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정병근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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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나무는 사람이 아니다


귀가 없고 눈이 없는

나무는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을 뿐더러

캄캄한 펌프질로 길어 올리는

손도 팔도 다리도 없는


나무는 서서 생각하고

서서 잠자는 그늘인가 했다


때로 햇살을 흔드는 손짓 같기도 하고

내심을 갖추고 서서 속으로 되새기는

웬 더딘 말씀인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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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왜 베어버린단 겁니까.

이 아파트에 이사 온 것도 다 저 나무 때문이었는데요.


- 그게 봄철에 열매 떨어지고 그러면 우리 들이 관리하기 힘들어서 그래요.

아니, 아파트 주민회에서 관리비 줄이면서 생긴 일인데

이런 식으로 민원을 넣으면 곤란해요.


경비원 조성철씨의 능글거리는 말투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다.

항상 이런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 버린다.

뻔히 자기들 일인데도 힘들다고 변명을 만들고

그렇게 된 까닭엔 꼭 주민회를 걸고 넘어진다.

아무튼 상대를 하기 싫은 사람이다.

아줌마를 우습게 보는 전형적인 한국인 아저씨 같은 양반으로

내가 뭐 말만 할라치면 '또 시작이세요'하는 표정으로 변해선

듣기 전부터 반박거리를 만드는 것이 뻔히 보인다.


- 됐어요. 주민회 통해서 이거 민원 넣을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 알겠습니다. 살펴가세요.


전화를 끊어서도 분이 안 풀린다.

말꼬리 뒤에 물결치는 그 말투가 마지막까지 사람 신경을 건드린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아파트 총관리인이 된 거인지.

이번에 주민회가 열리면 꼭 따져봐야겠다.

왜 주민들이랑 상의도 안 하고 관리실에서 아파트 한 가운데있는

커다란 나무를 뎅겅 잘라버린단 말이야.

베란다를 통해서 밑에 공터를 보니 어제까지 위풍당당하게 서있던

나무가 몇개 남지 않은 가지들을 초라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올 때도 공터에 있는 나무가 멋있어

눈 여겨 봤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 난다.

그늘 밑에 앉아서 승희 학교 다녀오는 것도 기다리고

동네 아줌마들이랑 수다 떨기 좋은 장소였고

여름이면 애아빠랑 밤에 나와서 맥주 한 캔 하기도 좋았다.

그 동안 나무는 우리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줬는데


그런 나무를 사람이 아니란 이유로 쉽게도 자른다.

차라리 동물이었어도 이러지는 못 했을거다.

자기 가지를 자를 때 소리치고 울부짖었다면 저들이 어떻게 감히.

말이 없다는 이유로, 귀가 없고, 눈이 없고, 팔이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서서 생각하고 서서 잠자는 그늘을 잘라버렸다.

어떻게 해도 돌아올 수 없는 나무를 보자 한숨이 나왔다.

소파에 앉기 전 커텐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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