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조진희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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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이제 잘리는구나.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21번지. 60여년 가까이 이 땅을 굽이 보던

나무 한 그루가 쓰러지는 소리가 울린다.

이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며 심은 나무인데 전망이 안 좋단 이유로

파란색 옷에 노란색 띠를 맨 9급 공무원들이 나무 주변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그들이 찬 완장엔 검은 글씨로 '임무수행중'이란 다섯글자가 적혀있다.

나무는 저항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몸 속을 파고드는 쇠붙이를 받아들였다.

그 동안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해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저 자신한테 찾아온 최후를 겸허하게 인정했다.


설령 이해되지 않더라도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나무가 자신의 머리 밑에서

고백하고 싸우고 헤어짐을 반복하던 인간들을 보며 깨달은 한 가지 교훈이다.

밖으로 뱉지 못하고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다독이고 안아주기.

그래서 속으로 설령 늙을 수 밖에 없는 해도 말이다.


- 앞으론 그루터기로 주저 앉아있겠구먼.


나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떨어지는 가지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곧 큰 몸도 떨어질 것이다. 그때서야 인간은 볼 수 있을 것이다.

60여년의 시간 동안 속으로 삼킨 울음을 물감 삼아 자신의 몸에 그린 그림을.

항상 시간이 지난 뒤에 아는 인간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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