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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Aug 11. 2021

공룡이 출몰해도

*으른이 된 내 꿈에 나온 다이너쏘얼

    쿵. 쿵. 쿵 쿵. 쿵 쿵. 쿠쿵쿠쿵. 쿠쿵쿠쿵-



    한적한 동네에서 까닭 모를 소란이 일었다. 점차 울림은 커지고 주기는 좁혀 들면서 천지가 뒤흔들렸다. 이 작디작은 동네의 중심가로 수많은 인파가 개미 떼처럼 모여들었다. 지진일까? 그보다는 육중한 무언가가 내딛는 걸음 같았다. 울림이 가까워질수록 불안에 찬 웅성거림 또한 고조됐다. 이윽고, 울림의 원인이 시야에 나타났다.


1.


    브라키오사우루스가, 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떼를 지어 다가왔다! 오래전에 멸종됐다는 지구의 주인이 귀환했다. 수 십이 무리를 지어도 저 거대한 육신 하나만도 못하는 자칭 만물의 영장은 한낱 조무래기에 불과했다. 사람이 크게 당황하거나 공포스러우면 말을 잃는다고, 정체가 밝혀진 순간 온갖 육성은 어둠 속으로 잠식됐다. 약속이라도 한 듯 각지로 흩어지는 군중은 침묵을 일관했다. 살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다. 공룡 무리가 다가올수록 화창했던 대낮의 동네는 한밤중인 양 컴컴해졌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조명을 밝힐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불그스름한 가죽 위로 우둘투둘 돋아난 돌기는 푸른빛을 띠는 브라키오사우루스. 초식성이라 한들 저 육중한 한 발짝에 그대로 즉사할 것이다. 이미 값비싼 외제 차며 버스 몇 대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납작해졌다. 산산이 부서지는 파편과 잔해 따위 저 거대한 공룡에겐 스치는 간지러움에 불과했다. 땅이 울고, 사물이 부서지고, 산산조각 난 값어치가 흩어지는 둔탁한 소음이 끝 모르게 이어졌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공포에 질린 비명을 입 밖으로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미처 피신하지 못한 나는 어느 골목 구석에서 최대한 웅크려 앉았다. 저들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그러나 무리 중 한 마리가 지나다 말고 돌연 내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얼굴만으로도 골목을 꽉 채웠다.


2.


    고작 1m 남짓한 정면에서, 성인 한 명의 몸집만 한 호박빛 눈이 나를 응시했다. 화석처럼 굳어진 나는 그저  뚫어져라 맞주시했다. 주변을 탐색하는 듯 요동치는 검은자위에 담긴 내 모습은 흡사 호박(Amber) 속에 갇힌 화석의 몸부림이었다.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구부린 목을 팽창된 호스처럼 펼치자, 호박 화석 같던 시선은 창공으로 돌아갔다. 공룡의 다리가 골목을 벗어나자마자 수 초간 멎었던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하마터면 호흡 곤란 직전이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다행히 아랫도리론 질질 흐르지 않았다. 어두웠던 사위가 차츰 밝아왔다.


    후다닥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의 안위를 살핀 , 다시  밖을 나섰다. 공룡이 나타났어도 생계를 포기할  없는 까닭이다.  잠깐 새에 대마법사 멀린이 도시 전역에 타임 리커버리 마법이라도 부렸는지, 거짓말처럼 대부분의 피해 현장이 복구되어 여느 때나 다름없는 일상이 아니었다. 인도에 예닐곱   어린아이만  크기의 작은 공룡 무리가 활보했다.


3.


    사람으로 치면 지능도 한 세 살배기 수준인지 저들끼리 치고받으며 신나게 뛰어논다.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종종 본 듯한, 무슨 종인진 모르겠고 여하튼 잡식성 아닌가? 그러나 정작 진풍경은 천진하게 뛰노는 어린 공룡들보다도, 거리낌 없이 태연하게 오고 가는 행인들이다. 도시가 복구되면서 모든 시민의 멘털도 따라 보강됐는지 출근시간이 임박했던 나는 서둘러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에 탑승하자마자 아까처럼 쿵쿵 소리와 함께 브라키오사우루스  마리가 지나갔다.  전에 마주쳤던 공룡과 동일한 종인지 아니면 동일 공룡인지 여하튼 울긋불긋한 피부색의 호박빛 눈이었다. 공포의 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공룡이 도로 한복판을 어슬렁거리는데, 나를 비롯한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아스팔트 위를 쌩쌩 누비는 자동차 행렬은 평소대로 질서 정연하게 신호등에 맞춰 오고 갔다. 다만 차이라곤 어딜 가나 무리 지은 공룡 떼가 활개 친다는 점이었다. 무심한 공룡의 육중한 발걸음을 자동차도, 사람도 알아서들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녔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아가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일단 나에게 있어선 밥벌이였다. 밟혀 죽거나, 굶어 죽거나. 굳이 어느 편이 더 비참하냐면, 공룡에게 밟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굶어 죽을 순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창문 너머 바깥을 바라봤다. 브라키오사우루스 무리가 느릿하게 이동했다. 5층 높이에서도 창틀 가득히 들어차는 광경은 움직이는 다리뿐이었다. 환한 대낮이 어두워지건 말건, 밖에서 공룡 떼가 지나가건 말건, 그 영향으로 지진 난 마냥 건물이 요동치건 말건, 직원들은 평소대로 컴퓨터를 붙들며 전화기와 시름했다. 곳곳에 가로등이 어둑해진 동네를 별처럼 수놓았다.



* 악동뮤지션 / <DInosaur>에 나오는 가사를 일부 변형해봤다.

- 1. © frozenstarro / Pixabay

- 2. https://blog.naver.com/godzilla1998/221625842782

- 3. https://blog.naver.com/dkkyung1/140208514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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