다 꼭 망망대해에서 바늘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터페이스는 또 왜이렇게 어지러운지 꼭 일본 시부야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느낌과 비슷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현란한 형형색색의 글자와 그림들은 도대체 물건을 사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간판공해에 질려 평화로운 집으로 돌아가라는 건지. 



그래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니 인터넷 쇼핑몰이 만들어지긴 하더라. 솔직히 내가 이걸 혼자서 해내려고 했다면 분명 중간에 포기했을 텐데 요즘엔 유튜브와 각종 강의들이 많아서 이런 것들의 도움을 빌리면 디지털 문맹이라도 해낼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튜브나 강의 광고에서는 다들 정~말 쉬워요 라고 했지만... 나도 뭐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 과정은 '전반적으로 쉬웠다'라고 해야겠다.



내가 따라 했던 강의는 중국 의류를 대표 소싱 상품으로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중국 사이트에 올라온 옷을 한국 사이트에 올려 판매하는 행위였다. 중국에 가본 적도 없고 당연히 중국에서 직구로 뭘 사본 적도 없고 더더욱 당연히 중국어 한 마디도 못하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일단 된다고 하니까 믿고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매출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무조건 상품을 많이 판매하는 것이었다. 일단 쇼핑몰에 상품을 많이 올려서 뭐라도 하나 걸려라 하는 방식. 올 가을 유행할 아이템을 미리 선점해 독점 계약을 체결해서 고가에 판매하는 전략도 있을 것이고, 상품 페이지를 정성스럽게 작성해서 클릭한 모든 사람이 내 상품을 사도록 만드는 전략도 있을 것이고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인데, 내가 따라한 방법은 다 필요 없고 무조건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만물상 같은 느낌. 상품이 100개 있는 가게와 10,000개 있는 가게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팔 가능성이 높을까 뭐 그런 논리였다. 어차피 나는 한 계절 앞선 유행템을 선점할 선견지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사업수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인터넷 쇼핑몰계의 생리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기에 일단 닥치고 상품을 업로드하면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 조금 단순하고 무식해 보이는 구조로 가기로 했다.



일단 사업자등록 신청을 했다. 남들은 반나절이면 나온다는데 왜 때문인지 나는 이틀반이나 걸려서 나왔다. 세무서에서 전화 한 통 안 왔던 걸 보면 딱히 결격사유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늦게 나왔다. 



그러고 나서 네이버스마트스토어를 열었다. 이건 진짜 좀 쉬웠다. 클릭 몇 번이면 쇼핑몰 하나가 뚝딱. 역시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런 다음에 통신판매업 신고... 음 사업자등록증도 나왔는데 뭘 또 신고해야 되네? 온라인상에서 판매활동을 하려면 해야 된다고 한다. 이것도 처리기한이 3일이었는데 이상하게 3일이 지나도 안 나오길래 구청에 전화를 해봤다.


"안녕하세요. 제가 민원24로 통신판매업 신청을 했는데요. 처리 중 문서에도 안 뜨고 해서... 혹시 처리 완료됐나요?"

"아 제가 여기 부임한지 얼마 안돼서 인수인계받는 중이라 너무 바쁘거든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까진 처리해드리겠습니다. "

"음. 내일 토요일인데요?"

"아 저는 내일 무조건 나올 거라서요... 내일 꼭 해드리겠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공무원도 힘들다.... 결국 월요일에 처리 완료 문자가 와서 구청에 찾으러 갔다. 가보니 웬 대학생 같은 소년이 통신판매업신고증을 찾아서 주더라. 짠... 나는 비록 지금은 직장인이지만 꼭 사업으로 성공하리라.



그다음부터는 쿠팡, 옥션, 지마켓, 11번가, 롯데온 등등 여러 쇼핑몰에 입점 신청을 했다. 대부분이 신청서에 항목을 입력하고 구비서류와 함께 신청 버튼만 눌러놓으면 담당자 검토 후에 승인 완료되는 구조라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띠링~ 처리가 완료되었습니다 하는 문자가 도착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모든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될 리가 없지. 이상하게 옥션은 승인이 안됐다. 아이들과 자가격리하던 시기였어서 애들 만화 보는 시간에 잠깐 짬 내서 일처리 하는 건데 문제가 생기니 짜증이 확 났다. 다른 애들은 다 잘 되는데 얘만 안돼서 네이버와 유튜브를 뒤지고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고객센터에 전화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쌓였다. 요새 옥션 누가 쓰기는 하나 그냥 제낄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처음 한번 길을 터놓으면 파이프라인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니 귀찮더라도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싶었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처리해달라고 했더니 반나절만에 승인 완료됐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그다음으로 배송대행지를 뚫고 대표적인 소싱처 타오바오 계정을 만들었다. 타오바오는 중국 인터넷 쇼핑몰인데 우리나라의 쿠팡, 옥션, 11번가 같은 것이었다. 내가 들었던 강의는 수많은 해외구매대행 상품 중에서 중국 의류를 메인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냥 일단 따라 했다. 어차피 다른 나라 구매대행에 익숙한 것도 아니었기에.



안녕 타오바오



타오바오 계정 만드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일단 아이디 패스워드 개념이 우리와 달랐다. 우리나라는 원하는 아이디를 입력해서 중복 체크하고 넘어가는 구조인데 중국은 전화번호 인증을 마치면 그냥 자기네가 생성한 코드로 아이디를 부여한다. 역시 공산당... 고민할거리 줄여줘서 고맙긴 했다. 그래서 아이디를 절대 외울 수 없다. tb123456789012 이런 식인데 어떻게 외우겠어. 



타오바오 사이트에 친숙해져야 했다. 인터페이스는 어느 나라 쇼핑몰이나 다 비슷하니 금방 적응할 것 같았다. 중국어를 한 글자도 모르는 나도 크롬 구글 번역의 도움을 받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타오바오는 접근 자체가 잘 안됐다. 신나게 서핑을 하다가 갑자기 접속이 안 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프록시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페이지에 연결할 수가 없다는.... 아까도 썼지만 이때 자가격리 때문에 스트레스 지수가 한껏 높아진 상태였어서 뭔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짜증이 치솟았다. 멀쩡한 사이트가 갑자기 접속이 안된다니. 구글링으로 찾아보니 중국 쇼핑몰은 해외 접속을 차단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나 참 물건 팔아준다는데도 별 꼴일세...라고 생각하며 vpn 우회 방법을 찾았다. 분명 스스로 계속 디지털 문맹이라고 했는데 vpn 우회 사이트도 쓰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람이 난관에 봉착하면 다 풀어갈 길을 찾는 법. 다행히 크롬 확장 프로그램 중에 쉽게 vpn 우회해주는 기능이 있어서 이걸 이용했다. 중국으로 갔다가 홍콩도 갔다가 다 막히면 미국도 갔다가 세계 여러 나라로 vpn을 우회해서 타오바오에 접속했다. 그런데도 접속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러면 그냥 오늘은 쉬라는 신의 계시인가 보다 하고 쉬었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얻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으니 그 과정에서도 스트레스는 최소화해야지.라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나는 지금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다. 스트레스 없다. 이거 스트레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다음으로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깔았다. 이 사업의 방식은 무조건 개수를 늘려 판매량을 늘리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상품 개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솔루션은 바로 반자동 프로그램. 타오바오 사이트의 상품페이지를 긁어다가 한국 쇼핑몰 사이트에 자동으로 올려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을 깔기 전 뭐라도 하나 한번 올려볼까 싶어서 스마트스토어의 상품 업로드 페이지를 한 번 열어봤는데 하도 입력해야 하는 값이 많아서 하나하나 넣다보면 한시간은 훌쩍 지날 것 같았다. 이렇게 수작업으로 하다보면 상품 1,000개 올리는데 1,000시간이 걸릴테지. 그렇다면 24시간 풀로 돌려도 41.666일이 걸린다니... 얼른 깔아야겠다 반자동프로그램 얍.



반자동프로그램은 인터페이스가 그닥 세련되거나 이용하기에 편리하진 않았다. 뭔가 되게 어설픈데... 어쨌든 이 방식으로 하면 된다니까 한번 믿고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자동화라고는 하지만 완벽하게 내 입맛에 맞게 변환을 시킬 수는 없으므로 제목이나 상품명, 페이지 편집 등 약간의 수정 작업이 필요했다. 중국어를 번역하다 보니 웃긴 번역체가 많이 나왔다. 




유명인 튀긴 거리에서 파는 "서양식 패션 전문 약간 향기로운 연령 감소 바지" 나도 사고 싶다....





타오바오 사이트에서 원하는 페이지를 복사해다가 반자동 프로그램으로 끌어와봤다. 번역체로 들어온 상품명과 옵션명을 수정하고 상세페이지를 편집한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국 쇼핑몰 사이트에 업로드하기 위한 "전체 마켓 내보내기" 버튼을 눌러보았다.






Aㅏ..........

그냥 내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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