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그 나이 차이가 나는 부끄러웠다. 스무 살 성인이 되기도 전에 엄마가 되었다는 뜻이니까.
엄마의 낡은 사진첩에서 교복을 입을 앳된 중학생 시절의 모습을 본 기억은 있지만, 졸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여고시절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새 학년이 되면 가정환경 조사서에 부모님의 학력을 국졸(초졸)로 적는 게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중졸이라고 적어내곤 했다. 교복 입은 모습은 보았으니 거짓말은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그리곤 누군가 “엄마 연세가 어떻게 되셔?”라고 물을 때면, 내 나이에 스무 살을 더해 대충 얼버무리곤 했다. 2020년 2월 16일 전까지.
어느 일요일 아침, 외출한다는 딸아이를 지하철 역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검정고시 학원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엄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다.
"엄마, 근데 왜 중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던 거야?
보통 남들이 학교 다니던 그 나이 때 엄마는 뭐 하고 지냈던 건데? “
뜻밖의 질문에 깊고 크게 한숨을 한번 내어 쉬던 엄마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너무 힘들고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이라 그냥 기억 속에 덮어 두었는데,
이젠 이야기해도 될 거 같다. “
참고로 나의 엄마는 6남매 중 다섯째였다. 위로는 4명의 외삼촌들이 계셨고, 아래로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시골마을 경찰서장이셨던 나의 외할아버지. 그리고 그 시절 시골 마을에 처음으로 부녀회를 창설하셨다던 외할머니는 각각 엄마가 11살, 18살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두 분 다 위암으로.
인근 학교에서 '장한 어머니상' ‘새마을 인재상”등을 받을 만큼 활동을 활발히 하셨던 외할머니, 박질남 여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사람이 밥은 굶어도 옷은 깨끗하게 입고 다녀야 대접받는다 “외할머니 지론 덕분에 늘 말끔하게 차려입던 장 씨 남매들 또한 인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고향마을에 가면 외삼촌의 성함 석자는 지금도 통할 정도니 그 시절 유명세가 짐작이 간다. 나의 엄마도 초등시절에는 각종 임원을 도맡아 하고, 웅변대회 수상도 놓친 적이 없었다고. 아마도 그때가 내 엄마 인생의 최고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세상의 울타리가 되던 외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엄마가 위암을 진단을 받고 상황이 급격히 나빠진 게, 엄마 나이 15살이었다고 한다. 위로 오빠들은 모두 객지에 나가 있고, 병간호를 할 사람은 없으니 어린 여동생과 할머니(내겐 증조 외할머니)까지 계신 상황에 엄마는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어린 나이에 소녀 가장이 되어 타지에서 삼촌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병간호와 살림을 해야만 했다. 농사를 짓고, 땔감을 마련하러 앞산에서 나무를 하고 그렇게 살아내었다고. 그 어린 나이에 가졌을 마음의 부담감. 그리고 매일 학교로 향하는 친구들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을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 의지할 곳 없어진 엄마는 동네에서 제일 잘생긴 나의 아빠를 만났고, 모든 외가 식구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셨다. 가난한 집안, 7남매의 맏이인 아빠. 일찍이 홀로 되어 장남을 의지하며 살아온 할머니에게 며느리는 내 아들을 뺏어간 존재이니 눈에 가시였으리라. 어린 내 기억에도 남을 만큼 엄마의 시집살이는 매서웠다. 애 셋을 낳고 몸조리로 누운 날을 다 합쳐도 삼칠일(21일)이 안될 정도였으니. 그렇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버티고, 견디며 홀로 자식 셋을 키우고 손자들까지 키우다 보니’ 60이 훌쩍 넘어버렸다고. 15살 이후, 엄마의 삶에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엄마가 이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신다. 알파벳을 배우다 만 중학교 2학년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가까운 검정고시 학원을 알아보던 중 엄마의 새로운 꿈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건 바로 책 쓰기.
그날 이후 틈틈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이 대화를 반복하게 되었다.
”엄마 인생이 그냥 책 한 권이네, 그거 그대로 쓰면 되겠네. “
”엄마가 해본적이 없어서 말은 해도 글로 쓰기는 어렵지. 그리고 내 얘기를 누가 궁금해나 하겄냐. “
”음...엄마, 내 SNS에 달린 댓글을 보니까 남매작가를 키운 엄마가 어떤 분인지,
어떤 교육관으로 육아를 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 “
”그래? 그런 사람도 있구나. 그래도 해본적 없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
자꾸만 묻는 엄마의 질문속에 '하고싶다'는 의도가 읽혔다. 나는 얼른 집에 있던 어르신이 쓰신 에세이 몇 권을 엄마께 전해 드렸다. 읽어보시면 감이 잡힐 거라고.
2021년 9월. 자식 셋이 종이책과 전자책을 출간하고 "작가 삼 남매"라는 닉네임을 얻게 된 그날부터 엄마는 책 쓰기 꿈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