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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의선물 Jul 21. 2018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알아야 할 것

아이는 아이의 눈으로 여행을 하는 것

아이와 단둘이 처음 여행을 떠난 것은 아이가 8살이던 때,

한 여름 방콕이었다. 그저 물놀이를 좋아하고 이미 여러 번 다녀온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9박을 방콕, 그 해 여름 거기서 보냈다.

그리고 9살, 10살, 11살... 차례로 제주, 암스테르담, 쾰른, 파리, 스위스 이탈리아.. .

내가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아내가 장거리 비행을 못한다는 것.

두 번째는 내가 아빠로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일은 무엇일까.

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태어남에 따라 부모를 금과 은 심지어 흙으로 나누는 세상에

단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가 살아가는 세상은 훨씬 더 크고 넓고 다양한 모습임'을

보여주고 싶은 것.

첫 아이와의 여행은 참 쉬웠다.

이미 아이가 두 번 다녀온 곳이니 익숙하겠지. 잘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항버스를 타자 마자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훌쩍거리고 울었다.

'이제 겨우 8살짜리 아이를...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를 가끔 달래 가며

9박 10일을 오롯이 수영장에서 놀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수영장에서 살았다.

여행 8일째 날 아침 아이는

"이제 수영 그만 하자" 이 말로 단박에 여행을 정리해 버렸다.

물놀이라면 세상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두 번째 여행은 오롯이 모험이었다.

그린델발트에서 트로티 바이크를 타고 내려오기 위해 아파트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연습을 100번쯤 했을 때

그래. 이제 떠날 수 있겠다. 싶었다. 아이에게 자전거를 배우게 한 목적은 오직 알프스를 즐기고자 함이었다.

일단 10시간. 5시간의 장거리 비행도 처음이었거니와

유럽의 멋진 풍경들 그 앞에서 보고 싶은 엄마, 지루함, 따라 걷기 등등 걱정했던 것들을

아이가 다 이겨낼 줄 알았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 앞 놀이터!

파리 노트르담 성당 마로니에 나무 뒤... 놀이터!!

스위스 그린델발트 아이거 북벽 만년설 아래... 놀이터!!!

아이의 유럽 여행은 놀이터 여행이었다.

개선문을 오를 때도, 노트르담 성당을 오를 때도 아이를 업고 백개가 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계단을 200개쯤? 업고 올라갔다 - 파리 노트르담 성당

기다리고 기다려 힘들게 올라간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간 지 1분 만에 아이는

"아빠 목말라. 내려가자"

루브르, 오르셰, 잘츠부르크, 암스테르담 어디서든 아이는

"이제 그만 나가자~~~~"

뭐가 가장 기억에 남니?라고 물었을 때 아이의 대답은

키와 몸무게 미달로 타지 못했던 그린델발트의 짚라인과 카트라고 답했다. 그리고

알프스의 눈이 녹아 흐르던 계곡의 물맛!

그린델발트 트로티 바이크 타고 내려오기-이걸 타기 위해 자전거 내리막길 100번을 연습했다.

세 번째 여행은 아이와 7박을 함께 한 제주여행

이제 아이는 제법 자라 말도 통하고 재잘거리며 책에서 본 것들을 함께 이야기에 녹여내기도 한다.

어디서 무얼 할지, 어떤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지, 어디에서 더 머물고 싶은지, 먹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의견 충돌이 일어난다.

아이는 별빛누리 공원에서 보이는 별과 곽지과물 해수욕장에서의 스노클링 그리고 고기국수 등을 말했지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 가고 싶지 않은 곳엔 단호했다.

마지막 날엔 이러다 비행기 놓치겠다. 좀 더 빨리 가자 하더니 공항에선

그런데 "전복죽을 안 먹었다. 제주 전복죽"

'헛...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제주 여행의 마지막 만찬이라며 주문한 전복죽

열흘간의 이탈리아 여행에서 이제 아이는 더 이상 나를 따라만 다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날 입을 옷을 결정하는 것부터

먹는 것에 관해 자기 선택이 확실해졌으며

걸어보고자 하는 골목에 대한 호불호가 드러났고

아테네 학당이나 천지 창조를 보고  이야기할 줄도 알았으며

피사의 사탑에서 '나는 저길 꼭 올라가야겠노라'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베로나에서 밀라노로 가는 길엔 아예 여행 책자를 자기가 들고 다녔다.

많게는 하루 22km를 따라 걸으면서도 아이는 자기중심을 잃지 않았다.

물론 여행의 마지막 날,

반쯤 잠이 깰 듯 말듯한 상태로 "오늘은 어디 가지 말자. 그만 가자. 너무 힘들어"라고 하는 아이를 깨워

밀라노의 겨울바람을 맞게 했다.

로마 포르타포르테제 벼룩시장에서 - 아이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와 여행을 하려고 하나요?

아이가 여행을 즐기고 많은것을 보고 느끼길 기대하는가요?

그럼 아이를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즐기고 느낄 때를.

12시간을 날아 어렵게 온 여행지에서 아이가  고작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에펠탑, 모나리자 같은 명화 앞에서 사진은 커녕 빨리 나가자 보채더라도,

에스까르고나 학센, 퐁듀 앞에서 아이가 햇반과 컵라면이 먹고 싶다 하더라도,

페스탈로치, 미켈란젤로, 단테, 모차르트 앞에서 초콜릿과 젤라토만을 찾더라도,

아직도 자기가 호그와트 학교를 졸업한 마법 지팡이를 지닌 마법사라 여기더라도 말이죠.


퇴근하고 돌아온 어느 날 아이가 서재방에서 꺼내 보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며 하는 말.

"아빠 스페인은 언제 갈 거야? 나 이번엔 스페인 가 보고 싶어"


아이는 아빠 모르게 커 가고 있습니다. 엄마도 모르게 커 가고 있습니다.

아이의 여행이 되도록 해 주세요. 엄마 아빠의 여행은 아이의 여행 기억으로 남지 않습니다.


당신이 아이와 여행을 떠나려 한다면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는 아이의 눈으로 여행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저 당신은 데려다주고 안내해 주는 조력자일 뿐.

그게 오롯이 아이의 기억에 남아

아이를 성장하게 할 것입니다.

밀라노행 기차를 기다리며 - 이젠 여행책자를 본다, 베로나 기차역에서

다음 편 "아이와 여행 - 잊지 말고 챙겨야 할 것 - 비행기 태우기, 숙소 고르기, 여행지 정하기, 아이의 성향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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