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3

서기석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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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 속엔 그가 보이지 않아 담백했다.

어설픈 글쓴이는 자신을 녹여 문장을 만든다.

공들이고 신경쓰는 만큼 그들의 내면에 몰두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자신이 가득 끼어있게 된다.

헌데 그의 글엔 그런 이물질이 전혀 없다.

그래서 그의 글은 새싹들 숨소리에 발맞춰 새근새근 읽게 된다.


그의 글에는 그가 담겨있지 않지만

그의 글을 읽다보면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늦은 밤, 조명 하나 아래 두꺼운 안경을 쓰고

도둑 고양이 앞발 내딛듯이 조심스레 자음과 모음의 씨앗을 수집한다.

책상 한 구석엔 이제 막 고개 든 새싹 담겨있는 원고지 한 장,

새싹들이 너무 빨리 일어날까 머리 어루만지며 '조금만 더 자라' 속삭이며

치맛자락으로 눈물 훔치듯 질금질금 봄비처럼 글을 쓰는 그가 떠오른다.


그의 글은 봄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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