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경작인 Oct 21. 2021

띠링 들어왔다 두 번째 주문

혹시 나는 봉이 김선달의 후예일까



첫 주문이 들어오고 나서 설레었던 것도 잠시, 다음날부터 주문은 뚝 끊겼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켓을 열자마자 5일 만에 첫 주문이 들어왔던 거라, 오히려 첫 번째 주문이 좀 이상하게 일찍 들어왔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엔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첫 번째 주문을 시작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주문도 쭉쭉 들어와야 할 것 같은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새 주문이 들어오지 않으니 왠지 불안해졌다. 혹시 내가 실수로 쇼핑몰에 올라간 상품을 다 내린 건 아닐까. 아님 혹시 첫 주문 고객님이 상품을 기다리다 못 참아서 오픈마켓에 컴플레인을 한 것일까. 별별 생각을 다 하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확인까지 해보고 다녔다.



그러기를 나흘 째, 드디어 들어왔다. 두 번째 주문.



이번에는 조금 특이하게 임산부 원피스였다. 사실 임산부 원피스는 수요층이 정해져 있는 상품이라 많이 팔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의류 쇼핑몰을 열기로 했을 때 처음으로 생각했던 아이템은 임부복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임산부였던 시절,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임부복의 종류가 너무 한정적이라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옷 사기를 포기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사이트에는 확실히 임부복도 종류가 많았다. 상품 업로드를 하면서 일반 여성의류를 올리다가 지루한 날은 임부복도 올리곤 했었는데 마침 두 번째 주문은 임산부 원피스가 들어왔다. 역시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Photo by Camylla Battani on Unsplash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주문자 정보를 확인하고 중국 현지 주문을 넣으려고 하는데, 흠 이거 뭔가 이상했다. 내 쇼핑몰에 올려놓은 판매가가 68,000원인데 중국 사이트 상품 금액은 1만 원대였다. 상품을 가져올 때 대략 마진율을 2~30% 수준으로 맞추기 때문에 이렇게 가격 차이가 심하게 날 리가 없는데 이상했다. 혹시 내가 업로드를 하면서 실수한 건가? 그런데 그날 올렸던 다른 상품들도 똑같았다. 내가 한국 쇼핑몰에 올린 가격은 대개 6~7만 원 대인데 중국 판매자가 파는 상품은 거의 1만 원 대였다. 이 날 내가 미쳐서 마진율을 대폭 올렸던 건가? 그럴리는 전혀 없었다. 반자동 프로그램의 설정을 바꾸면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마진율을 수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세히 뜯어보니 중국인 판매자가 최초에 올려놓은 상품 금액은 5만 원 대였다. 그런데 거기에 80% 수준의 할인이 들어가 갑자기 상품 가격이 1만 원 대로 내려온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 아마도 중국 판매자가 생각한 이 옷의 원래 가격은 1만 원 대였을 것이다. 100일 동안 판매한다고 한다면 최초에 한 3일만 정가에 팔고 나머지 97일 동안은 할인해서 파는 그런 옷인데 그걸 내가 초창기 가격으로 가져오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또 그걸 한국에 계신 어떤 고객님이 덥썩 물고 사셨네. 이 옷의 현지가가 1만 원 대라는 사실을 알면 이 고객님이 대노하실 것 같은데 그렇다고 연락해서 주문을 취소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일생에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인데 주문 두 번째만에 일어났다.



정말 우연하게 일어난 이 해프닝 덕분에 두 번째 주문의 마진율은 약 60%에 달했다. 갑자기 봉이 김선달이 된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이렇게만 마진율이 나온다면 하루에 1개만 팔아도 순수익이 100만 원을 넘게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돈 버는 게 참 쉬워 보였다.



 

Photo by Alexander Mils on Unsplash




물론 그날 이후로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이 주문 건이 무사히 고객님의 품 안에 도착해서 마켓으로부터 정산을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고 있다. 초보 셀러가 마진율 60% 짜리 판매를 하다니 허 참.



그리고 두 번째 주문 이후에는 첫 번째 주문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됐다. 그러고 3일 있다 주문이 한 번 들어오고 감격하고 또 한 4일 있다 한 번 들어오고 뭐 그랬다. 도대체 언제쯤 매일매일 주문이 들어와서 주문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으려나.



주문을 기다리는 건 지루했지만 지루할수록 상품 업로드에 박차를 가했다. 구매대행 강사님은 슬럼프에 빠지게 될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상품등록을 해야 빠져나올 수 있다고 했다. 닥치고 등록. 닥등. 닥등. 나는 기계다. 나는 기계다.



상품을 업로드할 때도 최대한 내 주관을 배제하고 올리려고 노력했다. 세상에 이런 걸 누가 입나? 싶은 것들도 누군가는 입고 주문하므로.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지 않았나. 물론 사람들이 많이 좋아할 스타일을 잘, 아주 잘 공략하면 좋겠지만 그런 건 한국 쇼핑몰에도 워낙 많고 경쟁이 세니… 사실 어떤 게 주문이 들어올지 몰랐다. 정말 이렇게 닥치는 대로 상품을 소싱하는 게 맞나 싶어서 유튜브도 찾아봤는데 많은 수의 구매대행 업자들이 비슷한 패턴으로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다. 내 고정관념과 너무 다른 방식이었다. 세상에 돈 버는 방법이 정말 가지가지다 싶었다.



한 번 높은 마진율로 판매를 해보니 박리다매에서 벗어나 마진율을 높여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2만 원짜리 블라우스나 2만 2천 원짜리 블라우스나 사실 가격 측면에서는 그게 그거 아닌가. 2천 원 싸니까 사고 2천 원 비싸다고 안 사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상품의 가격 한계선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마트에서 자주 쓰는 900원 전략을 써볼까. 22,900원이면 좀 싸게 느껴질까?



혹시 내가 선택한 옷들이 너무 구려서 안 팔리는 건 아닐까 싶어 소싱처를 바꿔보기도 했다. 아니면 혹시 옷이 우리나라 사람들 취향에 안 맞아서 잘 안 팔리는 건 아닐까 싶어 가방도 해보고 다른 상품들도 한번 올려봤다. 그렇다고 주문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기운 빠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Photo by Magnet.me on Unsplash




어떤 일이든 처음 시작하게 되면 항상 지루하게 내공을 축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금을 캐려고 산을 뚫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뚫어야 금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딱 5cm만 더 파면되는데 그걸 모르고 포기해버리면 그 사람은 그냥 공치는 것이다. 그동안 수백 미터 땅을 파서 들어간 것은 헛된 수고로 돌아가고 만다.



내가 새로운 일을 도전하면서 구매대행을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저 내공을 축적하는 시간이 비교적 짧(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웃풋이 나오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하기가 두려웠다. 갖은 노력을 다 쏟았는데 오메 이 길이 아니었나벼 할까 봐. 이미 인생을 살아오면서 적당한 노력 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엄청난 노력을 하면 성공하지 못할 일이 없겠지만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 건 또 쉬운 일인가. 



그렇지만 역시 하루 2시간이라는 적은 시간을 들여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키는 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이건 무리인가 싶은 생각부터 들다니, 역시 이건 무리인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띠링 들어왔다 첫 주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