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서야 달리기 시작했을까
약 1년 전 우연한 기회에 달리기를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하게 된 건 반년 정도 됐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이 운동이 지금은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이쯤 되면 권태가 올 수도 있는데 아직까지 신나게 달리고 있는 걸 보면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도 정말 흠뻑 빠졌나 보다 싶다.
달리기를 하고 난 후 내 삶은 정말 많이 변화했다.
일단 가장 다이내믹한 변화는 자세가 좋아졌다는 점이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자세가 펴지게 되었다. 사무직 직장인 특유의 구부정한 자세가 내 디폴트 값이었는데 허리도 어깨도 모두 조금씩 펴졌다. 당연히 허리도 덜 아프게 됐다. 디스크를 완벽하게 극복한 상태는 아니지만 어쨌든 일상생활할 때만큼은 허리 통증을 못 느끼고 산다. 어쩌다가 유리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될 때면 흠칫 놀라게 된다. 저렇게 반듯하게 펴진 사람이 나라니.
생활에 활력도 생겼다. 운동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엔돌핀이 돌아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예전에는 '운동=피곤' 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을 틈이 없었다. 실제로도 꽤 꾸준히 운동을 하던 시절에도 나는 항상 피곤해했었던 것 같다. 출산 후 체력을 기른다고 필라테스를 10개월 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무리한 운동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힘들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꽉 찰 수밖에.
내가 운동에 대해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계기 중의 하나는 출산 직후 필라테스의 기억 때문도 있지만, 이진송 작가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라는 책을 접하면서 이기도 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오늘은 꼭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몸을 일으켜 나가기가 참 힘든, 바로 그 운동에 대해서 쓴 에세이다.
저자가 이런 운동 저런 운동을 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서는 많은 공감도 했고(예를 들면 필라테스에서 갈비를 열라는 말을 따라 하지 못해서 열려라 갈비!!라고 주문을 외친다든가) 운동에 대해서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는 기회도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규 교육과정 동안 체육과목이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등한시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운동과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지 않나. 특히 여성들은 더더욱. 그래서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운동을 시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시작한 운동은 목적이 그러하다 보니 본인의 몸 상태나 흥미와 관계없이 그때그때 유행하는 운동을 무리해서 하게 되는데 결국 이런 점들이 운동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야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고 그래야 진짜 운동으로 인한 보상을 받게 될 수 있는데 말이다. 내가 해보니까 정말 그렇다.
운동을 생활화하게 되니 자신감도 생겼다. 아무리 즐겁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캄캄하고 추운 새벽에 이불을 박차고 나가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데, 그러다 보니 매번 새벽 운동을 하고 돌아올 때마다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있었다. 역시 나는 오늘도 해낼 줄 알았어. 특히나 달리기를 하다가 눈이나 비가 내려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온 날은 왠지 더 뿌듯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내가 운동을 마쳤구나. 다치지 않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구나. 자세가 펴지는 것도 진짜 물리적으로 펴진 결과도 있었겠지만 자신감이 생겨서 더 펴진 것일 수도 있다.
또 런데이 30분 달리기 프로젝트를 할 때는 런데이 가이드가 보내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듣고 위로를 많이 받기도 했다. 런데이 가이드는 달리기를 하는 동안 계속 달리기와 관련된 설명을 해주거나 힘을 내라고 응원을 해주는데 굉장히 직설적인(?) 응원 멘트가 대부분이라서 처음에는 좀 낯간지럽고 적응이 안 됐다. 그런데 이것도 자꾸 듣다 보니 정말로 힘이 났다.
- 지금 이 순간 달리고 있는 당신의 모습 정말 멋지지 않나요
- 앞으로 변화할 내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 대단합니다 오늘의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 욕심내지 말고 지금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즐기세요
사실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별거 아닌 말(?)이라서, 그래서 더 잘 안 하는 말들이다. 이 말들이 처음엔 어색하고 약간 거부감까지 들었었는데 점점 편안해진 이유는 그동안 내가 응원을 받고 싶었구나 칭찬을 받고 싶었구나 하는 걸 깨달아서였던 것 같다. 칭찬을 받으니까 좋다, 누가 나를 지지해주니까 좋다 이걸 인정하는데도 참 오래 걸렸다.
달리기가 익숙해지자 점점 식단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렇게 어렵게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고 왔는데 아무거나 먹어서 몸을 망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운동 그 자체보다 운동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게 더 어렵다) 지극히 탄수화물 위주이던 식습관에서 단백질과 무기질의 양을 늘려 밸런스를 맞췄다. 수년 전 이미 저탄고지 식단을 체험해본 경험이 있었던 터라 식습관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일부러 저탄고지 식단을 고집하려고 한다기보다는 일반식을 먹되 매 끼마다 반찬으로 샐러드를 준비하고 탄수화물은 한 숟가락씩 줄이는 방식으로 먹었다. 샐러드도 한 접시 아니라 한 바구니씩 먹으면 배가 부르다. 다이어트하는 것도 아니니까 소고기나 닭고기도 구워서 샐러드에 올려 먹고 드레싱도 팍팍 뿌려서 먹었다. 그래야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탄수화물도 밥, 빵, 면 같은 정제탄수화물보다는 고구마, 감자 같은 것들을 먹었다. 그러면 왠지 밥 먹으면서 간식도 먹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팍 허기가 지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은 또 삼겹살이나 닭다리살을 4~500그램씩 구워 마음껏 먹었다. (고깃집 1인분이 180그램 정도 되는 걸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게 먹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살이 빠졌다. 식단에 신경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 1달에 1킬로그램씩 빠져서 여태까지 약 4킬로그램이 빠졌다. 사실 근육량이 는 것까지 감안하면 체지방량은 그보다 더 많이 줄었을 것이다. 3월 들어서는 첫째의 초등 입학으로 매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느라 계속해서 식단 일탈(?)을 하고 있는데도 몸무게나 체지방량은 유지되고 있는 걸 보니 그동안 건강하게 먹은 효과가 축적된 것 같다. 두 번의 출산과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등 여러 이유로 점점 살이 찌고만 있었는데 처음으로 살이 빠진 것이다. 심지어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닌데. 몸무게가 줄고 몸에 근육이 붙으니 체형도 많이 변해서 이제 뭘 입어도 예전보다 더 스타일리시한 느낌이 든다. 단점이 있다면 새로 옷을 사느라 돈이 좀 든다는 것인데 이 정도쯤이야 흔쾌히 지출할 수 있다. 사실 갑자기 디스크가 발병한 것도 어쩌면 살이 찌면서 허리가 못 버티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었는데 다행히 디스크 전의 몸무게로 돌아와서 이제 그 걱정은 좀 덜게 되었다.
한편 운동을 시작한 후 생긴 단점도 있었다. 바로 내 시간이 부족해진다는 점이다. 달리기를 러닝머신에서 하지 않고 야외 코스를 다녀오게 되면 50~6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 후에 무산소 운동과 스트레칭 30분 정도 추가하고 필라테스 같은 홈트 영상 30분 추가하게 되면 하루에 운동에 쏟는 시간만 2시간이다. 거기다가 씻고 빨래 정리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2시간 반 정도. 하루에 내 시간이 4~5시간 밖에 없는 나로서는 사실 좀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나의 요새 이상적인 운동 루틴은 달리기 40분, 무산소 25분, 스트레칭 5분 정도로 해서 70분 내에 끝내는 것이다. 운동복 빨래도 예전에는 기능성 섬유라 손빨래해야 된다고 해서 진짜로 손빨래를 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세탁기에 돌린다. 운동복을 새로 사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보다 내 시간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휴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운동이 내 생활 루틴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직장 다니면서 운동 잘 챙겨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일상 범주 안에 들어오는 활동은 아니었다. 직장생활, 육아, 투자, 독서, 공부 이런 것들에 밀려서. 문득 회사로 복귀하면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