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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Nov 25. 2022

내향형 인간이 일터에서 살아남는 법

나가면 기 빨려요

내향형? 외향형?

내향형이다≠내성적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내향형인 것과 내성적인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내향형이라고 모두가 소심하지는 않다. 내향형도 쾌활하고 활기찰 수 있다. 내향형도 낯 가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엄청난 내향형이지만 낯도 잘 가리지 않고 밝고 활기차다. 그래서 종종 주변인들은 내가 내향형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소심하고 낯가리고 조용한 사람을 내향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내향과 외향은 에너지를 어디에서 얻느냐의 차이이다.

내향형은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외향형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보면 된다.

그 둘은 단지 그 차이일 뿐이지 외적으로 보이는 성격의 차이가 아니다.


집순이, 집돌이 중에는 내향형이 많다. 이들은 집에 나오는 순간부터 기가 쭉쭉 빨린다. 회사를 5일을 가면 5일 모두를 외출한다고 본다. 나는 외향인은 아니라 모르겠지만, 외향인들은 회사에 가는 건 외출로 안 본다고 한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강아지 산책,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것조차 외출로 보는데 말이다.

이렇게 나가기만 하면 기가 빨리는 나 같은 극 내향형은 출근이 힘들다. 주 5일 풀로 약속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더군다나 나는야 어린이집 교사.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는 내향형인데, 한시도 사람에게 눈을 뗼 수 없고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만 하는 그런 일을 한다. 아이들은 말을 한 번해서는 잘 듣지 않는다. 또 아이들은 주의집중력이 낮아서 말하다 보면 점점 언성이 높아진다.

일주일에 약속을 겨우 한 두 개 잡는 내게 이 일은 나의 에너지 전부를 소모시킨다. 집에 오면 말 그대로 k.o. 뻗어있는다. 평소엔 자고 싶어도 잠이 안 와서 못 자는데 일하고 오면 눈꺼풀이 무겁다. 잠시 소파에 누우면 깜빡 잠이 들어버리는 게 일상이다.


"나는 정말.. 혼자 일하고 싶어..."


좀 지친 것 같다. 하루의 6분의 1만 일하는데, 그 시간에 내 에너지를 거의 다 소모하는데 이게 맞는 걸까 의구심이 든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퇴근하면 지쳐 잠드는 삶. 그것도 남들 일하는 시간의 절반만 일하는데 이 정도라면 8시간, 9시간 일하면 어떨지 상상도 안 간다.

그냥 어떤 일이든 상관없이 혼자서 일하고 싶다.  혼자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계약기간까지는 여기서 일해야 한다. 책임감이 뭐라고. 내 에너지 전부를 쓰면서도 끝까지 어떻게든 해내려고 버틴다. 적어도 약속한 기한까지는 일해야 한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 포기할 면목도 없고 포기한다고 뭐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끝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버틸 수 있다.


"선생님들하고 친해지고는 싶은데.. 속으론 말 안 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웃기지."

일하면서 내 속마음은 '말 걸지 마라'가 주를 이루었다. 선생님들 모두 좋은 분들이다. 모두 친해지고 싶고 존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것은 나를 지키는 일이었다. 아이들과 하는 상호작용만으로도 기가 빨리기 때문에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말을 아끼게 되었다. 그 결과 선생님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역설적으로 말은 걸지 않아주셨으면 하고 바랐다.

 

"일하면서 에너지를 다 쓰니까 말을 아끼게 되더라. 정말 필요할 때 빼고 선생님들하고 말을 잘 안 해."

평소에 말 없는 편이 절대 아닌데 말이다. 리더 자리에서 지휘하고 주도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또 한 번 말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끊이질 않게 대화하는 사람인데. 일터에서의 나는 매우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러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일터에서의 나와 평소 내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아마 선생님들이 날 밖에서 본다면 깜짝 놀라겠지.

'00 선생님 이렇게 잘 웃고 말도 잘하는 사람이었어?' 하며 놀라겠지.


놀라도 어쩔 수 없다. 극 내향인인 내가 일터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퇴근 후 매일 잠만 자다가 하루가 끝날 것이다. 이렇게라도 조금씩 에너지를 모아야지 뭐라도 할 수 있다. 일로 인해서 나의 생활 전부가 흔들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일 외에도 나의 생활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말을 아끼다 보니 가끔은 작은 오해도 발생한다.

A 선생님이 시킨 대로 일하고 있을 때 B 선생님이 지나가다 한 마디 하시기도 한다.

"이거 왜 이렇게 해요? 이거 이렇게 하는 건데?"

거기서 'A 선생님이 이렇게 하래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큰일이 아니라면 굳이 말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눈치껏 처리한다. 보통은 더 높은 권위를 갖는 주임 선생님이나 원장 선생님 말을 따라서 처리한다. 주절주절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것조차 피곤하다. 그냥 오해하면 오해하시는 대로 내버려 둔다. 오해해서 큰 일어나는 게 아닌 이상 그냥 둔다.


또 사소한 오해들을 종종 받는다.

가령 아이들 간식으로 나온 요구르트가 남았을 때 버리려고 싱크대에 갔다가 원장 선생님을 마주쳤다.

"플라스틱은 저기다 버리는 거예요. 여기 아니에요~"

"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요구르트가 남아서 내용물 싱크대에 버리고 플라스틱 분리수거에 버리려고 했어요~'라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내 행동이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건 살기 위한 발악이다. 그 조그마한 에너지라도 아껴야 퇴근 후 삶을 좀 더 힘차게 살 수 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하던가. 내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나는 힘이 없다. 일터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열심히 아이들을 보육하지만 속에 있는 배터리는 충전이 시급하다고 외친다. 그래서 굳이 주절주절 설명하는 등 에너지를 깎아먹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마 이런 작은 오해가 쌓여서 선생님들에겐 내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또, 저걸 왜 저렇게 하고 있나 답답해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오해받는 걸 싫어해서 뭐든지 설명하려고 하는 나인데, 일터에서는 그냥 넘어간다. 설명할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다. 오해받는 게 말 몇 마디 하는 것보다 편하다. 말 한마디, 두 마디라도 아껴 집에서 편하게 책 읽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집 가면 지쳐 잠드는 그런 삶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운동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일터에서의 나는 앞으로도 조용할 것이다.

어떤 오해를 받든 상관없다. 그저 좀 더 힘차고 나다운 인생을 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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