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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하 Dec 30. 2023

갈 곳을 잃어

하얀 겨울에 떠난.

이미 머릿속으로는 잘 알고 있다, 가뜩이나 가진 게 없는 채로 당장 먹고살 걱정만으로도 태산이고 건사할 식구가 여럿인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고여있을 수만은 없다고.


그래, 생각만으로든 모든 쉽다. 엉킨 실타래를 가위로 끊어내듯 그렇게 쉬울 수 없다.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기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기도. 말이야 쉽지.


나는 고작 길거리를 걷다가도, 버스 창가에 기대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 일상 곳곳에 아로새겨진 기억의 조각들이 파편처럼 가슴을 들쑤신다. 실컷 울고 나면 해소될까 싶어 감정에 몸을 맡겼더니, 어디선가 샘솟듯 채워지는 슬픔의 원천이 신기할 정도로 울고 또 운다. 잠들기 전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공허감은 자고 일어나서도 그대로였다.


새삼 나의 역겨운 처지를 자각하는 요즘이다. 스스로 빛나기는커녕 오롯이 행복해지는 법을 모르고 함께라는 명목으로 자잘한 희망에 기대어 사는 기생충과 다름없구나. 그 대상이 신기루인 줄도 모르고, 아니, 사실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혹독한 대가로 차고 넘치는 상실감에 무너져버리는 실로 쓸모없는 미물이구나.


그 와중에 내 코가 석자임에도 그렇게 가여울 수 없다. 그래서 차마 원망할 수도 없고 아주 탓할 수도 없고 신기루가 사라진 자리 앞에서 그저 황망하게 멈춰 섰다.


알고 있다, 언제까지고 멍하게 멈춰있을 수만은 없음을.


그렇게 욕심을 부렸더니 결국 갈 곳을 잃었다. 그만 정착하고 싶은 소망과 달리 또다시 길을 잃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번엔 맞는 길을 고를 수 있을까.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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