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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Nov 14. 2022

죄책감 때문에 힘들다

누군가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

“00아! 이리 와!”

견학 가서 아이의 손을 놓쳐버렸을 때도,

“00아, 선생님 어깨 잡아.”

아이의 바지를 갈아입힐 때도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다.


놓쳐버린 아이는 내가 쫓아가자 꺄르르 신나서 뛰다가 넘어졌고, 옷을 갈아입히던 아이는 날 잡지 않고 딴짓하다가 무게중심을 잃어 넘어질 뻔했다. 결론적으로 둘 다 크게 다치진 않았다. 상처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심장은 내려앉았고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나도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때 내가 손을 놓쳐버리지 않았다면, 그때 내가 잘 보았다면…’


당시의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

그리고 아이가 다칠 뻔했다는 죄책감. 그 두 개가 뒤엉켜 내 마음에 먹구름을 만든다.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어제까지는 잘 다녔어도 한 번 이런 일이 생기고 나면 죄책감에 이 일을 당장 그만두고 싶어 진다.

이런 상황은 힘겨움을 넘어서 버겁기까지 하다. 이미 끝난 일인 걸 알면서도 나 때문에 아이가 다칠뻔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한 번씩 이런 일이 터지니 또 언제 이런 일이 터질까 조마조마하다.

‘다른 선생님들은 잘만 하던데 난 왜 이 모양일까..’

비교하면 끝도 없는 걸 알지만 괜히 비교하게 된다. 그들이 잘한 면과 내가 못한 면을 비교하게 된다. 베테랑 선생님 교실에서도 아이들이 종종 넘어지긴 한다. 그렇지만 보통은 아이들끼리 뛰다가 혹은 부딪혀서 넘어진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나 곰곰이 생각하며 다시 한번 죄책감에 휩싸인다. 나는 왜 그러질 못 했을까. 내 눈과 몸은 왜 열 개가 아닐까.

사실 나도 안다. 아이들이 넘어지는 상황 모두를 내가 통제할 수는 없다는 걸..

근데… 아는데.. 나도 아는데..

아는데도 힘들다.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힘들다.

금요일에 그런 일이 생기면 주말 내내 그 아이 생각만 난다.

‘아이는 괜찮을까? 내가 못 본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 봤을 땐 괜찮았는데 지금은 아니면 어쩌지? 알고 보니 크게 다친 거라면 어쩌지?’

그러다 월요일이 되어서 그 아이가 건강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여러 생각이 든다. 그중 하나는

‘누군가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것은 힘겹고, 죄책감을 수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이가 넘어지는 걸 눈앞에서 목격한 교사 중 어느 누가 헤실헤실 웃으며 다닐 수 있을까? 누구라도 본인을 탓하고 죄책감을 가질 것이다. 나처럼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죄를 지은 것만 같아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다.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하다. 죄책감의 크기가 압도적이어서 이곳에서 좋았던 모든 걸 버리고 이곳을 떠나고 싶다.

이 업계를 떠나고만 싶다. 책임감이 큰 게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장점이 아닌 것 같다.

나처럼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죄책감도 그만큼 강하게 드나 보다. 나의 부주의가 나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주의로 인해 누군가가 다치거나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날 힘들게 만든다.


나는 이 일에 맞지 않는 사람일까? 이런 죄책감도 오래 일하다 보면 저절로 없어지는 걸까? 익숙해질까?

나는 잘 모르겠다. 언제까지고 이런 죄책감은 날 따라다닐 것만 같다.

책임감의 또 다른 이름이 죄책감이라는 걸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 몰랐으면 더 좋았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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