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주말>을 당시 심각한 사회 문제였던 알코올 중독에 관한 이야기로 단순화하는 건 부당한 일이다. 빌리 와일더는 알코올 중독자의 몰락과 갱생이라는 표면적 이야기를 통해 그 이면에 자리한 당시 미국 남성들의 좌절과 혼란을 탁월하게 그린다. 주인공 돈 버넴은 (빌리 와일더의 제작 동기와 전혀 무관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귀환한 미국 남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남성들은 그들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사회에 진출한 여성 인력들로 인해 남성성의 상실과 사회적 지위의 박탈을 경험해야 했다. 전쟁 중 군수산업의 발전으로 길었던 대공황은 끝이 나고 경제 부흥이 이어졌지만 참전 군인들의 정신적 후유증과 사회 부적응은 그것과 별도의 문제였다.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과 정체성의 혼란, 사회 전반에 퍼진 회의주의는 당시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었다.
과거도 그리 찬란하진 않았으나 보다 더 비극적으로 바뀌어버린 현재. 그래서 거의 제거된 듯 공백처럼 느껴지는 현재라는 시제.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기는 간극. 미래에 대한 회의. 이러한 시대적 감각을 이 영화만큼 고스란히 담은 영화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돈 버넴은 헤밍웨이와 견줄 정도로 소설가로서 천재적인 재능을 뽐냈던 과거를 보냈지만 이후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 술을 찾게 된다. 그는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무능한 자신의 존재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계속 술을 마시다 결국 중독 증세에 시달린다. 이때 흥미롭게도 그의 중독 증세를 악화시키는 존재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 친구 헬렌이다. 버넴은 술집에서 상류층에 속한 헬렌의 지위에 대한 두려움을 묵시하고, 그녀의 부모 앞에서 자신의 남루한 처지를 들킬까 겁먹어 그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어긴다.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잊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고, 악령이라도 대하듯 끝없이 헬렌을 피한다. 두려움의 존재인 헬렌의 전화는 심지어 알코올 중독으로 병약해진 버넴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전당포까지 걸어가게 만든다. 말하자면 버넴에게 그녀의 존재는 잠시 차올랐던 금주에 대한 의욕마저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공포스러운 것이다.
1945년 11월 29일 LA를 시작으로 개봉관을 넓힌 <잃어버린 주말>은 대중들에게 외면 받을 것이라는 파라마운트사의 예견과는 달리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만일 흥행의 측면에서 이 이야기가 단순한 알코올 중독자의 갱생 스토리로서만 관객들에게 비춰졌다면 파라마운트사의 예견은 빗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잃어버린 주말>은 전후의 사회적 맥락을 훌륭히 내면화하였고 그 결과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전후 증가한 남성 관객들이 죽음과 헛된 욕망, 도덕적 파국의 과정을 다루면서 어둡고 음울한 시각적 스타일을 핵심으로 삼는 필름 느와르 장르에 열광했던 건 이러한 영화들이 그들의 불안한 내면을 거듭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