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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작인 Apr 13. 2022

심심하다 심심해


휴직한 지 어느덧 6개월 차에 접어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나갔다 온 뒤 씻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들어왔다. 동네에 친구도 별로 없어서 벤치에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 일도 없는 나의 등원 루틴. 가족이 아닌 18세 이상 성인과 대화를 3마디 이상 나눠본 게 언제였나 싶다. 집에 들어오면 급하게 나가느라 미처 제자리를 찾지 못한 잠옷 가지들과 장난감을 정리한 뒤 식탁에 앉아 pc를 켠다. 부팅이 되는 사이 물을 끓이고 드립 세트를 꺼내 커피를 내리고 향이 온 집안을 지배할 때쯤 되면 다 내려진 커피를 한 모금 음미한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으니 구매대행 일과를 시작한다. 밤사이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고 현지 사이트에 주문을 넣고 배송 현황 확인해서 고객들에게 알림을 보내는 등의 작업들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alt+tab을 하도 눌러대서 잘 쓰지 않는 이 키들이 키보드에서 제일 먼저 이탈할까 걱정이 될 정도다. 오늘은 컴플레인이 하나 들어왔다. 일단,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답변을 적는다. 대부분 배송지연에 의한 것들이다. 내가 내 물건을 파는 게 아니고 심지어 그게 우리나라에 있는 것들도 아니다 보니 내 의지와는 다르게 배송이 늦는 경우가 있다. 판매자가 배송일을 차일피일 미루거나 엉뚱한 물건들을 보내는 경우도 있는데 처음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젠 그냥 다음엔 여기서 사지 말아야지 하고 만다. 운이 나쁘면 주문이 취소되기도 하는데 그럴 땐 그냥 나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려니 한다. 



Photo by Jared Rice on Unsplash



 외부 자극이 거의 없는 일과, 간혹 있어도 그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받지 않는 평온한 삶. 그런 평온한 삶이 완성되었다.



 회사를 다닐 땐 끊임없이 누가 나에게 일을 주고, 진행상황을 체크했으며, 지원부서는 항상 비협조적이었다.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 일이 주어진 순간 최선을 다해 쳐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매 순간순간 바빴고 긴장상태였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가 감정 기복도 심했다. 



Photo by Luis Villasmil on Unsplash



 혼자 일하게 되니 누가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어디까지 완료했는지 체크하는 사람도 없었다. 고객과의 약속이라는 거대한 골이 있긴 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해내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큰 틀에서 멀쩡한 물건이 약속된 시간에 정확하게 고객의 품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회사를 다닐 때의 업무 방식, 그러니까 경쟁적으로 일을 한다든가 누군가와 갈등 상황을 빚어내면서 임무를 완수해낸다든가 하는 것들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내가 그 일에 맞지 않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 정도의 스트레스는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걸 견디면서 스스로 해냈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회사원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굳이 꼽자면 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런 환경 없는 업무 루틴을 만들어내니 약간 허탈하기도 하고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심했다. 

나는 크게 남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E는 E였다.



평온한 일상 그 안에는 친구도 동료도 상사도 후배도 없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가깝지 않은 거리에 살았고 대학 이후 친구들은 대부분 업무와 관련 있는 경우가 많아 일 얘기 말고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최근에는 남편이 일찍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 편이었지만 성인과의 대화를 하루 종일 기다린 나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너무 지친 남편이었다.



휴직 초기에는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느라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없어도 갈증을 못 느꼈는데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고 나니 너무 심심해졌다. 그렇다면 또 다른 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걸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걸까? 구매대행 사업을 좀 더 확장해봐야 할까? 사실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 것 같았는데 막상 지금 생활 루틴에서는 더 일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사업을 더더더 크게 해 보려고 욕심내는 건 삶의 방식을 바꿔보겠다고 한 나의 결심에서 결국 멀어지는 것이었다. 



사람은 갖지 못한 것에 더 욕심을 낸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었다. 여유 있는 삶,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삶을 원해서 그렇게 왔더니 이제는 경쟁적인 삶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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