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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Oct 17. 2021

띠링 들어왔다 첫 주문

포기하지 않길 잘했어



처음엔 반자동 프로그램인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상품 업로드를 열심히 해놓고 확인해보면 상품 사진과 설명 순서가 엉망진창이라 다 삭제하는 일을 반복했다. 분명 테스트까지 하고 올렸는데 영문을 모르겠더라. 한 번에 5개씩, 10개씩 작업을 하는데 구동 버튼을 누르기가 겁이 났다. 아 이번에도 망이면 어쩌지. 제발 다 삭제만 면하게 해 주세요.



다행히도 이런 세월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한 3일 정도 지나자 치명적인 오류 없이 상품 등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잘한 오류들이 종종 생겨났지만 이 정도쯤이야 조금 번거로울 뿐이지 대세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니 봐줄 만했다.



첫날 상품을 50개 업로드했다. 두 번째 날도, 세 번째 날도. 그리고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된 내 쇼핑몰에서 누가 물건을 살리는 당연히 없겠지만 그럼에도 매일 판매자 페이지에 로그인 해 혹시 주문이 들어왔나 안 들어왔나를 살폈다. 



그렇게 5일째, 드디어 들어왔다. 첫 주문.



롯데가 이런 걸 참 잘해



위 사진은 롯데온이지만 사실 진짜 첫 주문은 옥션에서 들어왔다. 사실 은근하게 이런 축하 안내멘트 같은걸 기다렸는데 옥션은 그냥 어느 날 판매자 페이지 메인에 신규 주문 "0건"에서 "1건"으로 바뀌어있고 끝이었다. 무미건조한 녀석.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사실 옥션은 판매자 가입할 때부터 이유 없이 승인이 안 나던 쇼핑몰이라 포기하고 갈까 생각도 했었다. 그때 만약 옥션을 포기했더라면 첫 주문을 위한 기다림은 조금 더 지루했겠지. 조금 귀찮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가길 잘했다 싶었다.



상품 업로드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이런 걸 살까 안 살까, 안 살 것 같은데 이런 건 스킵할까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초반에 의류를 위주로 했었기 때문에 내 취향에 안 맞는 것들은 도대체 이런 걸 누가 사기는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딱 그런 옷이 첫 주문으로 들어왔다.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취향도 가지각색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주문처리를 하려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상품을 확인하고, 주문자 정보를 확인하고, 해외 사이트에 주문을 넣고, 배송 접수를 한다. 강의 때 다 배운 건데 이거 하려면 뭐가 안돼서 앞으로 되돌아오고 또 저거 하려면 뭐가 없어서 못하고. 일이 잘 진행이 안되니 평소 같으면 짜증이 확 났을 텐데 첫 주문이니만큼 기분 좋게 이런 실수도 즐겼다. 



주문자님은 강원도에 살고 계셨다. 이 주문이 없었더라면 여기가 어딘지 한 번도 인지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을, 나에게는 정말 연고 하나, 관심 하나 없던 곳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직접 중국에 가서 물건을 떼다가 강원도 자택까지 배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고객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중국 현지에 주문을 넣고 나니 또 걱정이 들었다. 배송이 빨리 되야 할텐데. 하자 없는 상품이 와야 할텐데. 중국은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판매자들도 각양각색이라 불꽃 열정을 불사르며 일요일에도 고객응대는 물론 배송까지 처리하는 판매자가 있는 반면, 결제한 뒤 30일이 지나도 배송을 시작하지 않는 만만디 판매자도 있다고 했다. 심지어는 품절된 상품인데도 가짜 송장 번호를 입력해 택배를 발송한 척 하고 택배기사가 분실했다며 변명을 하는 악질 판매자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변명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실제로 택배기사가 분실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다행히도 내 첫 상품은 중국 현지에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송이 시작되었고 무사히 배송대행지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배송비를 결제하니 바로 한국까지 날아왔고, 고객님이 기다리고 계신 강원도까지 약 일주일만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 일주일동안 나는 이 150g짜리 택배의 위치를 약 100번 정도 확인한 것 같다. 상품이 배달완료 되었다는 멘트를 확인하니 긴장이 풀어졌다.



자 그렇다면 첫 주문 수익은 어떻게 될까.


1. 판매가 17,730원 


2. 원가 15,282원

 1) 상품할인+마켓수수료 812원 

 2) 상품 금액 7,379원

 3) 배송비 7,091원


1에서 2의 합을 빼고 부가세까지 제외하고 나니 순수익은 2,173원이었다.



설렘에 비해 수익은 너무 보잘것없었다. 이런 물건을 10개를 팔아야 하루에 겨우 2만 원을 벌 수가 있는 거였구나. 문득 휴직 전, 하루 일당이 20만 원이 넘어갔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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