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용기, 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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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호구인가요? 단호박인가요?
아님 호구와 단호박의 중간 어디쯤 계신가요?
호구는 흔히 남에게 쉽게 이용당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원래 뜻은 '호랑이의 입'(虎口)을 가리킨다고 한다. 호랑이가 내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면 당연히 무서울 것이다. '호구에 들어갔다'라고 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을 얘기하는 것이 될 테고. 지금은 뒤쪽에 붙은 말이 떨어진 '호구'가 위험한 상황에 잘 빠지는 어수룩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단호박!”은 단호하게 단박에 거절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를 말한다.
이번 경우는 들어주면 후회할 것 같은 부탁을 대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려 해요. 우리가 살다 보면 좋은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나게 되지만, 때론 자신의 일을 떠넘기며 무례하게 부탁을 하는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뭐 때문에 당당하기까지 하고요. 이럴 땐 내가 만만해 보이는가... 싶기도 하고 괘씸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혹시 이 말을 들으며 떠오르는 누군가가 있나요? 나도 쉬고 싶은데 본인의 일을 슬쩍 떠넘기는 얄미운 직장 동료 라던지, 협업 프로젝트에서 본인의 몫까지 떠넘기는 누군가라던지요. 저도 몇몇 얼굴이 스쳐 갑니다. 호의가 계속되니 그것이 권리인 줄 여기며 당연히 여겼던 사람들이요.
사실 들어줄 수도 있겠지만, 그냥 들어주면 왠지 내가 억울하고, 또 해주고 나서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것 같은 애매한 상황들을 앞에 선 당신의 선택은? “너밖에 없다. 너 아니면 누가 하니? 너 정도 능력이 되는 사람이니까 부탁하는 거야.”라는 소리에 마음 약해져서 이런저런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나의 여유시간과 주말은 사라집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상대는 나를 인정해 주는 것 같지만, 십중팔구 상대방은 나를 귀찮은 일을 대신해 줄 호구로 보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이런 유의 부탁은 조금 치밀하게 거절의 단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어요.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음에도 거절한 야박한 사람이라는 억울한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말이에요. 그럴 땐 이런 단계를 거쳐 보면 어떨까요?
첫 번째, 상대가 내게 하는 부탁에 대해 정확하게 확인합니다. 그래야만 상대방이 부탁을 밀어 넣을 틈을 최대한 꼼꼼히 막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그 일은 언제까지 마무리 지어져야 하는 건가요?” 일의 마감 시간을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통해 부탁하는 일의 소요 시간을 계산해 봅니다. 처음부터 이 사람의 부탁을 무작정 거절하게 되면, 집요하게 부탁을 이어갈 수 있기에 경우에 따라서 거절 이후가 더 피곤해질 수 있으니까, 모든 경우의 수를 예상해서 거절을 준비합니다.
두 번째, 거절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말씀하신 마감시간 전까지는 저도 마쳐야 할 A, B, C 업무가 순서대로 대기해 있어요. 도저히 부탁을 들어드릴 여력이 안되니 저도 아쉽네요.”라고 말이다. 거절해야 하는 나의 상황을 감정을 싣지 않은 담백한 표현으로 공유하며 거절하면 된다.
세 번째, 이때 상대방이 무례하고 무리한 부탁을 했을 상황에 대한 거절이므로 금전 부탁을 거절할 때처럼 미안해할 필요는 없음을 명심한다. 이때 내가 유지할 어조는 미안함이 아닌, ‘아쉬움’입니다. 그리고 다시 무례한 부탁을 할 여지를 남기지 말아야 해요. 이 경우 나의 감정을 실지 않고 최대한 ‘사무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 포인트인데요. 금전거래에서 부탁을 거절할 때의 ‘미안함’과는 다른 어조여야 해요. 만일 아쉬움과 공감, 어색한 웃음(이모티콘)등의 감정을 넣으면 오히려 상대방은 나를 만만하게 보고 어떻게든 다시 일을 떠넘기려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생사가 자로 잰 듯 딱 맞아떨어지는 게 아니죠. 간혹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은데 거절하기도 어렵고 마땅한 핑계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할까요? 그때 쓸 수 있는 치트키가 있는데요, 그건 바로 ‘대답을 잠시 보류하기’입니다. “나한테 생각할 시간을 좀 줘.” 비슷한 말로 “내가 그 부분 집에 가서 찾아볼게” 나 “생각해 보고 알려줄게.”와 갚은 표현이 있다. 이렇게 확보한 시간 동안 상대방은 그 부탁을 할 다른 사람을 찾을 수도 있고, 또 나로선 잘 떠오르지 않는 부드러운 거절의 말을 떠올릴 수 있기도 하니까. 이 순간 이후 선택의 주도권은 나에게로 오니,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호구에서 단호박으로 가는 길. 참 쉽지 않죠? 나부터도 ‘그냥 내가 좀 손해 보지 뭐... 고생하고 말지 뭐...’라고 생각하곤 하니까요. 하지만, 호구가 된다는 건 그 뜻대로 때론 나를 위험한 상황에 넣기도 하니 적절한 거절의 연습이 꼭 필요합니다. 나를 위한 단호박이 되는 그날까지 거절을 연습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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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이 어려운 당신에게
<당신의 거절은 안녕하신가요 / 김선희>
https://www.nadio.co.kr/series/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