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라이앵글과 도서 일곱개의 고양이 눈
오싹한 영화 좋아하시나요? 공포 영화말고요! 제가 엄청난 겁쟁이라 공포 영화는 보지 못하거든요. 무서운 마스크를 쓴 살인마가 나오거나, 이불 밑에서 있어선 안 될 무언가가 나온다거나, 불이 꺼졌다 켜졌다 갑자기 깜짝 놀래키는 영화들은 질색합니다. 하지만 오싹한 미스테리를 가지고 있는 영화는 좋아합니다.무서운 장면들 없이도 소름 돋게 만드는 영화들 말이죠!
3화는 소름 돋는 오싹함을 주는 미스테리한 작품들을 가져왔습니다. 추천 작품으로 스티븐 킹이나 요코미조 세이지도 떠올랐지만 영화와 함께 엮으려고 하니 이 한 쌍을 이길 수 있는 조합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바로 영화 ‘트라이앵글’과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소개합니다.
먼저 영화 트라이앵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반전의 반전을 가지고 있는 영화를 소개할 때면 항상 막막합니다. ‘엔터 노웨어’, ‘더 문’, ‘더 재킷’, ‘타임 패러독스’, ‘아이 인 사이드’ 등 관객의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뒤통수에 충격을 주는 영화들이 그렇습니다. 정말로 재미있는 영화인데 내용을 말하는 순간, 반전에 대한 단서가 될까봐! 그래서 제가 관객의 재미를 빼앗아 갈까봐 어떻게 감히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잠시 변죽만 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라이앵글은 영국 영화로 2009년도 작품이고 국내에는 2018년에 개봉을 했습니다. 말이 개봉한 것이지 개봉한 관도 적고 날짜도 짧아 관객은 2000명 정도가 봤습니다. 국내에 개봉되는 외화는 배우 인지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할 때 ‘누가’ 나오는지를 따진다는 건데요.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가 아는 배우는 한 명도 없습니다. 배우들만 봤을 땐 이게 무슨 B급 영화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믿고 보세요. 배우가 무슨 상관입니까. 내용이 미쳤어요. 이런 각본이라면 누가 등장을 했었도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할 것입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는 흥행을 하지 못했지만 그 뒤로 입소문에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사람들한테 알려진 영화입니다.
국내에는 유리가 삼각형 안에 삼각형이 반복되는 모양으로 깨져있고 그 안에 주인공의 모습이 비처 주인공 역시 반복되는 포스터로 광고를 했었습니다. 제목인 트라이앵글을 표현함게 동시에 영화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어 정말 잘 만든 포스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피처럼 붉은 색 선 3개로 삼각형을 그리고 배경에 거대한 유람선이 흐릿하게 있는 포스터가 가장 취향에 맞습니다. 전자는 정보가 너무 많아 보이는데, 반면 후자는 영화의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서 관객의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이제 영화를 보겠습니다.
주인공 제시는 자폐가 있는 아들 토미와 둘이 살고 있는 싱글맘입니다. 어느날 제시의 친구 그렉이 친구들과 요트 여행을 떠나자고 제의합니다. 친구가 또 다른 친구가 부르는 식으로 제시와 그렉 외에도 셀리, 다우니, 헤더, 빅터 6명이서 요트여행을 떠나요. 간만에 아들 토미가 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떠난 제시. 그런데 제시의 표정이 어딘가 어둡습니다. 그래요. 이런 영화는 꼭 이렇습니다. 표정이 어둡거나 분위기가 어둡거나 음악이 어둡거나 아니면 셋 다 어둡거나. 초장부터 앞으로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불길한 징조들을 깔고 가는 겁니다.
아니나다를까. 요트를 타고 가는데 폭풍우가 밀려옵니다. 무전을 치는데 어디선가 제발 살려달라는 여자의 외침이 들립니다. 그리고 폭풍에 요트가 뒤집혀버립니다. 그 와중에 헤더는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고 맙니다.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한 명은 사라지고 나머지는 바다 한 가운데서 고립 된 상황. 이제 다 죽었나 싶은데 엄청나게 거대한 유람선을 발견합니다.
살았다! 싶습니다. 근데 이상해요. 유람선에 올라보니 사람의 흔적이 없습니다. 아까 분명히 누군가가 유람선에서 자신들을 쳐다봤는데 말이죠. 일행들은 조심히 배 안을 둘러봅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가니 피로, 아니 왜 꼭 이런 건 피로 쓰는지, 피로 극장으로 가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유람선에 있는 극장으로 가게 되고 사건이 터집니다.
영화 초반에는 조난당한 배 안에서 벌어지는 스릴러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반에는 그냥 스릴러가 아니라 특정 장르의 영화라는 걸 깨닫습니다. 헌데 이 장르의 영화가 재미있긴 한데 설정이 너무 과해지면 작위적여서 몰입에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걱정하고 영화를 봅니다. 조금씩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충격적인 장면들이 나오는 덕분에 몰입하며 후반부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에 가면 뭐지? 아직 끝이 아니야? 라는 의문이 듭니다. 이상해요. 이 정도 했으면 끝날 법도 같은데 영화가 더 있습니다. 그렇게 결말에 가고 나면 그냥 놀랍습니다. 와! 이걸 이렇게 마무리 한다고? 마지막에서 이야기가 깔끔해지면서 영화의 별점이 한 개 더 올라갑니다. 재미만 있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면도 있었다니, 꽤나 겸손한 친구였다는 생각에 이 친구를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집니다. 결말까지는 쭉 달리는데 결말에 가서는 영화를 한 번 더 봐야 이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제가 너무 변죽만 울렸나요? 하지만 반전이 있는 영화들은 내용을 아끼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재미를 뺏으면 안 되니까요. 저 또한 아쉽습니다. 이 영화를 여기까지 말해야 된다뇨. 아쉬움이 커지기 전에 일곱 개의 고양이 눈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표지를 먼저 보겠습니다. 아까는 삼각형이었는데 이번에는 타원형이 두 개가 붙어 무한의 고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2008년에 창간 된 문예계간지 ‘자음과 모음’에서 개개의 중편이나 단편이 모여서 하나의 장편을 이루는 장르 소설을 ‘픽스업’이라고 이름 붙이고 픽스업 소설을 연재하는 지면을 만들었는데요. 거기서 나온 소설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입니다.
2000년대 초반만해도 우리나라는 장르소설이 약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재미있게 읽었던 청소년 소설들 중에는 일본 문학이 많았고 대학에 다닐 때 추리물이나 로맨스는 프랑스나 영미 문학이 많았습니다. 한국 소설은 읽기에 무거운 것들이 많았죠. 하지만 장르소설에 이렇게 꾸준히 물을 주었고 지금에 이르니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국산 장르소설이 쌓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어떤 중편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봅시다. ‘여섯 번째 꿈’, ‘복수의 공식’, ‘파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4개의 중편이 있습니다. 맨 처음 여섯 번째 꿈은 전통 추리물 같습니다. 어느 산장에 일면식도 없던 6명의 사람들이 초대됩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이들이 어떤 경유로 이곳에 초대가 되었는지 나옵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연쇄살인마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의 회원으로 카페지기 ‘실버해머’한테 초대장을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6명은 각각 한니발, 유혈낭자, 불면증, 왕두더지, 폐쇄미로, 전신마취라는 아이디로 서로를 부릅니다.
헌데 자신들을 최대한 실버해머는 보이지 않습니다. 심심하기도 하고 이들은 평소 카페에서 나누던 연쇄살인범들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잭 더 리퍼, 죽음의 의사 해럴드 스피먼,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의 모델인 에드워드 게인. 그들은 남들이 으스스하게 느낄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고 꺼냅니다. 심지어 아름다운 유혈낭자와 한니발은 서로 불꽃 튀는 논쟁까지 벌입니다. 이렇게 토론을 하다 다들 잠자리에 들어갔는데 다음날, 한니발이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나머지 다섯 명은 난리가 났습니다. 이 와중에 유혈낭자는 홀린듯 꿈 속에서 범인을 봤다고 말하네요.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눈 내리는 날, 공간적 배경은 고립 된 산 속 산장, 그리고 소재는 밀실살인사건입니다. 추리물이라고 생각하면 평이합니다. 아니, 오히려 허전합니다. 앞서 트라이앵글과 같이 소개해놓고서 고작 밀실 살인사건을 다룬 그저 그런 추리물을 가져왔다니. 심지어 이게 뭐지 싶은 결말까지 가면 허무함을 넘어 짜증까지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아봐요. 여섯 번째 꿈을 읽고 4편 중 1편을 읽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앞으로 3편을 위한 밑반찬을 먹었을 뿐입니다. 아무것도 시작된 것이 없다는 겁니다. 2편 ‘복수의 공식’이 시작되면 소설의 세계가 확장합니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의 특징을 조합하면 1편에 나왔던 인물들을 연상시킵니다. '왕두더지'가 떠오르기도, '폐쇄미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처음엔 살인마의 독백인가 싶습니다. 읽다보면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살인마, 피해자, 가해자 등이 시점과 시간을 교체하며 왜 이 사건이 벌어졌는지를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묘하게 이야기가 어긋나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가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각난 파편들을 맞춰야 하는데 이 퍼즐들의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지가 않습니다. 작가가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고요? 아닙니다. 만약 복수의 공식이 단순하게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조금씩 맞물려 꼬리의 꼬리를 물고, 등장인물들 또한 서로를 물고 늘어져 끝에 가서는 하나의 완성 된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물론 그것도 재미있었겠지만)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추천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불완전한 퍼즐 조각을 주면서 끊임없이 맞춰야 하는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복수의 공식'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정점이자 기예의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여섯 번째 꿈이 허무하게 끝난 줄 알았는데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음악에서 변주라고 하죠. 주제부가 있을 때 다양한 변주를 통해 익숙한 듯 새롭게 맬로디를 창조하잖아요. 복수의 공식은 변주란 이렇게 해야지 재미있습니다! 라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비로울 정도로 하나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면서, 제각각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의 이야기도, 제각각의 이야기도 모두 재미있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복수의 공식 이후로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습니다. 복수의 공식이 끝나고 3편인 파이와 마지막 4편인 일곱 개의 고양이 눈까지 가면 이야기가 한층 더 확장되며 소설과 현실의 경계까지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스스로 꼬리를 물고 무한의 굴레를 만드는 신화 속 뱀처럼 무한한 변주를 활용해 끝없이 확장하는 폐쇄 된 미로를 만들기 위해 펜을 휘두르는 작가의 필력에 경탄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를 지으면서 다소 작위적인 부분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파이’ 이후로는 속도감이 떨어지는 것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무 연관성도 없어보이던 사건들이 서로 아귀를 맞춰 퍼즐을 완성시킬 때 주는 희열은 정말 끝내줍니다. 복잡한 이야기가 주는 재미를 즐기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가볍게 시작해서 훌륭하게 끝나는 최고의 성찬입니다.
천명관의 ‘고래’를 읽다보면 마르시아 가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떠오르곤 합니다. 세대를 거치며 이어지는 재미있는 두 이야기에 많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읽다보면 바다 건너 온다 리쿠 작가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떠오릅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역시 픽스업 장르로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엇갈려 전체가 하나인 듯 너스레를 떨고 있는 소설입니다. 밤 늦게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정신없이 읽다보면 어느새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초대 받은 엘리스가 된 것 마냥 작가가 짜놓은 이야기 속을 헤매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온다 리쿠 작가의 주특기인데요. 뭔가 있을 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탁월합니다. 다만 막상 그럴 듯하게 시작을 하였지만 이야기가 흐지부지하게 끝날 때도 있습니다. 워낙 다작을 한 작가라서 그만큼 작품 사이의 편차도 있는 편입니다.
다행히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은 그 중 최고입니다. ‘삼월 시리즈’라고 하여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 ‘흑과 다의 환상’, ‘황혼녁 백합의 뼈’라는 소설들과 읽어도 되지만 ‘삼월은 붉은 구렁을’만 읽어도 무방합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역시 4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수수께끼의 책을 찾는 내용인데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온다 리쿠 글쓰기의 정수입니다. 마법의 세계처럼 완전한 비일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약간씩 어긋난 일상의 반복을 통해서 어느새 일상 속에 비일상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딱 200부만 배포했지만 그마저도 다시 회수했다는 수수께끼의 붉은 책. 그리고 그 책을 찾기 위해 기묘한 초대를 하는 회장님. 온다 리쿠는 독자에게 단서를 조금씩 풀면서 진상을 쫓아가게 하는 째재한 탐정처럼 우리는 사건으로 초대합니다.
트라이앵글과 엮을 소설로 ‘삼월은 붉은 구렁을’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기묘한 분위기로 청소년들도 가볍게 읽기 좋은 책입니다. 반면 ‘일곱개의 고양이 눈’은 보다 짜임새가 촘촘해서 성인이 읽기 좋습니다. 두 권 다 좋은 책이지만 삼월이 아닌 고양이 눈을 선택한 이유는 유명한 온다 리쿠의 작품 보다는 최제훈 작가님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최제훈 작가님의 첫 발표작은 ‘퀴르발 남작의 성’입니다. 개인적으로 단편집 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 편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문학과사회 소설 부분 신인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독서 후 감탄을 했습니다. 동시대 작가 중에 이런 분이 있다니! 한국 장르소설에 한 획을 그을 분이 나타났다고 들떴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만 등장이 너무 화려했기 때문일까요. ‘퀴르빌 남작의 성’과 ‘일곱개의 고양이 눈’ 이후로 장편소설인 ‘나비잠’과 ‘천사의 사슬’이 나왔지만 데뷔작만큼의 기염은 토해내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들이 약간씩 비슷한 경향이 있습니다. 좋게 말하면 자신이 잘 쓰는 주특기가 있는 건데 아무리 강한 필살기도 반복을 하다보면 파훼법이 생기기 마련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되는 까닭은 소설을 읽다보면 이야기를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정말 많이 쓰신다는 게 보이고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전에 작품들과 비교해서 아쉽다는 것이지 계속해서 괜찮은 소설을 쓰고 있고요. 이분이 앞으로 또 어떤 기묘한 이야기를 세상에 선보일까요. 이 기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여태까지 무더운 밤을 시원하게 만들 영화와 소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