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게 하자, 내가 나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정말이지 혹하는 말이다.
왜 어머니들이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리는지, 아이들이 커갈수록 녹록지 않은 삶을 실감하며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노동 강도나 처우로 치면 지금 내 나이의 그들이 훨씬 더 열악했을 테니 말이다.
당장 나조차도 ‘쉬고 싶다’를 입에 달고 사는데, 하물며 그들에게 쉼이란 얼마나 큰 위안이었을까. 청춘을 갈아 넣어도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는 허탈감을 절대적인 존재에게 기대어 언젠가 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치환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활동하고 휴식하고 욕망하고 절제하는 자기 몸의 통제자는 신도 가족도 아닌 오직 자신뿐이다. 그러니 쉼 역시 결국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깨어 있는 내내 쫓기다시피 살아도 휴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균형 있는 완급이 있어야 다음도 기약할 수 있다.
결과는 신의 몫일지언정 휴식과 진행의 결정은 신이 아닌 자신의 몫이다. 신이 내게 길을 제시한들 그 길로 나아갈 의지는 결국 내게 달렸으니까.
‘쉬게 하리라’는 말은 단순한 휴식의 보장이라기보다 어쩌면 더 나은 미래, 하루하루가 충만한 자신의 삶을 향한 강렬한 염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빡세게 일했으면 쉬게 하자. 내가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