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고마움

감사의 마음은 왜 늘 그때뿐이었을까

by 비고란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있다.

물 한 방울 위에 ‘감사합니다’라는 낱말카드를 붙였더니

그 물의 결정이 아름답고 고결한 육각형으로 변했다.

놀랍게도 “바보야”, “싫어”라고 쓴 카드를 붙이면

그 결정은 일그러지고 흩어졌다.


인간의 몸이 70%가 수분이라면,

우리가 내뱉는 ‘감사’란 말 한마디도

스스로의 형상을 바꿀 수 있는 물리적 기도일지 모른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자기 계발의 허세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믿는다.

왜냐하면 ‘감사’라는 감정만큼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향’을 갖는 유일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질투를 품고,

기쁨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질 수 있으며,

행복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그러나 감사는

그 자리에서 흐르는 눈물과 고개 숙임으로만 완성되는

순방향의 감정이다.

질투도, 대가도, 조건도 없다.





기도는 간구가 아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주문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사가 기도다.

그래서 기도는 욕망이 아니라 ‘의식’이고,

삶의 격조를 만드는 감정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기적은 오래 바라면서도

감사에는 너무 짧은 시간만 허락한다.





사람들은 "고마웠다"라고 말하곤

"이제 됐지?"라며 등을 돌린다.

감사 인사는 형식이 되었고,

그 형식마저 없으면 붕어 없는 붕어빵이 된다.


(애초에 붕어빵에 붕어가 있었던 적은 없... 응??.)




때때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사람의 그다음 표정을 기억해 보자.

그건 절대로 위선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잠시나마 고결한 인간이었다는 증거다.




나는 지금,

703만 원 문화 지원금 계산서를 보며

다시 감사의 주문을 되뇐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아수라 발발타 아멘타불이 만만세'

그 물결 하나가

삶의 결정(結晶)을 바꿔줄 수 있기를 바라며.




혹시 당신도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미뤄두고 있다면,

지금, 그 한마디부터 꺼내보자. 고난과 재난, 그리고 변화의 대한민국 시대정신 전환점인 이때에 더욱 고마움이 절실한 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신의 귀띔이 들리는 듯..)


그 말이 당신을,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를, 서로가 서로를 고결하게 만들 최면마법의 단어 일 것이다.


고통에 빠진 누군가가



“신체의 일부가 사라진 그 순간이나, 재난에 재산과 소중한이를 잃은 이에게 도 감사하라 할 수 있을까?”


딱히 별수 있나.. 불행의 기도나 증오의 욕지거리를 하라 할 순 없잖은가.



다만 호흡기에 의존하거나, 떼야한다는 동의서를 내손으로 쓰지 않고 숨 쉬는 지금,

당신과 나는 뜻밖의 감사기도를 올릴 수 있을지도...


(절망의 한탄 섞인 저주보다는 낫지 않은가. 감정의 굴레에 처박혀 고통의 함정에 , 죽음을 천국삼아 선택하라고, 추천할 수는 없잖은가..)



이 글은 12번의 12 지신 숫자와 같은 죽을 고비를 거쳐서 고통의 굴레를 영감으로 비집고 나와... 마지막 유언처럼 쓴 기도문의 답댓글처럼 응답해 온 신의 쿠팡 같은 결제.


내게 1억3500여만원과 703만 원의 예상치 못한 문화지원 상금(?)들이 온 날...

2% 남은 배터리가 이 글을 쓰게 만든 고마움 덕분에 또 고양감이 든다..


"신이시여 고맙다. 아주 땡큐 한 부분이야, 하늘의 동지여"


추신.

왜 나는 항상 기도할 때 반말을 할까.

혹시... 반말일 때 기도빨이 잘 듣는 루틴 때문일까..


" 난 신이랑 동갑내기다"



"복들어간다 입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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