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차, 시동이 걸리긴 하는 걸까
패기 넘치게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사업자등록증도 나왔고 온라인 마켓 입점도 끝냈고 통신판매업 신고까지 마쳤다. 이제 상품을 소싱하고 업로드해서 팔기만 하면 되는데 도통 이게 안 됐다. 면허도 따고 차도 샀는데 이거 시동이 안 걸린다. 분명히 강의해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뭐가 문제인 건지 에러가 너무 많았다. 강의 참가자들의 이런 문제들을 예견한 걸까, 강사님께서 긴급 줌미팅을 제안했다. 수강생 각자가 겪고 있는 애로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이었다. 약 2시간가량 진행된 줌미팅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겪고 있는 프로그램 상의 에러는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 진짜 내가 1부터 10까지 다시 다 뜯어보면서 오류를 찾아내야 한다니. 아득했다.
공학도라면 1학년 때 기초과목으로 "C언어"를 배운다.(2000년대 학번 때는 다 배웠는데 요새는 모르겠다) 프로그래밍의 기초 of 기초를 배우는 과목이었다. 그냥 무심코 C언어, C언어 할 때는 몰랐는데 수업 중반을 넘어가면서 왜 이 과목이 C"언어"인지 알 수 있었다. 꼭 새로운 외국어 문법을 배우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디지털 세계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명령어를 배열하는 작업이었다. 최초의 어떤 값을 정의하고, 그 값의 성질에 대해 나열하고, 로직을 만들어 갔다. 간단한 계산기부터 테트리스, 그리고 더 복잡한 응용프로그램이나 게임들까지 모두 기본은 같다(고 한다). 프로그래밍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함수는 함수인데 에러가 나오면 안 되는 함수. 그래서 개발자의 최대 목표는 에러를 줄이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고 하더라. 이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확신을 못하겠다).
아니 근데 나는 개발자도 아니고, 개발자가 만들어놓은 프로그램을 써서 결과값만 도출해내면 되는데 왜 이렇게 오류가 많은 것일까. 다들 잘하는데 나만 안 되는 것 같아서 왠지 울적했다. 이 차 시동이 걸리긴 하는 건가. 아니 혹시 이건 자동차가 아니고 경운기라서 시동 걸리는데 오래 걸리는 건가. 그렇지만 이미 사업자까지 냈는데 도중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자가격리 중 어렵사리 짬을 내 반자동프로그램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그리고 오류의 대부분은 반나절도 안돼서 다 해결됐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었잖아?
지난번 옥션 가입 승인 안될 때도 그렇고 반자동프로그램 오류 날 때도 그렇고 문제가 생겼을 때 스트레스는 엄청나게 받았지만 생각보다 그것들이 잘 해결됐다. 내가 걸어온 길을 잘 추적하다 보면 스스로 오류를 발견하기도 하고, 정 못 찾겠을 땐 고객센터나 검색 툴의 힘을 빌리면 쉽게 해결이 됐다. 문제에 부딪쳤을 때 받는 스트레스는 태산만 하지만 그걸 넘는 수고로움 그에 상당히 못 미쳤다.
앞서 말했던 "C언어" 과목을 한 학기 동안 잘 따라가면 간단한 테트리스 같은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 계속 디지털 문맹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 어릴 적엔 테트리스도 만들고 그랬었다.... 그렇다.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운 걸 배우고 싶지 않아서 디지털 문맹이라고 규정했던 것이다. 새로운 걸 배우는 일은 언제나 귀찮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하면 그냥 그 안에서만 살뿐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다.
스스로 새장 문을 닫고 들어가 갇혀있는 새가 있을까. 전 세계 모든 종을 통틀어 가장 고등의 사고가 가능한 인간만이 자기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하고 그 안에 갇히려는 습성이 있는 듯하다. 나의 모습도 그러했고, 또 주변에서 자기 상황이 더 이상 좋아질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 상황을 벗어나 보려고 새로운 시작을 하긴 했는데 내 몸과 마음 깊숙이 박힌 생활방식은 쉽사리 고쳐지지가 않았다.
앞으로 또 어떤 문제가 닥쳐올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그 문제를 다뤄야 할지 조금 알 것 같다. 솔직히 명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뭐랄까, 대충 감이 온다. 이렇게 감을 키워가다 보면 세상에 직면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